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간판 감독 5개월간 잇단 해임
재임 내내 경질설 리더십 큰 상처
기다리지 않는 중국 축구계 속성
중국행 꿈꾸는 감독·선수 참고를
5개월 사이 두 차례 해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을 경험했다. 중국 프로축구 무대에 도전한 최강희(60) 전 다롄 이팡 감독이 겪었던 황당한 사건의 전후 스토리다.
최강희 감독은 1일 다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다롄 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최 감독의 중도 사퇴 소식을 알렸다. 구단 측은 ‘계약 해지’라고 했지만 사실상 해임이었다. 지난 2월 취임했으니 5개월 만이다. 최 감독이 중국에서 쓴맛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K리그 전북 현대 사령탑에서 물러나 ‘대륙 정벌’을 외치며 톈진 취안젠(현 톈진 텐하이)에 부임했다. 하지만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쫓겨나듯 팀을 떠났다. 모기업(취안젠 그룹)이 파산으로 공중분해 되면서 구단이 사라졌다.
지난해 12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홈팬들에게 작별인사하는 최강희 감독.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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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출발한 다롄에서도 최 감독은 반년을 버티지 못했다. 재임 기간 내내 중도 경질설이 끊이지 않았다.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다. 중국 축구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다롄은 최 감독과 계약한 뒤에도 좀처럼 신뢰를 보여주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임 감독 인선을 시작했다”며 “신임 라파엘 베니테스(59·스페인) 감독의 협상 과정 및 내용이 시시각각 언론을 통해 노출됐다. 곧 떠날 가능성이 높은 지도자에게 충성할 선수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다롄이 감독 교체를 서두른 건 표면적으로 성적에 대한 조바심 때문이다. 다롄은 올 시즌 초반 15경기에서 4승(5무6패, 승점 17)에 그쳤다. 수퍼리그(프로 1부리그) 16개 팀 중 10위다. 구단 수뇌부는 당초 최 감독에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리그 1~3위 또는 FA컵 우승) 확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감독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았다. 야니크 카라스코(26·벨기에), 마레크 함식(32·슬로바키아) 등 외국인 선수들이 앞장서서 최 감독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동국(40)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전북과 달리, 다롄 선수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다.
전북 고별행사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동국(왼쪽)과 그를 다독이는 최강희 감독. 에서는 이동국처럼 최 감독을 따르며 팀의 구심점 역할을 맡을 선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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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계는 외국 지도자나 선수에게 충분한 적응 기간을 주지 않는 거로 악명이 높다. 감독에겐 데뷔전부터 승리를, 선수에겐 공격 포인트를 요구한다. 거액의 이적료와 연봉을 주는 만큼, 즉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보편적이다. 실리에다 명분까지 챙기는 중국 문화 역시 툭 하면 선수와 감독을 교체하는 원인이다.
이장수(63) 전 광저우 헝다 감독은 2년 6개월간 팀을 이끌면서 단 4패만 기록했는데도 중도 해임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우승 감독인 마르첼로 리피(71·이탈리아)에게 지휘봉을 맡기면 팀의 가치가 더 올라갈 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런 결정이 나왔다.
최강희 감독도 상황이 비슷하다. 다롄이 새 감독을 찾는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중국 축구계의 관심은 온통 협상 대상자인 베니테스 감독에게 쏠렸다. 구단이 1700만 파운드(176억원)의 연봉을 제시한 소식도 대서특필됐다. 이 과정에서 최 감독은 철저히 소외됐다.
광저우 헝다 사령탑 시절 이장수 감독. 2년 6개월간 헝다를 이끌며 중국 2부리그와 1부리그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같은 기간 헝다를 중국 최강팀의 반열에 올려놓고도 경질당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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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인들에게 중국 수퍼리그는 ‘엘도라도(El Dorado·금가루를 뒤집어쓴 사람이라는 뜻. ‘황금 도시’를 상징한다)’로 여겨져 왔다. 돈만 본다면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최 감독이 다롄에서 보장받은 연봉은 800만 달러(93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북 시절(9억원·추정액)의 10배가 넘는 액수다. 전북 출신으로 베이징 궈안에서 뛰는 국가대표 수비수 김민재(23)의 연봉도 300만 달러(35억원)다.
이 같은 거액의 이면에는 많은 함정이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투자 대비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면 즉시 짐을 싸야 한다. 계약 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적지 않은 지도자와 선수가 팀을 떠난 이후 송사에 휘말리곤 한다.
다행히 최강희 감독은 중국에서 도전을 이어갈 수 있을 전망이다. 전북 시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보여준 리더십을 기억하는 몇몇 구단이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낸다는 후문이다.
부디 세 번째 도전은 성공적이기를, K리그의 ‘간판’ 지도자가 더는 황당한 이유로 지휘봉을 내려놓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최 감독 본인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강을 자부해온 K리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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