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헤이니, 이름이나 알고 팩트와 통계를 거론했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비아냥 발언으로 방송 퇴출되고도

이정은 우승하자 “팩트 근거로 맞혀”

이름은 정체성 문제, 민감한 사안

진심으로 사과하는 자세 아쉬워

중앙일보

타이거 우즈(왼쪽)의 스윙코치를 하던 2009년 당시의 행크 헤이니(오른쪽).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타이거 우즈의 전 스윙 코치인 행크 헤이니(미국)가 지난 30일 US여자오픈에 출전하는 한국인 선수를 비아냥거리다 된서리를 맞았다. 당장 한국계 여자골퍼 미셸 위가 반발했고, 타이거 우즈와 안니카 소렌스탐, 카리 웹 등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헤이니는 결국 라디오 방송에서 출연 정지 징계를 받았다.

“왜 그게 왜 비하인가” 묻는 이도 있다. 당시 헤이니의 발언은 이렇다. “한국인의 우승을 예상한다. 이름은 모른다. LPGA 선수 중 이름을 아는 선수는 여섯 명도 안 된다. 아니다. 말할 수 있겠다. 만약 이름은 안 대고 성만 얘기해도 된다면 이씨를 꼽겠다. 이씨가 많지 않느냐. 그런데 대회 장소는 어디냐.”

이 발언이 인터넷 상에서 논란이 되자 헤이니는 방송 후반부에 사과했다. 다른 출연자는 “(한국 여자골퍼들은) 이름이 똑같아서 이름에 번호를 붙이기도 한다. 이씨가 많아서 1번, 2번, 3번 식으로 번호를 붙인다. 그 중 한 명이 이씨 6번이었다”고 했다. 이정은6을 지칭한 것이다.

헤이니의 발언은 ‘한국 선수들이 잘 하니 한국 선수가 우승할 거다. 그러나 한국 선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누가 우승할지는 모르겠고, 누가 우승하던 말든 관심이 크지 않다’ 는 뉘앙스다.

비하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름 가지고 놀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013년 아시아나 항공의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불시착하는 사고가 났을 때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지역 방송사에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의 이름을 ‘섬팅웡(Sum Ting Wong)’ ‘위투로(Wi Tu Lo)’ ‘호리푹(Ho Lee Fuk)’ ‘뱅딩오우(Bang Ding Ow)’라고 보도했다.

사고가 난 상황을 순차적으로 말하면서 아시아식 이름으로 조롱한 것이다. ‘뭔가 잘못됐다(something wrong)’ ‘너무 낮다(way too low)’ ‘젠장(holy *uck)’ ‘쿵, 쾅, 아야(bang, ding, ow)’다. 영어를 쓰는 사람이라면 이게 잘못 됐다는 것을 알 텐데 악의적인 장난을 확인 없이 보도했던 PD 3명이 해고됐다. 이름은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다.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헤이니를 비롯한 미국의 고액 교습가들에게 한국인, 특히 LPGA 선수들은 큰 고객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존중하는지는 모르겠다. 2005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김주연은 “데이비드 레드베터 아카데미에서 받은 것은 ‘버디 김’이라는 이름 뿐”이라고 했다. 헤이니 사건을 보니 레드베터가 김주연에게 많은 버디를 잡으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발음이 어려워 이름을 바꿔준 것 같기도 하다.

헤이니는 이정은6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자 “통계와 팩트를 기준으로 우승자를 맞혔다”고 했다. 놀랍다. LPGA 투어에 아는 선수가 6명도 안되고, 대회가 열리는 코스가 어디인지도 몰랐는데 통계와 팩트를 근거로 했다니, 참 놀랍다.

기자는 헤이니가 US여자오픈 챔피언으로 이씨를 선택한 이유는 참가 선수 중 이씨가 가장 많아서라고 추론한다. 이정은6을 비롯, 이정은(5), 이미림, 이미향, 이민지(호주 교포), 안드레아 리(미국 교포)등이다. 김씨는 5명, 박씨는 4명이었다. 만약 김씨가 더 많았다면 김씨의 우승을 예상한 뒤 통계와 사실에 근거해서 예측했다고 주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라디오 방송에서 이름에 숫자를 붙였다고 빈정댔던 이정은6이 우승하자 헤이니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스펠링이 틀려서 고쳤다. 이름 때문에 사달이 났으니 적어도 이름은 챙겼어야 한다. 헤이니의 방송에서 또 다른 출연자는 “(여자골프를) 보이콧하자”라고 말했다. 미국 골프계의 속내가 느껴진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