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코드 등재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축은 미국정신의학협회(APA)와 국제보건기구(WHO)이다. 이 중 APA는 게임 질병화와 관련해 정신질환진단통계편람(DSM-5)에서 명확한 정의와 증상, 진단기준이 없으므로 질환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APA 입장은 현재까지 변함없는데, 학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며 찬반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옥스퍼드대와 존스홉킨스대 등의 정신건강 전문가 36명은, WHO의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질병화 등재에 대해 “명확한 진단기준이 없고, 근거가 빈약하며, 찬성측 연구자조차 정확히 정의하지 못한다”는 반박 논문을 내기도 하였다. WHO는 질병등재 이후에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된다고 하는데, 명확한 정의와 통일된 진단기준, 규명된 증상도 없이 질환으로 먼저 인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과학적 절차인가? 특히, 게임으로 인한 뇌구조 변화와 기능 저하, 호르몬 변화 등 질환인정의 근거가 되는 연구에 대해서도 견해를 달리하는 주장이 적지 않은데, 질병으로 등재하면 이러한 과학적 이견도 해결되는 것인가?
WHO는 과도한 게임이용으로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피해를 겪는 경우에 한해 질병으로 치료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은 비단 게임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스마트폰이나 SNS 등을 통한 심각한 정신건강적 피해 사례는 급증하고 있으며, 운동중독·쇼핑중독·성중독 등을 통한 극단적 피해 사례와 범죄와의 연관성을 보고하는 논문도 상당하다. 그러나, WHO는 이들에 대해서는 질병으로 보지 않고, 마약이나 도박과 동등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들과 달리 유독 게임은 극단적 사례를 지목하여 마약중독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 질병으로 인정해야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피해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일까? 게임과몰입을 통한 피해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충동조절장애나 공존질환 등으로 상담치료가 가능하다, 최근 국내의 대표적인 게임과몰입센터는 내원자들의 90% 정도가 공존질환을 보였고, 공존질환 호전과 함께 가족과 학교 문제의 회복을 통해 문제가 개선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게임과몰입이 단순히 게임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접근할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쟁적 입시제도에서 가정과 학교에서 비롯되는 부모의 과잉기대와 간섭, 학업스트레스 등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과도한 스트레스와 자기통제력 상실에 놓인 취약 청소년들은 게임과몰입이 아니라도 스마트폰이나 유튜브, SNS 등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게임질병화 조치로는 그러한 피해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게임을 드라마나 K-pop, 유튜브 등과 같은 문화콘텐츠 부류로 보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마약이나 도박처럼 정신질병 차원의 위험물질이나 문제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합법적 유통이 극히 제한되는 마약과는 달리, 그리고 19세 미만은 이용불가인 담배, 주류, 도박과는 다르게, 게임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로 유통된다. 문화적 도구로써 게임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있고, 국제게임대회와 게임방송, 글로벌 게임전시회 등이 존재한다. 특히, 한국 게임시장은 세계 5위권의 규모로 연매출 10조원대, 30억불 수출로 한류 문화를 견인하고 있다. 게임이 문화콘텐츠가 아니라 먀약과 같은 부류로 심각한 정신질환과 극단적 피해를 야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한국은 그런 위험물을 모든 연령대에게 허용하고 심지어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비도적적인 나라가 아닌가?
WHO의 질병화 대상이 당초 IT기기와 콘텐츠 전반에서 시작해 게임으로 수렴된 것은 게임이 이용자를 몰입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게임은 기술적으로 상호작용성(interactivity)과 다양한 감각기능(multimodality)을, 콘텐츠적으로 내러티브와 특수한 미션과 역할(role)을, 커뮤니케이션으로 소통 기능을 담고 있다. 그래서, 강력한 이용자 몰입을 통해 콘텐츠의 사회적·인지적·심리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툴로써 디지털문화 환경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물론, 그러한 강력한 몰입력과 함께 나타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고, 그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 사례를 토대로 과학적 근거와 타당성, 그리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질병화를 추진하는 것은 합당한 과학적 절차도 아니며 근본적 해결책도 될 수 없다. 게임 질병화라는 극단적인 조치보다는 게임의 강력한 효과와 문화적 활용성, 그리고 사회환경적 영향요인을 고려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발전적인 전략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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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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