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뜬구름 같은 외교·안보 문제가 이렇게까지 내 삶에 깊은 영향을 준 적이 있었을까. 밤낮으론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아침에 눈뜨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듣는 게 요즘 일상이다. 혹자는 '오면초가'(五面楚歌)라며 한국 외교를 고립무원의 섬에 비유하기도 한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을 만나 한일관계와 북미 협상,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외교 전쟁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김 원장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진보 성향의 국제정치 학자다. 지난 9일 임명된 후 첫 언론 인터뷰였다.
-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렸다.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에서 여러 안들을 두고 고민을 했던 걸로 안다. '플랜B'로서 '조건부 1년 연장'도 심각하게 고려됐던 거 같다. 일단 연장하고 일본이 안보상 신뢰 문제를 거론한 경제보복을 철회한다면 1년 후에도 연장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연장)할 수 없다는 게 플랜B였다. 하지만 이번에 중단하는 게 국익에 더 부합한다는 적절한 선택을 했다고 본다.
-지소미아의 상징성과 실효성을 어떻게 보나
▶개인적으로는 체결 당시 지소미아를 강하게 반대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의 대행 정부가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에 일단 반대했다. 한미일은 3각 협력은 가능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동맹은 아니다. 지소미아 체결 때 미국의 전략가들은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과 한미일 미사일방어체계(MD) 등을 거론했다. 지소미아를 한미일 군사동맹, 즉 대중 봉쇄 동맹의 출발점이자 입구로 본 것이다. 다행히 ACSA, MD 등 추가 조치로 안 갔기 때문에 2017년과 2018년에도 정부가 검토를 하고 연장을 한 거다.
-미국 정부는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했다
▶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은 결정적이다. 하나의 인프라가 중단됐다는 사실 자체에 실망할 순 있다. 한국에 대한 실망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과는 꾸준히 소통을 해 온 것으로 안다. 미국의 일부 전략가나 동맹론자 혹은 강경파들이 한국의 책임론이나 동맹 훼손 가능성을 언급하고 불만을 표할 수는 있다고 본다. 분명한 것은 한미일 협력과 한미 동맹의 약화는 없다는거다. 그렇다면 연장 종료를 했겠나.
-미국 정부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미국의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standstill agreement)' 제안을 거부한 게 일본이다. 우리는 여전히 열려 있다. (지소미아 종료는) 비가역적이지 않다. (일본이 자세를 바꾸고) 상황이 좋아지면 되돌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대북 정보력에 문제는 없나
▶정보는 많을수록 좋지만 안보 파트너로서의 신뢰가 없는데 정보 교환을 해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여전히 티사(TISA)라는 한미일 정보공유협정이 있다. 우리는 휴민트(humint·인적 정보)에서 훨신 높은 수준의 대북 정보력을 갖고 있다. 일본은 이지스함 등 하이테크 정보 장비에 의한 정보가 우수하지만 미국을 통해 일부 받을 수 있다.
-한일 갈등의 배경은 무엇인가
▶강제징용 문제로 출발해 일본의 무역규제에서 안보까지 간 거다. 일본이 안보적 함의를 가지는 (수출규제) 조치를 내놓은 책임이 가장 크다. 근저에는 한일간 패러다임의 충돌이 있다고 본다. 일본은 대중 (봉쇄) 동맹을 강화해 재무장으로 가려 한다. 일본이 참여한 인도태평양 전략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거다. 우리는 한반도 프로세스로 이런 대결 구도를 풀자는 거다. 미래 비전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양국의 헌법 가치와 지도자의 철학도 다른 것 같은데
▶일본은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한다. 일본의 법체계상 국제법이 국내법의 상위에 있어서다. 우리는 국제법도 국내법의 일부로 헌법보다 앞설 수 없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어겼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철학적으로도 부딪힌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 국민 개개인이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 국가는 개인을 위해 봉사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반면, 아베 정부는 국가주의에 가깝다. 강제징용 개인 청구권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느냐, 마느냐에서 충돌하는 거다. 일본은 사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행정부가 자기 견해를 밝힐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3권 분립을 해치는 사법 개입이 된다. 굉장히 믾은 것들이 얽혀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협력·공존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G20 정상회의와 8.15 광복절 경축사, 베이징 한일 외교장관 회담 등의 계기에 협상을 하자고 했는데 일본이 거부했다. 일본의 자세 변화가 없다면 갈등의 교착과 한일 관계의 어려움이 당분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모멘텀이 있을까
▶9월 유엔 총회. 10월 일왕 즉위식, 내년 올림픽 등을 잘 활용해야 한다. 다만, 외교적 협의 전에 우리가 먼저 자세를 바꿔서 모멘텀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당분간은 교착이 길어질 거 같다.
