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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은행권 DLS·DLF 사태

DLS 투자자 수천억원 날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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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달리 금리 하락해 평가손실

투자자, 불완전 판매 소송 움직임도

은행 "가입 때 수차례 설명 녹취"

금감원, 사모펀드 판매 실태점검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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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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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 5월 10일 우리은행 모 지점을 찾았다. A씨는 창구에 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없는 금융상품에 2억원을 예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창구 직원은 A씨를 이 지점의 부지점장인 PB(프라이빗 뱅커)에게 안내했다.

PB는 A씨에게 5월 17일 설정되는 6개월 만기의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 상품을 권유했다. “원금에 대한 손실이 안 나는 상품”이라고 했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원금 손실이 발생할 만한 상황이 전혀 없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A씨는 이 상품에 가입했다.

DLS는 금리나 환율, 국제유가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금융상품으로 기초자산의 가격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된다. A씨가 가입한 DLS 상품은 독일국채 10년물 금리에 연계됐다.

만기 평가일(11월 15일) 때 이 금리가 -0.3%보다 높으면 연 4.6% 수준의 이자를 제공한다. 만기 평가일 당시 이 금리가 -0.3%보다 낮아지면 그 차이에 손실배수(333배)를 곱한 수준에서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이 금리가 -0.6% 아래로 내려가면 투자원금이 전액 손실되는 구조다.

은행이 PB에게 제공한 상품 안내서에는 2000년 이후 해당 금리의 최저치가 -0.186%(2016년 7월8일)라고 돼 있다.

A씨가 가입한 DLS 설정 시점(5월17일)에 독일국채 10년물 금리는 -0.104%였다. 지난 3월 22일 올 들어 처음 마이너스 구간에 진입한 이후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든 때였다. 미ㆍ중 무역 분쟁이 격화하면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독일 국채로 자금이 쏠린 탓이다. 시장에선 독일 국채 금리가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일찌감치 나왔다. A씨는 PB로부터 이런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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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에서 PB들을 상대로 배포한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 DLF(파생상품 결합증권 펀드) 상품 안내서. 기초 자산인 독일국채 10년물 금리가 낮아지고 있는 와중에 "현재 부진한 성장세는 올 4분기에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원금손실율이 0%인 백테스트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은행 DLS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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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일 국채 금리는 -0.576% 수준까지 떨어졌다. A씨의 평가 수익률은 -80%를 넘겼다. 투자원금 2억원 중 약 4000만원도 채 남지 않았다. 이 돈이라도 건지려면 환매금액의 7%를 중도환매 수수료로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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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채 10년물 금리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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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당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거나 독일 국채 금리가 어떻다는 설명을 조금이라도 들었더라면 그 상품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원금 손실 위험에 노출된 투자자는 A씨 뿐 아니다. 세계경기 둔화와 그에 따른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기조 속에 금리연계형 DLS에 가입한 고객들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대 투자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독일 국채 10년물이나 영·미 CMS(이자율 스와프)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DLS는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등에서 사모 방식(최소 가입금액 1억원 이상)으로 집중 판매됐다. 판매 규모는 우리은행 약 3500억원, KEB하나은행 약 4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평가손실액 역시 수천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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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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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B하나은행에서 금리 연계형 DLS에 가입한 B씨는 “‘(기초자산) 금리가 내려갈 일 없다’는 PB 설명만 듣고 만기된 정기예금을 이 상품으로 옮겼을 뿐”이라며 “올해 금리가 조금 내릴 수 있다고 했으면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완전 판매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지점이다.

해당 은행들은 “아직 만기가 돌아온 것도 아니라서 손실이 발생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이중 삼중으로 상품 설명을 확인받고 녹취까지 저장하기 때문에 불완전판매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기존의 분석이나 예상과 달리 미국 등의 통화정책이 갑작스레 방향을 틀면서 채권 금리가 예상보다 더 크게 떨어지고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 것도 있다. 은행들이 “판매 당시는 미국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게 확실시됐고, 독일 국채 금리가 내려갈 것이란 시장 평가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은행의 책임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상품을 판매한 PB들도 은행의 무리한 판매 요구로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현재 PB들은 은행을 상대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12일에는 우리은행에서 PB 대상 공청회가 열렸다. 높은 판매수수료 등으로 인해 상품의 위험성에도 PB들이 적극적으로 해당 상품을 팔았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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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그룹 통합데이터센터의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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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투자자를 모아 시중은행 등 판매회사와 자산운용사에 대해 계약취소에 따른 부당이득반환소송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키로 했다. 이와 별도로 메신저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해 투자 피해 사례를 수집한 뒤 은행에 대한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금융당국도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2일부터 관련 실태 점검에 나섰다. 분쟁조정국에선 KEB하나은행 판매 상품 관련 4건의 분쟁조정 신청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12일 “DLS 상품 손실에 대해 금감원과 함께 들여다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보게 되면 은행들의 영업 행태도 같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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