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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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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이 슈퍼로’ 대전의 쇠락…“원도심 혁신도시만이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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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균형발전 위해 조성된 세종시

되레 충청권 인기업 블랙홀로

5년간 대전→세종 10만여명 이동

충남 “6년동안 경제 손실액 25조”

대전 원도심·충남 내포신도시

혁신도시 추가 유치에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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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심은 한산했다. 지나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가게 주인들은 오래도록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1999년 시청이 서구 둔산으로 이사하고, 대전극장이 문을 닫은 뒤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세종시 첫마을 입주가 시작된 2012년 초부터는 단골손님도 많이 줄었네요.” 지난 20일 오후 대전 동구 중교통에서 만난 약사 김아무개(66)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도시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다. 원도심이 사는 길은 공공기관·기업이 들어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대전천변의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안광금(47)씨는 “지금은 슈퍼마켓이지만 여기가 예전에는 대전백화점이었다. 대전 최고의 상권이었는데 지금은 1층만 슈퍼로 쓴다. 도시가 살아나 2, 3층에 여성복 매장, 식당이 영업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은 세종시 건설로 인구유출의 ‘직격탄’을 맞은 지역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정부세종청사가 준공되는 등 세종시 입주가 본격화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대전시민 8만73명이 세종으로 순이동(전출-전입)했다. 대전세종연구원이 집계한 2013년부터 2018년 사이 세종으로 이주한 대전시민은 10만7355명으로, 같은 기간 전국에서 세종시로 전입한 30만3092명의 35%를 차지했다. 인구가 유출되면서 대전 안에서도 인구 이동이 급속도로 이뤄졌다. 신도심 인구가 세종시로 빠져나가면서 원도심 인구가 다시 신도심으로 이동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원도심은 더욱 위축됐다.

대전시 자료를 보면, 세종시로 이주한 대전시민 가운데 70%(7만3019명)가 신도심 쪽인 서·유성구 주민이었다. 대전시 자치분권과 남태곤 박사는 “1990년대 시청이 신도심인 서구 둔산동으로 이전하면서 원도심인 대덕구, 중구, 동구에서 젊은 경제인구가 서구 쪽으로 이동했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2010년대 초까지 유성 노은동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도안신도시로 한 차례 더 옮겨 갔다가, 또다시 세종시로 이주했다”고 분석했다. 남 박사는 “경제인구의 이동으로 원도심은 골목상권이 붕괴하고 사무실과 주거지가 공동화됐다. 대전은 생산인구 상대적 성장률이 2014년까지 전국 평균을 웃돌았으나 이후 인구가 줄어 쇠퇴지역에 진입했다는 학계의 연구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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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로 빠져나간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대전의 중견기업들도 세종시로 터전을 옮겼다. 특장차를 만드는 ㅇ산업, 자동차용품을 판매하는 ㅌ업체, 광학기기를 생산하는 ㅅ산업 등이 이전했다. 대전상공회의소 기업환경조사팀 천희영씨는 “세종시 조성 당시, 대전보다 공장 부지를 확보하기 쉽고 땅값도 저렴한데다 세제 혜택이 커 기업들이 이전을 택했다”며 “부동산 가치 상승효과도 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충남도 사정은 비슷하다. 충남도는 2012년 연기군이 세종시로 분리되자, 당시 기준 인구 9만6천여명과 지역내총생산(GRDP) 1조7994억원이 줄었다. 연기군 전역(361㎢)과 공주시(77㎢) 일부 땅도 세종시에 내줘야 했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세종시 건설로 충남의 경제 손실액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 동안 모두 25조2000억원에 이른다”며 “지역인재 채용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하더라도 충남은 세종시 건설에 따른 최대 수혜지역이 되는 듯했다. 당시 정부가 2004년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자, 첫해 22개, 2007년에는 378개 기업이 이전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자 292개로 감소하더니, 2012년 69개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도 수도권 규제 완화 기조를 이어가자, 2014년 충남으로 이전한 기업은 32개로 쪼그라들었다. 그 뒤부터는 관련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에 있던 충남도청을 충남 홍성·예산군 경계로 이전하면서 조성한 내포신도시는 인구 유입이 안 돼 정착이 더딘 상황이다. 2020년까지 인구 10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자족형 신도시로 계획됐으나, 현재 인구는 2만5천여명에 그친다.

대전과 충남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행정도시 백지화에 맞서 세종시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조성된 세종시가 되레 충청권 인구와 산업을 흡수하는 ‘블랙홀’로 작용해 주변 지역의 쇠퇴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상선 충남시민재단 이사장은 “충남이 균형발전의 최대 수혜지역으로 알려졌지만, 연기군 전부와 공주시 일부를 세종시에 내주고 건설을 지원한 결과는 역차별과 박탈감뿐”이라고 말했다.

이들 두 지역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혁신도시가 없다는 점이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과 세종을 빼고 전국 13개 시·도 가운데 혁신도시가 없는 곳은 대전, 충남 두 곳뿐이다. 노무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세종시와 10개 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할 때, 세종시가 충남 관할에 조성되고 대전에는 이미 정부대전청사를 비롯해 다수의 공공기관이 이전해 있다는 이유에서 2005년 이들 두 곳을 대상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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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에서 이들 두 지역은 혁신도시를 유치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대전은 쇠락한 원도심에, 충남은 자리 잡지 못한 내포신도시에 혁신도시를 유치하는 것이 도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양승조 충남지사와 허태정 대전시장은 지난 17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방문한 데 이어, 18일에는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혁신도시 지정과 공공기관 이전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여당 지도부는 당 차원의 지원을 약속한 상황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혁신도시 지정도 중요하지만 공공기관 2차 이전도 중요하다. 올해 말에 공공기관 지방이전 용역 결과가 나오면 면밀히 검토하고 정부와 협의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은 기존에 조성된 대덕연구단지와 코레일 본사 등이 있어 과학기술, 철도 등 지역과 관련된 분야의 기관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광주대 교수)은 “혁신도시 시즌 2를 맞아 추가로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는 기관은 최대 210개, 이들 기관이 투자·출자한 회사는 최대 279개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대전시가 유치에 나선 기관·회사는 과학기술, 철도, 특허, 중소기업 등 24개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기관·기업이 쇠퇴하는 대덕구, 중구, 동구로 이전한다면 원도심을 살리고 대전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토교통부가 조속히 결단을 내려 대전 원도심을 혁신도시로 추가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충남도는 내포신도시를 혁신도시로 지정하면 기존의 경부축 중심의 국토발전축을 동서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용준 충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종시는 30개 중앙행정기관, 15개 정부출연기관이 이전해 현재 32만명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균형발전 효과가 세종시의 동쪽에 편중돼 서쪽의 균형발전 거점이 필요하다. 내포신도시 주변에는 자동차 부품, 석유화학, 철강 등 국가기간산업이 포진해 있어 혁신도시로 지정할 경우 문재인 정부의 환황해권 중심 도시 육성 공약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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