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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질병? 법정에서 본 '게임중독'

머니투데이 김종훈 , 안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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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질병? 법정에서 본 '게임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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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종훈 , 안채원 기자] [the L] 형사사건서 '게임시간' '생활태도' 등 따져 개별 판단…확립된 '법적 기준'은 아직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WHO(세계보건기구)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어디부터 '중독'이고 '취미'인지 또 논란이 일고 있다. 법적 기준이 확립된 것은 아니지만, 게임중독 여부가 문제됐던 몇몇 사건을 통해 우리 법원이 게임중독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WHO는 '게임이용장애' 우리나라는 '게임과몰입'…이미 치료대상

30일 WHO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바에 따르면 이번에 질병으로 분류된 '게임이용장애'는 △게임에 대한 통제력 부족 △게임을 하느라 다른 일상활동을 등한시하는 것 △게임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끊지 못하는 것 등을 기준으로 한다. WHO는 이 증상들이 12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게임이용장애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증상에 따라 12개월을 못 채워도 게임이용장애로 판정될 수 있다고 한다.

아직 게임을 질병에 넣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도 게임중독을 치료 대상으로 보고 대처해왔다. 게임산업진흥법 제12조의2는 게임중독 증상을 '게임과몰입'으로 정의한다. 치료센터 등에 따르면 게임과몰입은 △게임 조절 능력 상실 △내성에 의한 게임의 지속적 사용과 금단증상 △게임 집착이나 의존으로 인해 신체·사회·심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로 정의된다.

정부는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라 게임과몰입 예방·치료 정책을 시행할 의무가 있다. 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체들에게도 △회원 연령 확인·본인 인증 △과몰입 주의문구 게시 △게임 이용시간 표시 등 의무가 부과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과도한 게임 이용을 막기 위해 보다 강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PC방 49시간 이용하고 떼먹기" "게임비 훔치기" 법정에서 본 '게임중독'

법정에서도 게임중독이 여러번 문제된 바 있다. 주로 게임중독으로 인한 폭력·절도 등 형사사건에서였다. 확립된 법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원은 사건마다 피고인의 행위와 생활태도, 주변 환경을 고려해 게임중독 여부를 가려왔다.


우선 법원은 지나치게 오랜 시간 게임을 이용한 경우를 게임중독으로 봤다. 지난해 7월 30대 남성 A씨가 PC방을 이용하고 돈을 내지 않아 사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3개월 동안 12번 PC방을 이용하면서 요금 45만원을 떼먹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한번 PC방에 가면 10시간에서 길게는 49시간까지 머무른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한 형량을 정하면서 "게임중독 등에 대한 정신적 치료가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또 게임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범법행위까지 나아가 게임중독으로 분류된 사례가 있다. 2012년 20대 남성 B씨가 여아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B씨는 어린 시절 도벽이 생긴 이후 정서고립과 인격장애 등을 겪었고, 충동적으로 절도·폭행 등 범법행위를 저질렀었다.

게임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학창시절 피시방에서 '리니지' 게임을 접하고 빠져들었다. 번 돈을 모두 게임비로 쓰고도 모자라 훔치기까지 했다. 게임을 하느라 잠을 자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이 사건 재판부는 "게임에 대한 내성과 금단을 보이고 있다"며 B씨는 게임중독이 맞다고 판단했다.


게임중독인지를 직접 판단할 수 없어도 과도한 게임 이용이 범죄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말다툼 끝에 배우자를 살해한 레지던트 C씨 사건이다. C씨는 대학 시절 하루에 8~10시간씩 게임을 했다. 수업 도중 나가 게임을 하고 들어온 적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결혼하고 나서도, 전문의 자격시험을 앞두고도 게임을 놓지 못했다. 예년에 비해 어렵게 출제된 탓에 시험 결과도 좋지 않았다. C씨는 1차 시험을 본 날 밤 8시부터 새벽 3시까지 게임을 했고, 배우자와 다투다 범행을 저질렀다.

C씨는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자신은 게임중독이 아니므로 배우자와 다툴 일도 없고, 살인을 저지를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비록 C씨가 게임중독으로 당장 치료할 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로 인해 부부 사이 불만과 다툼 소지는 충분히 내재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게임이 충분히 문제였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건들을 토대로 볼 때, 게임중독에 대한 법원 판단도 WHO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WHO 기준에 따라 국내에서 게임중독에 대한 기준이 다시 만들어진다 해도 기존 판단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만약 기준이 만들어진다면 정신과 감정 등을 근거로 판사가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법정서 "나 게임중독" 자처하기도

게임중독이 아직 질병은 아니어도 심리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맞다. 이 점을 이용해 게임중독을 근거로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형사책임을 조금이나마 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 D씨는 게임중독을 앞세워 변명했다. D씨는 "왜 설거지를 안 하느냐"며 말다툼을 하다 범행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D씨는 법정에서 "게임중독 등 정신적 문제로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며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했다. D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외출 없이 집에서 게임만 하는 '은둔형 외톨이'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D씨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신질환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범행에 대한 진술도 구체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종훈 , 안채원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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