‘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②‘민자1호 재개발’ 경남 거제 고현항
예산 없는 지자체, 민간사업자 공모
매립지·공유수면 포함 83만㎥ 개발
1단계 성공분양 이어 2단계 공사중
대공원·크루즈 입항시설 갖추게 돼
바다 조망권 훼손 가능성 우려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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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첫 입주가 2022년입니다. 딱 좋은 시점이죠. 거제도 조선업 경기가 요즘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데, 2022년이면 완전히 다시 살아나 있을 거예요. 지금 분양을 받아 두면, 3년 뒤 입주할 때는 분명히 값이 크게 올라 있을 겁니다.”
ㄷ건설 아파트 분양홍보관 직원은 지난 9일 손님들에게 화려한 홍보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 업체가 지을 아파트의 장점과 투자가치를 열심히 설명했다.
거제 고현항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경남 거제시 고현동·장평동 일대에는 올해 초부터 아파트·상가 분양홍보관이 하나둘 문을 열고 있다. ㄷ건설은 재개발사업지 바다 건너편 언덕의 지상 4층 건물을 통째로 빌려 홍보관을 열었다. 이 업체는 고현항 재개발사업 현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홍보관 옥상을 야외 카페로 꾸며, 손님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기존 시가지와 인접한 고현항 재개발사업 1단계 부분은 이미 매립공사가 완료돼 잡초가 무성한 상태로, 병원 등 건물을 짓는 공사가 군데군데 진행되고 있었다. 매립지 형태가 거의 갖춰진 2단계 부분에는 대형 트럭과 중장비가 바쁘게 움직이며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3단계 부분은 물 위에 부표로 영역 표시만 되어 있을 뿐 여전히 푸른 바다였다. 3단계 바깥쪽인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앞바다에는 대형 선박들이 늘어서 있었다. 홍보관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손님들의 눈에는 황량한 공사장이 아닌, 화려한 고층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해양신도시가 벌써 보이는 듯했다. 현재 이 업체는 홍보관 운영을 중단했으며, 분양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때에 맞춰 사업지 인근에 견본주택을 마련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한 간부는 “우리나라 조선산업 경기가 지난해 바닥을 찍고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올해 들어 조선소 주변 식당들의 밥그릇 수가 6천개 늘었다는 말이 있다. 조선소 일감이 늘면서, 협력업체가 인력을 그만큼 늘렸다는 뜻이다. 고현항 재개발사업과 조선산업 경기 회복이 맞물려 돌아간다면, 거제의 중심지가 옛 고현항 지역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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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고현항 재개발사업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100% 민간자본으로 추진되는 항만 재개발사업이다.
1983년 항구로 지정된 옛 고현항은 애초 어항으로 지역 경제에 기여했지만, 주시설은 부산·창원과 거제를 연결하는 여객선이 정박하는 여객선부두였다. 여객선부두 기능이 커지면서 고현항을 이용하던 소형 어선들은 주변 다른 항구로 옮겨갔다. 그러나 2010년 말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개통되면서, 여객선 운항이 중단됐고, 고현항은 사실상 항만기능을 잃었다. 애초 고현항은 배후부지를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시가지와 맞닿아 있었다. 항만기능 활성화를 위해선 시설을 키우고 편의시설을 늘려야 했지만, 그렇게 할 공간이 없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거제까지 연장되고, 육지와 연결하는 철도 건설까지 계획되면서, 여객선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사라졌다.
이런 상황을 예측한 거제시는 2009년 4월 정부에 요청해, 고현항에 대한 항만 재개발 예정구역 결정·고시를 받았다. 그러나 예산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재개발사업은 계속 미뤄졌다. 고현항에 인접한 삼성중공업이 고현항 재개발사업에 나서기도 했으나, 미국발 금융위기와 조선경기 하락 등으로 중단됐다.
결국 거제시는 민간자본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사업시행자 공모를 통해 2012년 4월23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다. 1년 뒤인 2013년 4월24일 거제시까지 참여한 자본금 200억원의 거제빅아일랜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가 설립됐다.
거제빅아일랜드는 2013년 6월14일 “버려진 고현항을 2022년까지 매립해, 기존 도심지역과 연계된 고품격 해양관광도시를 조성하겠다”며 100% 민간자본을 이용한 거제 고현항 항만 재개발사업을 해양수산부에 제안했다. 국내에선 사례가 없는 일이었다. 해양수산부는 사업성 검토를 거쳐 다음해 3월24일 민간사업자와 실시협약을 맺고, 2015년 6월26일 실시계획 승인을 고시했다. 거제빅아일랜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는 2015년 9월 공사를 시작했다.
