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독일)=뉴시스】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2017.07.07. phot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는 반전과도 같았다. 대선후보 시절 "미국에게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지만, 취임 초기 가장 공을 들인 것은 '굳건한 한미동맹'의 확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브로맨스'로 불릴 정도로 관계를 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당신이 좋다"는 표현도 서슴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동맹을 강조한 것은 몇 가지 면에서 '신의 한 수'였다. 일단 문재인 정부 출범에 우려하던 중도층과 보수층의 지지를 확보했다. 정권 초반 80%에 달하는 지지율의 이유 중 하나였다. 2018년부터 시작된 남북미 '핵 담판'의 동력이기도 했다. 한미공조와 남북대화를 바탕으로 문 대통령은 '수석 협상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반전이 시작됐다. 한일 경제전쟁이 도화선이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로 맞섰다. 연장을 요구해온 미국을 뿌리쳤다.
"한미공조는 굳건하다"는 청와대의 설명과 달리 미국은 반발했다. 오는 11월 지소미아 종료 시점 전까지 한국이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고, 동해영토수호훈련(독도방어훈련)이 생산적이지 않다는 언급까지 나왔다.
청와대는 미국을 향해 "노(no)"를 외쳤다. "독도는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할 땅이 아니다"며 "어떤 국가가 자국의 주권, 안위를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위에 대해 쉽게 이야기 하지 말라"고 맞섰다. 지소미아에 대해서는 "원인(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결과만 뒤집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 여론의 동요, 북핵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의 부담감 모두를 감내하고도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지난 28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사실상 '초치'한 것은 이런 기조의 상징 처럼 됐다.
한일 경제전쟁 속에서 우리의 위상 제고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에는 원론적 입장만 피력하고, 우리의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서는 재고를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에서 이같은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
우리의 외교적 가치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언제든 미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인하고,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한다'고 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의 21세기판 재현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통해 이같은 생각을 가감없이 밝혔던 바 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우리와 미국의 관계와 다르다.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 때부터 함께 국제적 영향력을 논의해온 관계다. 오랜 세월 동안 우호적이었고 태평양지역 방어와 세계전략을 함께 논의했다. 일본을 바라보는 차원과 전혀 다르게 미국은 한국을 도움을 주는 차원으로 생각한다. 이제 한국은 미국과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위치를 격상시켜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지소미아 종료를 계기로 한미관계도 재설정을 하려고 한다. 군정찰위성, 경항모, 그리고 차세대잠수함 전력 등 핵심 안보 역량을 구축해 전략적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점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안보적-경제적 역량 강화를 통해 미국이 한국 대신 일본을 택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라고 칭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외교라는 것은 공을 보고 뛰는 게 아니고 공간을 봐야 한다"며 "그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공간 확보는 일본에 우호적인 워싱턴의 정가 출신이 아닌, 사업가 출신 트럼프 대통령이 있어 가능하다는 계산도 깔렸다. 철저한 '이익'을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
결국 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 '톱 다운'으로 출구를 찾을 게 유력하다. 청와대가 지소미아와 관련해 '하우스 대 하우스'(house to house, 청와대와 백악관) 차원에서 소통해왔음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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