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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전두환 광주 도착 1시간 뒤…계엄군, 민간인에 집단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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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미 정보요원 "전두환 광주 방문 목적은 사살 명령이라 본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군 정보부대에서 근무한 김용장씨는 13일 “전두환의 (광주) 방문 목적은 사살 명령이라고 본다. 이건 합리적 추정이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ㆍ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에서 5ㆍ18 당시를 증언했다. 그는 미군 501여단 방첩 정보 요원 출신으로 5ㆍ18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에 왔다는 증언을 최초로 한 인물이다.

김씨는 이날 “전두환은 21일 점심 12시를 전후로 K57(광주 제1전투비행단, 광주비행장)에 왔다. 당시 헬기를 타고 왔으며 오자마자 K57 비행단장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 참석자는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부대장과 불상자 1명 등 4명가량이었다”면서 “여기까지가 제가 보고한 내용이다. 하지만, 오후 1시 도청 앞에서 사살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저는 전두환의 방문 목적은 바로 사살 명령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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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주한 미군 정보요원으로 활동한 김용장(오른쪽)씨와 보안사 요원이었던 허장환씨가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39년 만의 5ㆍ18 증언’이라는 주제의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전두환씨의 광주 방문과 무력 진압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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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날 회견에서 “북한 (광주) 침투설은 전두환이 만든 날조”라고도 했다. 그는 “북한군 600명이 왔다는 것은 미 정보망이 뚫렸다는 것인데, 미국 첩보 위성 2대가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하던 당시의 첨단 감시망을 뚫고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시민 행세를 하던 특수군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성남 비행장에서 수송기를 타고 (광주에) 왔다. 30~40명가량이라고 보고했다”면서 “20~30대 젊은이들이었고 짧은 머리에 가발을 쓴 경우도 있었고, 거지처럼 넝마를 걸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광주로 보낸 사람이 전두환이었다”면서 “북한 특수군이 했다는 방화ㆍ총격ㆍ장갑차 운행 등은 남한 특수군이 벌인 소행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유언비어 유포 역시 시민으로 위장해서 벌인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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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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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한 허장환씨는 “보안사가 광주를 평정하고 제일 급박하게 범행을 숨기기 위한 기구로 5ㆍ11 대책군사반을 만들었다. 이게 5ㆍ11 연구회로 탈바꿈한다. 그 화려한 활동에 5ㆍ18이 덮였다”고 주장했다. 전 보안사 특명부장을 지냈다는 허씨는 “전두환은 발포 명령이 아니라 사살 명령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1980년 5월 26일 전일빌딩에 시민군 저격병이 있다는 것을 입수하고 헬기로 저격병을 저격하는 것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허씨는 5ㆍ18 당시 계엄군의 실질적인 지휘소 역할을 했던 505보안대정보 요원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을 개최한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은 “39년 만에 공개되는 내용은 전두환을 비롯해 찬탈 세력이 부정할 수 없는 정확한 진상 규명이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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