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이슈 수돗물 유충 사태

[르포] '붉은 수돗물' 여파…생수통 가득 찬 학교 급식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리사들, 생수로 밥 짓고 학부모 민원까지 겹쳐 '이중고'

인천 학교 67곳은 생수 급식…대체·위탁 급식도 57곳 달해

연합뉴스

급식실 한편에 쌓인 빈 생수통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12일 오전 인천시 서구 한 중학교에서 조리 실무사가 빈 생수통을 정리하고 있다. 2019.6.12 chamse@yna.co.kr (끝)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일선 조리 종사자들은 급식 문제에 학부모들 민원으로 인한 감정 노동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행정당국이 하루빨리 붉은 수돗물 사태를 해결해야 안전한 급식을 할 수 있습니다."

인천 '붉은 수돗물(적수)' 사태 14일째인 12일 오전 인천시 서구 모 중학교 급식실에는 배식을 2시간 앞두고 흰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영양사와 조리 실무사 3명이 재료 손질에 정신이 없었다.

한 실무사는 성인 여성 상체만 한 크기의 18.9ℓ짜리 생수통을 드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다른 실무사의 도움을 받아 겨우 통을 들어 올린 그는 힘겹게 국통에 생수를 쏟아부었다. 급식실 한편에는 빈 생수통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이 학교에는 1∼3학년생 302명이 재학 중이다. 매일 오전 8시 10분부터 이들 영양사와 실무사 등 4명이 급식을 준비한다.

302명분 급식을 만들려면 하루 380ℓ에 가까운 물이 필요한데 조리원과 영양사 넷이서 무거운 생수통을 일일이 옮겨서 써야 해 번거로움이 큰 상황이다.

게다가 적수 사태 초기에는 급식 안전을 걱정하는 학부모 민원이 학교로 빗발치면서 본래 업무를 하지 못할 정도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연합뉴스

생수로 급식 준비하는 조리 실무사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12일 오전 인천시 서구 한 중학교에서 조리 실무사가 급식을 준비하고 있다. 2019.6.12 chamse@yna.co.kr (끝)



붉은 수돗물 사태의 여파로 지난 4∼5일 대체 급식과 단축 수업을 했던 이 학교는 이후 한 통에 5천500원꼴인 생수를 사들여 급식을 조리하고 있다. 비용은 추후 인천시에서 지원한다.

학교 측은 매일 오전 오후 마스크를 필터로 삼아 수질을 점검하는데 이날 오전 10시께 걸어둔 마스크가 1시간 만에 까맣게 변했다. 아직도 적수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학교 영양사는 "대체급식을 시행하라는 지시도 전날 오후 늦게 받아 부랴부랴 납품업체에 접촉해 물량 확보에 나섰다"고 털어놨다.

그는 "인천시교육청 슬로건대로 맛있고 즐겁고 건강한 학교 급식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시는 구체적인 수질 개선 방안을 확보해달라"고 요청했다.

연합뉴스

까맣게 변한 마스크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12일 오전 인천시 서구 한 중학교에 급식실에서 수도에 씌워둔 필터용 마스크가 까맣게 변질돼 있다. 2019.6.12 chamse@yna.co.kr (끝)



이 같은 상황은 적수 피해지역인 서구와 영종도 내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에서도 열흘 넘게 똑같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기준 피해지역 학교 총 138곳 가운데 생수를 써서 급식을 만드는 학교는 67곳이다. 급수차를 지원받아 배식하는 학교도 10곳이다.

교내에서 아예 자체 조리를 하지 않고 대체급식이나 외부 위탁 급식을 하는 곳도 57곳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일선 현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대체급식 물량 확보로 인해 위생상 허점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 전날 오전에는 적수 사태로 인해 이달 10일부터 대체급식을 했던 서구 한 중학교에서 학생 13명이 식중독 의심 증세를 보여 보건당국이 역학 조사에 나선 상태다.

서구 한 중학교 영양사는 "서구 지역의 사실상 모든 학교가 적수 사태로 피해를 입다 보니 배식 물량을 확보하기도 어려웠다"며 "학교는 납품업체로부터 빵이나 주스 등 완제품을 받아서 배식만 할 뿐인데 한 학교에서는 식중독까지 발생했다고 해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영종도 한 초등학교에 아들을 보내고 있는 학부모 김민영씨도 "아이가 아토피 때문에 대체급식을 먹을 수가 없어 불가피하게 도시락을 싸 줬다"며 "이런 상황인데도 중구청이나 인천시는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피해지역 확산 (CG)
[연합뉴스TV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시교육청은 모든 학교의 수돗물이 수질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고 사태가 모두 안정되기 전까지는 수돗물을 사용한 급식을 재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직 적수 원인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여서 정상적인 급식 재개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까지 시교육청은 학생 1명당 급식비 2천원을 추가 지원한다.

김보아 인천시교육청 학교급식팀 주무관은 "이번 적수 사태가 정상화되면 한꺼번에 모든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급식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는 지난달 30일 서울 풍납취수장과 성산가압장 전기설비 법정검사를 할 때 수돗물 공급 체계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내부 침전물 탈락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 합동 조사반은 서울 풍납취수장에서 인천 서구 가정집 수도꼭지까지 수돗물 공급 전 과정을 조사하며 적수 발생 원인과 수질을 확인하고 있다.

chams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