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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지소미아 종료 파장…한·미·일 관계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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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결정에 불만 팽배한 美 / 볼턴·에스퍼 등 ‘지소미아 유지’ 설파 / 예상 밖 종료 결정에 체면만 구긴 셈 / ‘이견 해소→ 강한 우려·실망’ 수위 높여 / ‘강한 논평’ 日 물밑 요청 있었을 수도 / 일각 “韓, 사실상 3각 공조 탈퇴 선언”

세계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22일(현지시간)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놓고 불만을 나타냈다. 미국 정부의 바람과는 다른 결정이 이뤄지면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한 동북아 전략의 틀이 흔들리게 됐다는 당혹감이 엿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몇 시간 만에 ‘불만 수위’를 끌어올린 입장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날 오전 국방부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한·일 양국이 이견 해소를 위해 협력하길 권장한다”고 했다가, 오후 들어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하며 “한·일과 가능한 분야에서 양자·3자의 국방·안보협력을 계속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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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한국 결정에 실망했다”고 언급한 데 이어 국무부도 논평에서 우려와 실망을 나타내며 “문재인정부의 결정은 미국과 우리 동맹의 안보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쐐기를 박았다.

미국의 이 같은 반응은 이번 결정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미국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 최근 방한한 고위당국자들을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지소미아 유지’를 설파했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 결론이 나면서 체면만 구긴 셈이 됐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오전 30여분간 정경두 국방장관과 통화하면서 ‘한국 정부의 여러 노력에도 일본이 무성의하게 나와 불가피하게 종료 결정을 하게 됐다’는 설명을 들었으나,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나타내면서 한·미·일 안보협력 유지를 위한 소통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충분한 교감을 거쳐 사전 양해를 구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 정부 소식통이 ‘이번 결정을 미국이 이해하고 있다’는 청와대 관계자 설명을 전면 부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측 입장이 반나절 만에 판이하게 바뀐 것은 각 부처가 일치된 입장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기보다는, 적어도 폼페이오 장관 이상의 고위급이 ‘강한 반응’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그 사이 일본 측의 ‘물밑 요청’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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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조야에서는 이번 결정이 동북아 안보 공조체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한·미 동맹 약화로 이어지면 북한과 중국, 러시아만 미소 짓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이날 ‘미국의소리’(VOA)방송에 “이번 결정으로 70년간 역내 번영과 안정을 이끈 한·미·일 공조체제가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며 “향후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가 동맹의 해체를 더 적극적으로 공략할 빌미를 줬다”고 평가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도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3각 공조체제에서 사실상 탈퇴를 선언한 것”이라며 “미국의 권고를 무시하고 종료를 발표한 데 대해 워싱턴의 고위당국자들이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파괴무기 정책 조정관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이번 결정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오로지 북한뿐”이라며 미국의 적극적인 한·일 중재 노력을 촉구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이날 3박4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마주친 비건 대표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느냐’는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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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3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김현종 “日, 韓 자존심 훼손할 정도로 무시”

청와대는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과정에서 미국과 ‘소통’을 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표출한 실망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말하는 소통이 실은 동맹국 간 긴밀한 협의보다는 단순 ‘상황 공유’를 지칭하는 데 불과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정부는 각급에서 미국과 긴밀히 소통·협의하며 우리 입장을 설명했다”며 “양국 국가안보실(NSC) 간 이 문제로 7∼8월에만 총 9번 유선 협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 동맹이나 한·미·일 관계에는 영향이 없음을 누차 강조했다. 나아가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독자적인 정보수집, 판독·분석 능력, 국방력을 한층 강화하면 동맹국(미국)의 우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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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23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담은 외교부 공문을 받은 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김 차장은 일본을 향해선 외교에서 쌓인 감정적 앙금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 차장은 “우리로서는 일본과 강제동원(징용)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모든 방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었고 이러한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며 “그러나 일본 대응은 단순한 ‘거부’를 넘어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까지 훼손할 정도의 무시로 일관했으며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외교가에선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둘러싼 우리 정부 결정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 소통이 전혀 안 된 점이 고스란히 노출됐고 감정적 언사로 지소미아 종료과정을 설명하면서 냉철한 판단이 결여된 듯한 인상을 대외적으로 주고 있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책·민간 연구기관장과 간담회를 갖고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하도록 면밀하게 상황관리하고 점검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올해 2.4% 정도의 성장 목표를 제시했는데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로 글로벌 하방 경직성이 확대되는 양상 속에서 목표치를 달성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아베 “美와 확실히 연대 … 지역 안정 확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베 총리는 23일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이) 일·한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등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대응이 유감스럽게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현재의 동북아 안보 관계에 비추어서 일·미·한 협력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대응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미국과 확실하게 연대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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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미·일 연대 외 한국과의 협력 중요성은 입에 담지 않던 아베 총리가 지소미아 종료에 직면하자 한·미·일 협력 필요성을 언급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해 나갈 생각”이라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에서 대한 경시 노선을 지속할 뜻도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날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현지시간 24~26일)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이 기간 미·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한 선전전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이날 협정 종료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으며 매우 유감”이라며 “일·한과 일·미·한이 적절히 연대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재고와 현명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을 주도한 이번 사태의 장본인 중 한 명인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서로 차원이 다른 협정과 국내 행정 절차인 수출관리제도를 연계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무역보복 조치에 대해서도 “엄숙한 자세로 실행하겠다”고 말해 오는 28일 예정대로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을 시행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28일부터 식품·목재를 제외한 전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시 일본 정부가 군사 전용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건별 허가절차를 밟도록 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통과시켰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엄형준·박현준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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