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비핵화 협상·日 수출규제 등에 / 韓·美·日 안보협력 체제 느슨해지자 / 군사행동 통해 주도권 장악 노린 듯 / 中·러 사전협의 거쳐 함께 비행 관측 / “대응 소극적” 지적 “긴장 고조” 우려도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23일 오전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과 독도 영공을 침범하면서 한반도 일대가 강대국들의 무력시위 무대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군용기가 우리 측의 반발을 무시한 채 카디즈를 드나드는 상황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하면서 향후 한반도 일대에서 중국 러시아의 영공 침범행위가 재발할 우려도 제기된다.
◆한·미·일 안보협력 헐거워지자 중·러 ‘틈새 파고들기’
중국·러시아의 이번 카디즈와 영공 침범은 한·미·일 안보협력에 맞선 중국과 러시아의 무력시위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中·러 무관 초치 두농이 중국 국방무관(좌측 사진 왼쪽)과 니콜라이 마르첸코 주한 러시아 공군무관(우측 사진 왼쪽)이 23일 중국 군용기와 러시아 군용기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한 것과 관련해 서울 용산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한·미·일 3국은 오랜 기간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에 맞서 정보공유와 한·미, 미·일 연합군사훈련 등을 통해 긴밀한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해 왔다. 특히 미 핵추진항공모함을 비롯한 전략자산이 참가한 가운데 동해상에서 실시됐던 한·미 연합훈련은 동해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효과도 적지 않았다는 게 군 안팎의 분석이다. 하지만 남북 화해 분위기와 북한 비핵화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중단되고, 대규모 연합훈련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미동맹의 효용성이 낮아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기에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로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국내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재검토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가 이완되는 기미가 뚜렷해졌다. 군 소식통은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행동을 통해 한·미·일 3국의 안보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동해에서 주도권 장악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전에 준비한 도발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 카디즈 진입을 사전에 준비한 정황도 포착됐다. 군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카디즈에 함께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양국의 군용기가 사전 협의 없이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만나 함께 비행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장거리를 비행하는 전략폭격기의 경우 비행경로 설정과 해상 불시착 등에 대비할 해군 함정 사전배치 등의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경북 포항 동쪽 해상과 이어도 남쪽 해상에 중국 호위함들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해 중국과 러시아가 사전 협의와 준비를 거쳐 동해에서 군용기를 동원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우리 군의 군사대비태세를 떠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발을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냉전시절 러시아 군용기들은 서방 측 영공을 넘나들면서 영공방위태세가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를 살폈다. 위험한 방법이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것과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독도 영공을 침범한 비행기가 정보수집을 담당하는 A-50 조기경보통제기라는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는 평가다.
中·러 대사 초치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왼쪽)와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가 23일 오후 중국·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 및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 이날 오전 중국·러시아 군용기들이 한국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뒤 러시아 군용기 1대가 독도 영공을 침범해 우리 군이 경고사격을 가했다. 이재문 기자 |
◆“정부 대응 약했다” VS “긴장 고조”
정부는 지난해부터 중국 군용기의 카디즈 침범이 지속되자 주한 중국대사관 국방무관 등을 불러 항의해 왔다. 하지만 중국 군용기가 이어도를 지나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비행하는 등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 정부 대응수준이 약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반면 영공 침범에 대응하는 과정이었으나 경고사격을 했다는 점에서 러시아가 도발 수위를 높일 경우 한·러 간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우리 군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카디즈 진입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결과”라면서도 “러시아가 앞으로 군용기를 동해로 보낼 때, 정찰기뿐만 아니라 전투기를 같이 보내 긴장 상황을 높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이정우 기자 psc@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