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으로 한미일 군사협력 위기…美도 관여 대신 관망
중러, 동해 상공서 연합초계비행…동북아 신냉전 구도 단면 보여줘
美中 양측으로부터 '택일' 요구받는 한국 외교 중대 시험대
독도 인근 비행하는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 |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23일 중국·러시아 군용기의 연합 초계비행 과정에서 일어난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영공 침범 등은 신(新)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운 한반도 주변 정세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일 '남방 3국'과 북중러 '북방 3국'의 전통적 관계 중 전자는 균열 조짐을 보이고 후자는 '밀월기'를 구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처한 '안보 딜레마'를 보여준 사건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발적인 사건이었다는 러시아 측 설명이 있었지만, 독도 주변에서 이뤄진 중국·러시아 군용기의 도발적인 비행은 자신들의 '결속'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미일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 일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특히 '강경파'인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동맹인 일본을 거쳐 한국을 찾은 날이었다는 점은 상징성을 더했다.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
◇日 경제보복으로 한미일 협력 '삐걱'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이라는 분명한 공동의 과제 앞에서 명맥을 이어온 한미일 3각 공조 체제는 최근 중대한 갈림길에 선 양상이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한국 정부의 후속 대응에 대한 불만을 대한국 경제보복 조치로 표출하면서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추락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논란 속에서도 대북 공조 필요에 근거해 2016년 체결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유지와 폐기의 기로에 섰고, 상황 관리를 위한 한일 고위급 소통 채널이 가동될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맹을 강조하며 한미일 공조의 유지를 위해 한일갈등을 막후에서 중재했던 미국의 전임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로선 양국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촉진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는 백악관 행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일 갈등에 대한 질문에 "일본은 한국이 원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고 그(문재인 대통령)는 내게 관여를 요청했다"며 "아마도 (한일 정상) 둘 다 원하면 나는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갈등에 대한 관여 가능성을 열어 놓고는 있지만, 한일 양측의 요청을 전제함으로써 실제 성사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특히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해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넓혀가는 미국이 역할 분담 등을 위해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등 재무장 행보를 적극 지원하면 한미일 내부의 '균열'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일 갈등 속 미국 존 볼턴 보좌관 한일 방문 (PG) |
◇공고해지는 중러 군사협력…北도 가세 분위기
한일 갈등으로 한미일의 협력에 금이 가고 있지만 북한, 중국, 러시아는 뭉치고 있다.
올해 들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러와 잇달아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전통적 우호관계 복원에 나섰고,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에 맞선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는 쪽으로 보폭을 확대하고 있다.
'상하이협력기구'라는 안보협력의 틀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4월 말∼5월 초 중국 칭다오(靑島) 근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하더니 23일에는 동해를 포함한 아태지역에서 연합 초계비행까지 하는 등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의 '찰떡공조'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맞선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특히 한일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독도 주변의 한국 영공을 러시아 군용기가 침범한 것은 흔들리는 한미일 간의 '약한 고리'를 시험해보려는 시도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또 북미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자신들의 자기장 안으로 더 끌어들이는 형국이다.
4월 북러 정상회담, 6월 북중 정상회담 등 계기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약속이나 한 듯 비핵화 상응조치 차원에서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를 강조했다.
여기에는 주한미군, 한미동맹, 유엔군사령부 등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지탱해온 기존 시스템이 약화하기를 바라는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 이해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은 대미 협상 실패 시를 대비한 '보험' 차원에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고, 중·러는 대미 협상에 나선 북한을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는 '전략적 공생관계'를 보이는 셈이다.
[이태호 제작] 일러스트 |
◇대결의 최전선이 된 한반도…'적이냐, 친구냐' 선택 요구받는 한국
결국 한미일 남방 3국과 북중러 북방 3국 간 대치의 최전선이 한반도에 그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서 한국 외교는 다시 한번 중요한 시험대에 섰다. 특히 미·중 양국으로부터 '적'과 '친구' 중 택일을 요구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크게는 미중이 치열한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이에서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는 문제부터, 작게는 화웨이(華爲) 제품 사용 문제까지 한국은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또 아직 끝나지 않은 사드 관련 중국의 경제보복, 일본의 경제 보복,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등은 한국의 어깨를 더욱더 무겁게 한다. 작년 3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를 구축했던 남북관계가 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삐걱대는 점 또한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반도 신냉전 구조는 북핵 문제 해결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과 중러 간의 전략갈등이 한반도에서 고조될수록 미국은 북한의 안전보장 요구를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바라보며 신중하게 접근을 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역시 미중 무역전쟁과 전략경쟁 심화 속에 북한이 가진 전통적인 완충지대의 효과를 놓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결국 한반도 냉전을 깨는 '현상변경'의 동력보다는 '현상유지'의 동력이 크게 작용할 위험이 있는 셈이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동북아에서) 큰 판이 흔들리고, 판이 바뀌는 과정일 수 있다"며 "우리로선 북핵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다른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초점이 흐려질 수 있고 북한도 동북아 정세의 혼란 속에 핵 보유의 동기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택해온 우리 정부의 전략도 도전받고 있는 형국"이라며 "큰 판을 읽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의 새로운 국가전략 또는 외교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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