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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연재] 중앙일보 '송지훈의 축구·공·감'

[송지훈의 축구·공·감] 이런 축구 처음…120분간 세번 동점 승부차기선 2점차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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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승부차기 끝 극적으로 4강 진출

정정용 감독, 전략·용병술 빛나

12일 새벽 에콰도르와 준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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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 이지솔(오른쪽)이 1-2로 뒤진 후반 추가시간 날렵하게 뛰어올라 헤딩 슛을 하고 있다. 이강인의 코너킥을 머리로 돌려 넣어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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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태극전사들은 출정에 앞서 “우리의 목표는 ‘AGAIN 1983(1983년 4강 신화 재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그들을 믿기 어려웠다.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지’라고 마음속으로 격려한 게 전부다. 한국 축구가 36년 만에 20세 이하(U-20)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다시 4강에 오른 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그래서 ‘미안함’이었다.

정정용(50)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대표팀은 9일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에서 열린 U-20 월드컵 8강전에서 세네갈을 꺾고 4강에 올랐다. 정규시간과 연장전 120분 동안 세 골씩 주고받는 대접전을 벌인 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하며 3-2로 이겼다. 지난 1983년 대선배들이 이룬 영광의 순간을 1999년생 스무살 청년들이 재현했다.

에이스 이강인(18·발렌시아)을 비롯해 조영욱(20·서울), 오세훈(20·아산), 이광연(20·강원) 등 주축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4강 돌풍의 숨은 주인공으로 정정용(50)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스리백과 포백을 넘나드는 전술적 유연성, 후반 교체 투입한 선수들의 구성과 순서, 타이밍까지 용병술이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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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전략으로 4강행을 이끈 정정용 감독. [사진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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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은 4강에 오르기까지 다양한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3-5-2와 3-4-3, 4-2-3-1, 4-3-3, 4-4-2 등 상대 특성과 경기 흐름에 맞춰 팔색조 전형을 가동했다. 매 경기 스타팅 라인업의 선수 구성과 역할에 적절히 변화를 준다. 경기 도중에도 전형을 수시로 바꾸며 상대를 혼란에 빠뜨렸다. 투구 속도와 구종을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상대 타자를 요리하는 류현진(32·LA다저스)이 축구화를 신고 나타난 느낌이랄까.

다채로운 전술을 활용하면서도 한국이 일정한 경기력을 유지한 비결은 ‘선 수비-후 역습’이라는 ‘뼈대’를 지켰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회 내내 전반을 안정적으로 버티며 체력을 비축한 뒤 후반에 전술 변화와 함께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방식을 유지했다.

4강에 오르는 동안 한국은 총 7골을 넣었다. 전반 득점은 단 한 골에 그쳤지만, 후반에 6골을 몰아쳤다. 전반에 단 하나의 유효 슈팅조차 기록하지 못하거나, 볼 점유율이 20%대로 떨어진 적도 있지만, 후반엔 예외 없이 주도권을 거머쥐었고 골을 넣었다.

이는 정정용 호가 표방하는 ‘말벌 축구’가 지향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정 감독은 ‘말벌 축구’에 대해 “전반에 수비라인을 의도적으로 내린다. 상대 선수들을 우리 지역으로 끌어들여 체력을 소진하게 만든 뒤 후반 들어 위력적인 역습으로 골을 만드는 축구”라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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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경기 큰 목소리로 애국가를 열창하는 이강인. 이 열정이 AGAIN 1983의 뿌리가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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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에 웅크리며 버틴 뒤 후반에 흐름을 뒤집는 패턴이 매 경기 반복되자 팬들은 ‘오뚝이 축구’라는 별칭을 추가로 붙여줬다. 지고 있어도 ‘곧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의미다.

대회 초반엔 관심도와 기대치가 높지 않다 보니 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의 행보가 주목받지 못했다. ‘AGAIN 1983’을 이룬 지금은 다르다. 기사마다 “그동안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하다”는 축구 팬들의 자수(?) 댓글이 줄을 잇는다.

“(12일 오전 3시 30분에 열릴) 4강전부터는 단체 응원을 하자”는 글도 보인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10여 년 만에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에 나설 분위기다. 20세 이하 대표팀의 도전은 이제 우리의 도전으로 바뀌었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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