-북한 문제로 넘어가자.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가 계속되는데
▶일개 북한 외무성 국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건 평화 프로세스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 북한의 속마음도 잘 읽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미 동맹은 강화되는 데 대한 절망적인 반응이라고 본다.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반어법적 역반응이다. 북한이 교착 상황을 이용해 몸값을 올리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북미 협상도 교착상태다. 어떻게 예상하나
▶북미 협상은 과거 실무협상 결과 신뢰가 생기면 다음 단계로 가는 방식이었다. 단점은 실무에서 조금만 부딪혀도 좌초한다. 지금 북미는 두 정상이 신뢰를 바탕으로 나가자는 거다. 실무에서 교착은 생기지만 과거처럼 판이 깨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보면 타결 가능성이 있는 거다. 북한이 다시 전략적 도발로 가면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가 깨진다. 북한도 다시 전략 도발로 가기 쉽지 않다. 한 번의 중요한 기회는 올 거라고 본다. 지금 문제는 정상이 판을 이어가고 실무에서 교환 조건을 맞추는 거다. 실무협상을 계속 거부하면 판 전체를 깨는 책임이 북한에 돌아간다. 미국 책임이 돼야 북한이 핵실험 등 전략 도발로 갈 수 있다. 결국 하반기 협상을 할 거고 정상회담 등 기회가 올 거라고 본다.
-하노이 회담에서 북미가 패를 다 깠다. 그런데 왜 진척이 없다고 보나
▶지난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상대가 뭘 원하는지는 알게 됐다. 문제는 패에 따라 누가 이기고 지는지가 너무 명확해졌다는 거다. 스몰딜(영변 폐기)로 가면 북한이 이기고, 빅딜(완전한 핵폐기)은 미국이 이기는 거다. 견해차도 여전히 크다. 따라서 '알파 딜'이 관건이라고 본다. 북한이 영변 플러스 알파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미국도 일부 제재 완화할 부분이 있고, 북한은 체제보장도 원한다.
-북중러 밀착이 강화하고 있다. 동북아 정세를 평가한다면
▶러시아와 중국이 지난달 군사 합동훈련을 하면서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동북아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흔들리고 미중 갈등도 표면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중은 상호 의존적이지만 경쟁 관계다.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미중 갈등은 국제사회 시스템과 주변 국가를 불안하게 한다. 미국 중국 한국 북한 일본 러시아 모두 불안한 거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서로 상대를 떠보기 위해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외교안보 현안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중러 도발, 한일 갈등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가 노골적인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강대국과는 개별 이슈로 협상하면 우리가 불리하다. 전체적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 분담금 액수보다는 불합리한 부분을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방위비 분담금은 소프트 머니다. 필요한 만큼 주는 게 아니라 일단 주고 미국이 마음대로 쓰는데 바꿀 필요가 있다. 다른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일각에서 나오는 5~6배 증액 요구는 수용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외교적으로 '고립'됐다는 평가도 있는데
▶고립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분단 체제의 과거로 돌아가느냐, 국운이 열리는 기회를 살리느냐의 '터닝포인트'라고 본다. 어렵지만 너무 위기감을 과장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
-어려운 시기에 국립외교원장을 맡았다. 목표가 있나
▶외교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요즘 들어 많은 국민들이 인식하고 계신 것 같다. 첫 째 능력 있는 외교관 양성해야 한다. 두번째로 외교정책 전략의 싱크탱크 인력풀을 확충하려 한다. 셋째로 원장으로서 우리 외교 정책을 소통하고 잘 알리는 의무가 저에게 있다고 본다. '정부 밖의 대변인' 역할을 하겠다. 소신있게 국민들과도 접촉하려고 한다.
◇프로필
△1963년생 △대구 달성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석사·박사 △ 외교부 혁신이행외부자문위원회 위원장 △한동대 국제어문학부(現)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 위원(現) △한반도평화포럼 외교연구센터장(現)
머투초대석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대담=박재범 정치부장, 정리=오상헌 , 사진=김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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