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우병우 의혹 감찰하다 '역풍' 맞은 이석수 / "의혹만으로 사퇴하지 않는다는 게 이 정부 방침" / 박근혜정부 향한 경고… 결국 朴·禹 둘 다 구속돼 / 조국, "의혹만으로 검찰 개혁 차질 안돼" 버티기
지금으로부터 거의 3년 전인 2016년 8월22일 이석수 당시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 정부’란 박근혜정부를 지칭한 것이다.
언론이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각종 비리 의혹에 관한 보도를 쏟아내던 시절이다. 이에 특별감찰관실도 우 수석을 ‘표적’ 삼아 감찰에 착수했으나, 정작 청와대는 “의혹만으로는 (우 수석이) 사퇴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2016년 비리 의혹이 불거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그를 감찰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쫓겨난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
오히려 특별감찰관실의 감찰 내용 일부가 특정 언론사에 유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들어 ‘국기문란행위’라고 이석수 감찰관과 특별감찰관실을 겁박했다.
이에 기자들이 이 감찰관한테 “(청와대가 저렇게 나오는데) 사퇴할 의향이 없느냐”고 묻자 이 감찰관 입에서 나온 대답이 바로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 방침 아닌가”였다.
갈수록 악화하는 민심은 도외시한 채 ‘우병우 구하기’에만 몰두하는 박근혜정부를 향한 일종의 ‘항명’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그도 청와대 명령을 받은 검찰이 자신의 휴대전화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자 2016년 8월29일 결국 박 대통령 앞으로 사표를 제출하고 만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
2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고형곤)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대대적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조 후보자 딸 조모(28)씨가 한때 다녔거나 현재 적을 두고 있는 고려대 생명과학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과 고교생 시절 인턴으로 근무했다는 단국대, 그리고 조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펀드를 운용하는 코링크PE 사무실, 또 조 후보자 가족이 운영해 온 학교법인 웅동학원 등이 검찰 수사팀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에 조 후보자는 “검찰 수사를 통해 모든 의혹이 밝혀지기를 희망한다”며 “다만, 진실이 아닌 의혹만으로 법무·검찰 개혁의 큰길에 차질이 있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가 우병우 수석을 방어하며 내세운 논리와 아주 흡사하다.
지난 23일 서울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흔히 ‘정무직’으로 불리는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는 불법이나 위법이 없었어도 자신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가 빚어지면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그만두는 것이 공직사회의 오랜 관행이었다. 2016년 이석수 감찰관이 박근혜정부를 향해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 방침 아닌가”라고 비아냥 섞인 독설을 퍼부은 것도 이런 관행을 깨면서까지 특정 정권 실세를 ‘엄호’하려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결국 조 후보자와 그 가족을 둘러싼 모든 비리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가려지게 됐다. 일단 검찰은 ‘면죄부’ 발급용 수사는 결코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날 “조 후보자가 법무장관으로 취임하는 일정을 고려해 일부러 압수수색을 빨리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는 취재진의 물음에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이유는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물론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이 될 후보자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 ‘국민적 의혹’을 말끔히 푸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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