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평화봉사단원 돌린저 주장 / “신군부 체제 안정에 공포 이용”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한 1980년 5월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으로 광주에 머물면서 ‘5월의 비극’을 목격한 데이비드 돌린저씨(66·한국명 임대운·사진)는 10일 “주한 미국대사관에 5·18 관련 보고를 낱낱이 올렸지만 전부 묵살됐다. 미국 측은 한국 시민들의 공포심을 신군부의 체제 안정에 이용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돌린저씨의 이 같은 주장은 최근 미군 501정보단 출신 김용장씨 등의 증언으로 불거진 미국의 5·18 방조 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씨는 지난달 “미국이 (5·18과 관련해) 사전에 보고를 받거나 사후에 묵인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현재 호주 멜버른의 의약회사에 재직 중인 그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21일, 신군부가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헬기사격’을 가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며 “군용탄약을 사용해 명백히 ‘사살’이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튿날 봉사단장을 통해 대사관에 보고했지만, 대사관 측은 직접적인 설명을 듣고도 5·18 민주화운동에 개입하는 것을 꺼렸다”고 강조했다.
5.18 당시 전일빌딩 주변을 선회하는 헬기. 사진=연합뉴스 |
돌린저씨는 “내가 외신기자들의 취재를 돕자 당시 봉사단장은 내 사임서를 본인이 작성 후 서명을 강요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5·18 이후 신군부 측이 봉사단원 팀 완버그의 미국 미네소타 본가로 찾아가 그의 부모에게 아들의 ‘입막음’을 하라고 경고한 일도 있다. 이런 대담한 행동들은 신군부 뒤에 미국의 묵인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돌린저씨가 몸담았던 미국평화봉사단은 저개발국가 국민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창설했다.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단원은 돌린저씨와 팀 완버그 등 4명이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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