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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이슈 [연재] 경향신문 '베이스볼 라운지'

[베이스볼 라운지]델가도와 이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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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카를로스 델가도는 17시즌 동안 홈런 473개를 때렸다. 1997년부터 2008년까지 기록한 10년 연속 30홈런은 메이저리그에서 6명밖에 가져보지 못한 대기록이다. 뛰어난 타자이기도 하지만 델가도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델가도는 ‘평화주의자’였다. 전쟁과 이를 위한 훈련에 모두 반대했다. 고향 땅 비에케스 섬에서 60여년 동안 벌어진 미 해군의 폭격 실험에 대한 반대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비에케스 섬에서는 다이옥신이 포함된 화학무기와 우라늄을 사용한 폭발물의 실험도 이뤄졌다.

델가도의 ‘평화주의 운동’은 계속됐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04년이었다. 미국은 2001년 벌어진 9·11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2003년부터는 이라크에 다시 미군을 주둔시켰다. 미국 전체가 ‘반테러주의’와 ‘애국주의’로 가득 차 있던 상황이었다. 야구장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7회 ‘스트레치 타임’ 때 ‘야구장에 데려다 주오(Take me out to the ball game)’ 노래 대신 애국심을 고양하는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를 함께 불렀다. 뉴욕 양키스의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홈경기마다 이 노래를 틀라”고 지시했다. 선수들은 더그아웃 앞에 줄을 서서 이 노래를 따라했다.

2003시즌 동안 이 노래가 나올 때 동료들과 함께 서 있던 델가도는 이라크 침공 이후인 2004년에는 조용히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것으로 자신의 평화주의 신념을 드러냈다. 9·11 테러는 분명 끔찍한 일이지만, 이를 빌미로 벌인 전쟁 역시 마찬가지로 끔찍한 일이라는 뜻이다. 전쟁을 지지하는 노래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델가도의 신념이었다. 2004년 7월, ‘토론토 스타’와의 인터뷰에서 델가도가 그 이유를 밝힐 때까지 동료들도 델가도의 입장을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홀로 이뤄졌다.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델가도의 신념이 알려진 뒤 첫 뉴욕 양키스 원정 때 양키스 팬들은 엄청난 야유를 퍼부었다. 델가도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를 화나게 할 의도는 없다. 단지 나는 내가 가진 신념대로 행동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만수 전 SK 감독은 지난 3일 밤, ‘조심스러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공개했다. ‘오버하지 말라는 시선’ ‘스포츠에 정치를 연관시키면 안된다는 말’ 등에 대한 걱정을 모두 담으면서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사태 관련 ‘일본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일본과의 협력 프로젝트도 일시 중단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에서 스포츠스타의 정치적 발언은 금기시됐다. 정치적 발언 뒤에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의심받았다. 실제 많은 스타들이 굵직한 선거에 동원됐다. 이를 통해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반대편에서는 ‘운동만 하느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핑계로 입을 다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야구(혹은 스포츠)가 그저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양극단에 머물렀던 오랜 역사 때문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야구로 갚겠다”는 말이 자연스러운 것 역시 이 같은 오랜 역사와 그에 따른 맥락 때문이다.

델가도는 “누구나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고 말했고, 이만수 전 감독은 “야구인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신념을 드러낼 수 있는 야구(혹은 스포츠)는 세상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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