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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판문점의 세 정상, 의미 크지만 이견 좁혀졌다는 증거는 없어”…“미 ‘현상유지’ 유혹 생길 수도, 한국이 내용적 중재 들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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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정상회동의 의미와 전망 대담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 자문연구위원·김준형 한동대 교수

경향신문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왼쪽 사진)과 김준형 한동대 교수가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하루 뒤인 지난 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회동 의미와 결과 등에 대한 대담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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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정상의 지난달 30일 판문점 회동은 수십년간 적대관계에 있던 북·미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나들고, 하노이 회담 이후 교착됐던 대화 재개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본게임은 지금부터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지난 1일 경향신문과 대담하며 “판문점에서 세 정상이 사진 한 컷에 들어갔다는 건 굉장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서도 “이견이 좁혀졌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고 평가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북한의 도발이 없는 현상유지에 대한 유혹이 미국에 생길 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내용적 중재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 조성렬

비핵화 프로세스 재가동에 가장 큰 의미

핵 포기 후 체제 보장 → 경제 지원 ‘북 셈법’

북·미 간 합의점 찾게 하는 게 한국의 과제

■ 김준형

하노이 회담서 문제 됐던 비핵화 정의

큰 틀에서 합의하고 부분적 실천 모색

트럼프, 실무협상 유연성 신호 보낸 것


- 판문점 회동을 평가한다면.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이하 조성렬) = 한반도의 비핵화 프로세스가 다시 가동됐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중재자 역할을 했다. 한국 정부는 북·미에 명분을 줘서 두 정상이 부각될 수 있도록 했다. 북한은 미국과 어느 정도 합의가 나오기 전에 남한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는데, 이를 잘 알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모든 공을 돌리면서 그를 (북·미 대화에) 계속 붙들어 놓으려는 의도가 있던 것 같다.

김준형 교수(이하 김준형) = 북·미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고,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유연한 접근’을 언급하는 등 경색 국면이 풀리는 기미가 있었다. 판문점 회담은 물줄기를 한 번에 확 바꿨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북·미 정상이 만나면서 ‘톱다운’ 방식이 그대로 간다는 것을 확인했다. 53분간 사실상의 단독회담이 됐기 때문에 ‘3차 정상회담’으로 불러야 한다고 본다.

- 53분간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조성렬 = 김 위원장이 악수하고 사진 찍으려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마무리 못한 얘기를 하려 했던 것 아닐까 한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군부의 불만과 경제회복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주민들의 좌절감으로 내상을 입었는데 이를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하지 않도록 억제하려 했을 것이다. 톱다운 형식을 취하면서 정상들의 위임을 받은 실무회담을 이끌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김준형 = 북한은 하노이 회담 후 미국이 ‘셈법’을 바꾸도록 하려고 단거리 미사일을 쐈고, 러시아와 중국 정상을 만나 배후를 다졌다. 이후 북·미 간 친서가 오갔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 북·미 정상이 (올해) 후반부에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판문점 회담이 이뤄지면서 시간을 압축시킨 측면이 있다. 두 사람이 단순히 상봉만 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선물에 그쳤을 것이다. 북한은 회동에서 미국에 셈법 변경을 요청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성격상 구체적 조건을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톱다운’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점은 말했을 수 있다. 하노이 회담에 대한 오해를 풀어줬을 것이고, 판을 깨려고 한 게 아니라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것이었다고 달랬을 것 같다.

-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뭘까.

조성렬 =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외교적으로 가장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이 북핵 문제다. 노벨 평화상도 욕심을 내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연말까지 가져갈 것으로 봤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치고 나온 것이다.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김 위원장의 계산이 작용됐을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의 결렬 분위기를 연착 분위기로 바꾸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김준형 = 판을 깨지 않겠다는 생각은 분명한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은 한반도 상황이 다시 2년 반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최고 업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유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얻는 게 없어 다시 전략도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에게 전략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거나 김 위원장을 누그러뜨리려는 거였다. 불안요소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을 끌어도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면 현상유지에 대한 유혹을 받을 수 있다.

