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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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는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살인마지만, 그의 모친과 그를 아는 지인들은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처제를 살해한 다음날 그는 장인에게 '도울 것 없냐'고 물을만큼 인면수심의 모습을 보였다.
24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처제 살해 사건 혐의로 그를 검거하고 조사했던 김시근(62) 전 형사는 "(이춘재는)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편이었다"며 "처제를 죽인 다음 날 장인 집에 찾아가 ‘도울 것이 없느냐’고 물을 만큼 뻔뻔했다"고 말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춘재는 청주 사건으로 조사 받을 당시 끝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항소 이유 등에서 "피해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뒤 그 사체를 유기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춘재 1·2심 판결문 등에 따르면 이춘재는 아내와 1992년 4월 결혼한 뒤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내는 물론 두살배기 아들도 감금하고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이춘재가 "내성적이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할 정도의 성격의 소유자"라고 봤다.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재떨이를 집어 던지고 무차별 폭행했다.
1987년 1월 경찰이 연쇄살인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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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견디다 못한 아내는 93년 12월 집을 나갔다. 그러자 이춘재는 가출한 아내에게 전화로 "내가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것을 알아두라"고 협박했다. 또 동서에게는 "아내와 이혼은 하겠지만 쉽게 이혼하지 않겠다. 다른 남자와 다시는 결혼하지 못하도록 문신을 새기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이춘재는 94년 1월13일 오후 처제에게 "토스트기를 가져가라"며 집으로 유인한 뒤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한 뒤 둔기 등을 이용해 살해했다. 이후 시신을 검은 비닐봉지와 처제의 옷, 처제와 아내의 스타킹 등으로 싸매고 묶어 유기했다.
김 전 형사는 범행 다음날 이춘재가 처가를 찾아갔다며 "장인어른을 찾아간 이춘재가 '도와드릴 일 없느냐'고 한 것으로 안다. 딸을 죽여놓고 아버지한테 그렇게 굴 만큼 이춘재는 뻔뻔한 인간이었다"고 전했다. 또 처가에서 딸(처제)이 돌아오지 않자, 처가는 경찰에 딸 실종 신고를 냈는데, 이때 이춘재도 함께 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항소와 상고를 거듭한 이춘재는 법정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에서 혐의를 인정한 이춘재는 법원에 가서는 "경찰관들이 고문하고 잠을 재우지 않아 견딜 수 없어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살해 과정이 계회적이지 않고 우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에 따라 사형을 선고한 원심이 파기되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현재 무기수로 부산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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