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소독, 꼼꼼한 관찰, 빠른 신고가 질병 확산 막는다"
지난 9월 30일 새벽 4시 30분 경북 김천의 한 아파트. 이명헌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 조류독감(AI)연구진단 과장(사진·55)은 잠결에 희미한 전화 벨소리를 들었다. 전날 늦게까지 근무해 피곤했지만 이 시간에 전화를 할만한 곳은 회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본부 당직자는 연천과 파주 등 경기도 북부에 확산 중인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김포에서도 발생했으니 김포시 가축방역상황실로 파견가 살균과 살처분 작업 등의 기술을 지도해 달라고 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나 조류독감 모두 바이러스성 가축 전염병이다. 방역과 소독 작업 등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검역본부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직원 수가 부족하고, 이들이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 여부를 판정하느라 본부를 비울 수 없게 되자 업무가 비슷한 이 과장에게도 파견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이 과장은 곧바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었다.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 며칠 전부터 챙겨둔 옷보따리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에 첫 발병한 이후 새벽에 전화벨이 울리지 않기를 빌었지만 기대가 깨진 것이다. 그의 아내도 근심스러운 얼굴로 1주일쯤 집을 떠나 있을 남편을 위해 미리 준비한 밑반찬을 보냉가방에 담아 건냈다.
그는 검역본부에서 후배 한 명과 당직자로부터 현장 상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경기도 김포시에 마련된 가축방역상황실로 출발했다.
조선비즈는 지방자치단체 상황실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현장을 관리하는 이명헌 검역본부 과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가 워낙 바빠 전화통화도 쉽지 않았다. 현장을 방문해 직접 만날까 했지만 포기했다. 사람을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시간이 나면 전화를 하도록 조치할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하루가 지나서야 이명헌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김포 양돈 사육농가의 급한 불은 껐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전해진 이 과장의 목소리는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말을 길게 할 때는 가끔 쇳소리가 났다. 쉬어야 할 사람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 과장은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의 노고를 알리고 싶고, 양돈농가들에 당부할 것도 있다"고 했다.
이명헌 이명헌 검역본부 AI연구진단 과장이 김포지역 차량 통제초소에서 근무하는 방역 관계자들에게 통제요령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검역본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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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곤하겠다.
"김포에 온 이후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있다. 첫날과 이튿날은 상황실에서 퇴근을 하지 못했다. 현장 상황을 파악해 본부에 보고해야 하고 질병 확산을 위해 설치한 초소와 취약지구도 직접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커피를 입에 달고 쪽잠으로 부족한 잠을 이겨내고 있다. 다른 현장에서 일하는 본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힘은 들지만 그래도 아직 견딜만 하다."
이번에 발생한 질병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고, 이 과장이 검역본부에서 맡은 업무는 조류독감(AI) 연구진단이다. 전공이 다른 것 아닌가.
"두 질병 모두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바이러스의 종류가 다르고 감염되는 동물도 다르지만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소독하고 살처분하는 작업은 같다. 검역본부에 근무하는 가축질병 전문가가 많지 않아 질병이 터지면 본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세부 전공을 가리지 않고 모두 교대로 현장에 나와 일하고 있다."
김포에는 언제까지 머무르게 되나.
"기본적으로 1주일씩 교대로 현장에 와서 근무를 한다. 그 이후에는 회사로 복귀해 원래 하던 업무를 하게 된다. 나는 조류독감 관련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일주일쯤 자리를 비워두고 복귀하면 할 일이 태산이다.
이번 질병이 안정될 때까지 검역본부 직원들이 교대로 현장에 필요한 기술 등을 전수해주고,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 질병이 확산돼 현장 인력이 부족하면 잠깐 복귀했다가 다시 현장에 나올 수도 있다."
가축질병 관련 전문가가 많이 부족한가보다.
"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과거보다 해외 각국과 인적물적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새로운 가축질병이 국내에서 많이 생긴다. 사람이 부족하니 당연히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관련 전문가들이 많이 충원되면 좋은데 직원을 늘리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질병이 더 빈번히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긴가.
"그렇다. 외국과 왕래가 빈번해지면 과거에는 없었던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되고, 그 결과 새로운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알기 쉽도록 설명하면 과거 인적·물적 교류가 없었던 아마존에서 살던 바이러스는 한국으로 전파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에 놀러간 한국 관광객이나 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자재 등을 통해 가축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질병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처럼 치료약이나 예방백신이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가축질병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강해진다고 하던데.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인간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면 바이러스도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다. 바이러스 스스로가 진화해 기존 치료제나 백신에 내성을 갖는 식이다. 사람이 감염되면 기존 항생제로 치료할 수 없는 슈퍼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인간은 계속 새로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바이러스는 이에 대응해 진화하는 싸움이 반복되고 있다."
지루하고 쉽지 않은 싸움일 것 같다. 새로운 가축질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 미리 대비를 해야 하지 않나.
"문제는 싸움을 담당할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가축질병에 대비해 소독약, 백신, 치료제 등을 연구·개발할 전문인력을 많이 육성해야 한다.
지금은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검역본부 직원들이 현장에 나와 태스크포스로 일하고 있지만 가축질병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기동방역기구’를 상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우리 본부 직원들의 경우 1주일쯤 지나면 현장에서 검역본부로 복귀하고 있다. 기존 본부에서 담당하던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주일쯤 자리를 비웠다가 본부에 복귀하면 쉬지 못하고 바로 기존 담당업무를 처리한다. 현재 우리 검역본부 직원 40여명이 현장에 나와 있다.
시군에서 근무하는 가축방역관도 현재 시군별로 1~2명에 불과한데 앞으로 질병 발생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해 농가들이 많이 당황하는 것같다. 양돈농가에게 조언하자면.
"한국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한 것치고는 양돈농가들이 예상보다 잘 대처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현재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한번 감염되면 치명적이다.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육하는 가축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효과적인 대응방법은 양돈농가들도 이미 아는 내용이다.
농가는 돈사는 물론이고 농장 전체를 철저히 소독하고, 외부인의 불필요한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 또 농부는 사육 중인 돼지에 문제가 없는 지속적으로 꼼꼼히 살펴보고, 이상징후가 보이면 곧바로 방역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이 세가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는 가장 중요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도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처럼 매년 발병하는게 아닌지 우려된다.
"한 번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소독을 철저히 하면 질병 발생을 막거나 최소한 줄일 수 있다. 가축이 질병에 걸렸을 때 방역당국에 신속하게 신고하면 질병 확산도 차단할 수 있다. 실제 4년 연속 발생하며 한국 양계 산업을 위협한 조류독감이 지난해에는 발생하지 않았다. 살처분과 보상금으로 많게는 한해 1조원 넘는 돈이 들었던 구제역도 연간 발생건수도 1~2건으로 줄었다."
박지환 농업전문기자(daeba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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