- 김 위원장은 왜 급해졌나.

조성렬 = 김 위원장이 제시한 ‘새로운 길’은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김 위원장에게 ‘베스트’는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들고 와 북한이 실질적으로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궁극적으로 경제개발을 지원받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지만 별다른 선물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와주길 바라면서도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니까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김준형 =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비무장지대(DMZ)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힌 뒤,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몇 시간 뒤 ‘공식 제안’을 해달라고 반응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냥은 만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북한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본다. 북한의 ‘플랜A’는 여전히 미국과 해결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 나갔을 때 조급한 모습으로 보이면 안되니, 미국 측의 언질이나 신호를 받았을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싱가포르정신’은 신뢰를 통해 셈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게 작동했다고 본다.

- 미국이 유연성을 발휘할까.

조성렬 = 미국은 동시·병행적 접근을 얘기한다. 비건 대표가 언급한 ‘유연한 접근’이 뭘 뜻하느냐가 관건이다. 지금까진 톱다운 방식으로 합의를 하고 실무회담은 정상의 합의를 뒷받침하는 정도라면, 앞으로는 실무자들이 권한을 더 위임받는 형태가 될 것 같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 외무상의 큰 틀은 유지하되, 실질적 협상은 비건 대표와 최선희 제1부상이 진행할 것 같다. 포괄적 합의는 물론 제한적이지만 이행 문제까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조기수확’이다. 톱다운 방식에서는 합의가 끝나야 이행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실무회담을 시작하면서 작은 이행을 병행하지 않을까 한다.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을 재개하면 실무회담의 작은 성과를 만들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남북경협을 이용해 북한을 달래고 신뢰도 쌓을 수 있다.

김준형 = 미국이 동시·병행적 이행을 얘기하는 것은 북한이 비핵화의 ‘엔드스테이트’(최종 상태)를 먼저 밝히라는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단계적 이행이 훨씬 현실적이지만, 문제점은 중간 것을 합의한 다음에 거래를 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아직 비핵화 정의도 준비가 안됐다는 것으로, 하노이 회담에서 가장 문제가 됐다. 판문점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실무협상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큰 틀에서 합의를 하되 실천은 부분적으로 조기수확하는 방향이다. 그러나 1·2차 북·미 정상회담 모두 이번처럼 분위기를 띄웠다가 이후 실무회담에서 교착됐다. 이번에도 난관이 있을 수 있다.

-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조성렬 =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유는 첫번째로 영변에 대한 공동정의, 즉 비핵화 대상과 범위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핵화 대상과 범위를 명확하게 확정지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한 이후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 단거리·준중거리 미사일, 생화학무기는 계속 가지려 할 것이다. 북·미가 합의를 보려면 영변의 공동정의는 북한 입장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 본다. 두번째는 미국의 관심사인 핵무기와 중거리 이상의 운반수단에 관한 것이다. 이 부분은 미국이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어느 시점에 핵무기를 신고할 것인가를 미국에 약속해줘야 한다. 북·미 간 합의점을 만들어내게 하는 게 한국 정부의 큰 과제이다.

김준형 = 한국 정부의 선택은 두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싱가포르·하노이 회담 때처럼 방법론적으로 중재를 한 다음에 둘이 해결할 때까지 놔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두번의 교착을 반면교사 삼아 이번에는 내용적으로 중재안을 만들어 북·미를 설득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재까지 행보를 보면 북·미가 고비를 넘길 때까지 기다릴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용적 중재를 해야 한다. 시간을 끄는 것을 막고, 트럼프 대통령이 현상유지를 선택할 위험을 막기 위해서도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 남북관계는 언제쯤 풀릴까.

조성렬 = 북·미가 대화 재개에 합의했기 때문에 남북대화 가능성도 열렸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사실상 북·미관계에 종속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장관급회담이나 군사회담 등도 머지않아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김준형 = 북한이 한국에 대해 보다 우호적 자세로 나오겠지만, 남북관계는 북·미의 실무협상 진행 상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여전히 한국이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지 시험할 것이다.

이주영·정희완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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