애초 고현항 재개발사업을 계획할 때는 매립지 앞바다에 인공섬을 건설하려고 했기 때문에, 고현항을 매립해 건설하는 새도시 이름을 ‘거제빅아일랜드’로 정했다. 이후 사업을 추진하면서, 인공섬 건설 계획을 없앴다. 하지만 이름은 ‘거제빅아일랜드’를 그대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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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빅아일랜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의 심정섭 대표는 “정부 재정만으로 항만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려면, 예산 문제 때문에 사업 추진이 어려운 것은 물론 추진하더라도 속도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항만 재개발사업을 투자 여력이 큰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면, 재정 부담 없이 추진할 수 있으며 민간투자 활성화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국내에서 민간이 추진하는 제1호 항만 재개발사업이라는 점에 있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실험적으로 추진되는 거제 고현항 재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민간자본을 활용한 항만 재개발사업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의 말처럼, 항만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선정된 전국 13개 항 19곳 가운데 민간자본으로 추진한 거제 고현항 재개발사업이 가장 빠른 속도를 내고 있다.
재개발사업 대상 면적은 매립지 59만9136㎡, 공유수면 23만4243㎡ 등 83만3379㎡에 이른다. 이 사업은 3단계로 나눠 진행되는데, 1단계 16만6512㎡는 지난해 9월 준공돼 100% 분양됐다. 2단계 28만1314㎡는 내년 6월 준공 예정으로, 8월 말 현재 공정률 85%, 분양률 59%를 기록하고 있다. 3단계 15만1310㎡는 2023년 말 준공 예정인데,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옛 고현항을 매립해 육지로 만드는 전체 사업비는 6965억원으로, 민간사업자인 거제빅아일랜드가 100% 조달한다. 거제빅아일랜드의 지분은 거제시 10%, 부강종건 55%, 교보증권 17.5%, 대림산업 10%, 케이비부동산 5%, 현대증권 2.5%로 구성됐다.
사업이 완료되면 매립지 59만9136㎡는 도로·공원·녹지 등 공공용지 42.1%, 부두·마리나시설 등 항만용지 9.4%, 주거·상업·업무·관광 등 분양용지 48.5%로 이뤄지게 된다. 이 땅을 공공용지는 거제시, 항만용지는 해양수산부, 분양용지는 거제빅아일랜드가 갖는다.
거제빅아일랜드가 분양을 완료하면, 아파트·상가 등 건설에 1조4천억원대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1단계 터에는 이미 아파트·병원 등의 건설이 시작됐다. 3단계까지 전체 매립지에는 3739가구 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예상 정주인구는 1만37명으로, 9월 말 현재 전체 인구 24만8469명인 거제시에 신도시가 생기는 것이다.
거제시는 취득세·부가세·재산세 등 5천억원 이상의 지방세 수입을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또 급속한 도시화로 평지에 제대로 된 공원을 갖추지 못한 거제시는 대규모 수변공원을 확보하게 됐다. 사업구역의 공공용지에 현대화된 배수펌프장도 설치해, 상습 침수 지역인 고현동·장평동 일대 고질문제도 해결했다.
해양수산부는 쓸모없던 고현항을 내준 대신 3단계 구역에 크루즈선까지 입항할 수 있는 여객터미널과 마리나시설을 갖게 됐다. 사업 완료 이후 토지감정평가 등 정산을 통해 분양용지의 땅값이 민간사업자의 투자액보다 많으면, 해양수산부는 그 차액만큼의 분양용지도 갖게 된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조선업 침체에 따른 경기 부진과 인구 감소로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는 상황이라 새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 미분양 사태만 가중될 수 있다. 분양에 성공하더라도 거제 지역 안에서만 주민 이동이 발생해, 기존 시가지의 쇠퇴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바다에 인접해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 조망권을 해칠 우려도 있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침수 피해, 기존 상권 침체 등 주변 지역 주민들의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화된 배수펌프장을 설치해 침수 피해를 해소했고, 주변 지역의 도시재생을 통해 동반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사실상 버려져 있던 바다를 매립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거제시 살림살이도 나아지게 됐다. 거제빅아일랜드의 도시관광 기능을 최대한 살려, 거제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거제/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사진 ‘거제빅아일랜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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