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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조각상 원래는 화려… ‘흰색의 미학’ 편견에 色을 잃었다 [박상현의 일상 속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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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은 흰색이었을까 / 학자들 조각 표면서 물감자국 발견 / 유럽지역 인종차별·백인 우월성 등 / 잘못된 사고 팽배… ‘진실’ 외면 받아 / 르네상스 시대 거쳐 세계적 추세로 / 獨 브링크만 ‘채색된 신들’ 전시회 / ‘하얀 대리석이 정통’ 통념 깨뜨려 / 불상 등 동양전통 따른 인물상 제외 / 서양문물 수용 국내 조각상도 유사

어린 시절 학교에서 근처의 사찰로 야외학습을 간 적이 있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절이었지만 불교와는 거리가 먼 집안에서 자란 내게 절은 아주 낯선 곳이었다. 경내에 가득한 향냄새,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 등 내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모든 정보가 이질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낯설었던 것은 시각정보였다. 특히 사찰 입구에 있는 천왕문을 통과하면서 마주친 사천왕상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사람보다 훨씬 큰 조각이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내려다보는 모습은 어린 시절, 불교라면 그저 불상 정도만 알고 있었던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사천왕상이라는 형태 자체가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놀란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만큼 강렬했던 것은 사천왕상의 색이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에 사용된 단청(丹靑)과 비슷하게 청, 적, 황, 백, 흑이 사람의 모습을 한 조각상에 적용되었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겠지만, 그것이 어떤 색이든 상관없이 거대한 인물상이 그렇게 채색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전달하는 느낌은 일종의 두려움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내가 본 인물조각은 채색되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가령 김경민 조각가의 작품 같은) 공공예술 등을 통해 채색된 인물상을 보는 일이 드물지 않지만, 조금만 오래된 조각상들을 생각해보면 대부분 채색을 꺼려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광화문의 이순신상(1968)이나 비교적 근래에 세워진 세종대왕상(2009)에 페인트로 사실적인 채색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멀쩡한 동상을 왜 천박하게 만드느냐는 항의가 빗발칠 게 분명하다. 그 두 동상은 추상조각이 아니고 실존인물을 사실적인 방법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더욱 사실적으로 보이도록 피부색과 곤룡포의 황금색과 붉은색을 칠하는 것이 왜 이상하게 느껴질까?

그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각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다. 우리는 불상이나 사천왕상처럼 특별히 동양의 전통을 따르는 인물상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동상, 특히 인물상은 채색을 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서양의 전통에서 왔다. 우리나라에는 위인이나 유명한 인물의 모습을 공공장소에 동상이나 석상으로 세우는 전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의 길거리나 공원에 세워진 동상들은 모두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데 서양의 전통적인 조각상들은 그것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든 청동으로 만들어졌든 상관없이 채색을 하지 않고 재료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우리는 그 전통을 가져온 것이다.

세계일보

미켈란젤로(1475∼1564)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에 만든 모세의 대리석 조각상. 르네상스 조각가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들이 채색되지 않은 하얀 대리석이라고 믿고 전통을 이으려 했다.


가령 르네상스 조각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대리석상들을 보면 전혀 채색되어 있지 않다. 미술사라는 학문이 태동한 시점이 바로 르네상스 시기이고, 그 이유는 그때가 훗날 모든 예술가의 존경을 받는 천재적인 대가들이 집중적으로 등장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아는 밀로의 비너스 등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 역시 하얀 대리석이기 때문에 서양 미술사는 채색되지 않은 하얀 대리석 조각이야말로 정통이었고,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사실일까?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항상 새롭게 다시 쓰인다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만큼 충격적인 변화를 겪는 역사도 드물다. 2003년 독일 뮌헨에서 시작되어 10년 넘게 전 세계를 순회한 ‘채색된 신들(Gods in Color)’이라는 전시회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들이 흰색이었다는 상식을 통째로 뒤집어 버렸다. 독일의 고고학자 빈첸츠 브링크만의 오랜 연구의 결과물인 이 전시회는 우리가 처음부터 하얀 대리석으로 제작된 줄 알았던 고대의 석상 대부분이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브링크만과 다른 많은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석상들은 피부와 머리카락, 옷, 장식이 밝고 화려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하지만 파괴되지 않고 후세에 전해진 조각상들은 험한 기후에 노출되어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물감을 모두 잃었고, 땅속에 묻혔다가 꺼낸 조각의 표면에 남아있던 물감은 발굴한 사람들이 흙을 떨어낼 때 함께 떨어져나갔다. 그 결과 르네상스 시절에 이르면 고대의 조각상들은 모두 우리가 아는 하얀 대리석이었고, 르네상스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과거를 되살리려 했던 당시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채색을 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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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에기나섬 아파이아 신전(기원전 약 500년)의 궁수 조각상. 대리석 조각에서 발견된 물감의 흔적을 통해 채색되었던 과거의 형태를 재현한 모습. 출처: Marsyas, 위키커먼즈


그렇다면 브링크만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1980년대 초 석사과정으로 연구하던 시절 그는 고대 조각가들이 어떤 종류의 도구로 돌을 깎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특수한 전등을 사용해서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석상 표면 구석구석에 물감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국은 한 석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그 사실을 안 브링크만의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르네상스 이후로 무수히 많은 미술사학자가 무수히 많은 그리스 로마 조각을 샅샅이 살피고 연구해왔는데 어떻게 1980년대에 들어서야, 그것도 대학원생의 눈에 처음 띄게 되었을까?

이 질문의 답은 바로 유럽인들의 편견에 있다. 유럽의 고고학자들과 미술사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대 조각의 표면에서 물감자국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런 자국을 발견할 때마다 흙과 함께 열심히 털어버렸다. 그들의 생각 속에는 르네상스 거장의 대리석 조각이 있었고, 그 거장들은 당연히 고대의 조각들을 참고했을 것이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르네상스를 잇는 채색되지 않은 하얀 대리석 조각이라는 계보를 가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대표적인 미술사학자가 그 유명한 요한 요하임 빙켈만이다. “신체는 희면 흴수록 아름답다”고 믿었던 그에 눈에 미세한 물감 자국은 띄지 않았고, 보였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한 물감 흔적이 발견되면 그 조각은 그리스 이전의 다른 문명의 유물이라고 치부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에서 백인우월주의의 느낌을 피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근대 이후로 유럽의 인종차별 역사에서 백인의 우월성을 이야기할 때 그리스 로마의 대리석 조각은 꾸준히 등장해왔고, 지금도 많은 백인우월주의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18, 19세기의 유럽학자들은 같은 지중해 문명에 속한 이집트에서 발견된 채색된 조각은 ‘비유럽 문화’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유럽 백인들은 순수한 흰색을 면면히 유지해왔다는 허구를 만들어내어 믿었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인종주의를 믿지 않는 예술가나 학자들도 흰색의 미학을 이어받았던 것이다.

다행히 브링크만을 비롯한 많은 학자의 노력은 21세기에 비로소 결실을 맺었고, 많은 미술사 교과서가 ‘채색된 그리스 로마 조각상’을 정설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고대의 채색 조각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의 사고방식만이 아니다. 우리의 편견과 굳은 사고는 눈앞에 있는 증거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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