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만찬' 면직 처분 취소 소송서 /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 불편한 심기 드러낸 판사
“판사들이 이렇게 했으면 검찰은 횡령이든 뭐라도 걸어서 수사했을 것 아니냐.”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면직 처분을 받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면직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행정소송 재판에서 재판장이 한 발언이다. 검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수사를 하며 전·현직 법관 다수를 수사선상에 올린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인 별개 사안을 거론해가며 자신이 맡은 사건 소송관계인에게 ‘꾸지람’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판사 박형남)는 1일 후배 검사들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돈봉투를 건넨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면직 처분을 받고 옷을 벗은 안 전 국장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면직처분취소청구 소송 2심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안 전 국장 측 대리인은 “1심은 (후배 검사들에게) 특수활동비를 지급한 방식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관행이었고 그런 게 반드시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장인 박 부장판사가 “검찰국장이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검사장을 통해 검사들에게 수사기밀비를 지출하느냐”고 운을 뗐다. 이어 “비유는 적절하지 않지만, 요새 검사들이 판사들을 기소한 사례에 비춰보면, 마치 재판이 끝난 이후에 법원행정처 차장이 소속 법원장과 재판장을 만나서 밥 먹은 뒤 ‘재판 잘했다’며 격려금을 준 것과 같다”고 자기 생각을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만약 판사들이 이렇게 했다면 검찰은 횡령이든 뭐라도 걸어서 수사한다고 할 것”이라며 “법원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수사하면서, 자기들에 대해서는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아울러 “기본적으로 공무원이 수사가 끝났다고 해서 서로 간에 두 보스가 만나서 아랫사람에게 돈을 주는 건 너무 천박하다”고 발언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난 양승태 사법부의 혐의 중에도 고위법관이 부하법관들에게 돈봉투를 돌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부분이 있다. 불구속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이 2015년 법원행정처장 시절 전국 법원 공보판사실 운영비를 현금으로 거둬들여 ‘비자금’을 조성한 뒤 각급 법원장과 행정처 내 고위법관들에게 금일봉 형태로 나눠줬다는 것이다. 박 부장판사의 발언은 해당 혐의 수사와 관련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전주지법원장으로 근무하던 박 부장판사도 돈봉투를 건네받았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박 부장판사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판사는 “나도 검찰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별개 사건을 거론해가며 자신이 맡은 사건 소송관계인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검찰 간부도 “안 전 국장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은 전혀 별개”라며 “지극히 재판장의 사심이 섞인 ‘원님 재판’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안 전 국장은 2017년 4월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 소속 검사들과 가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후배 검사 6명에게 70만∼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가 면직 처분됐다. 1심은 지난해 12월 안 전 국장에 대한 면직은 지나치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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