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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연재] 매일경제 '쇼미 더 스포츠'

`사기 캐릭터` 카일러 머리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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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러 머리 /사진=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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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더 스포츠-161] 26일(한국시간)은 차기 시즌 내셔널풋볼리그(이하 NFL) 신인 드래프트가 열린다. NFL 드래프트는 1936년부터 시작된 미국 프로스포츠 중에서 가장 오래된 드래프트이며, 드래프트 전 과정이 ABC와 ESPN을 통해 생중계된다. 최고 인기 스포츠인 만큼 규모도 남다른데, 총 3일간 250여 명의 선수가 지명을 받는다.

2019 NFL신인드래프트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하이라이트는 카일러 머리의 1라운드 지명 여부이다. 머리는 소속팀인 오클라호마대를 BIG12 콘퍼런스에서 우승시켰고, 전미 대학 풋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며, 최고의 아마추어 풋볼 선수에게 주어지는 하이즈먼 트로피를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머리는 178㎝, 88㎏의 비교적 작은 체구를 지녔다. 하지만 NCAA에서 쿼터백으로서 보여준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총 5406야드를 패스했고, 터치다운 50번을 성공시켰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탁월한 러싱(rushing) 능력 또한 가지고 있는데, 쿼터백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1478야드나 기록했다. 이 모든 기록을 직전 시즌인 2018시즌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프로 선수로서 그에 대한 전망을 무척 밝게 하고 있다.

하지만 머리가 특별한 이유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그는 평균 이상 아니, 아주 탁월한 야구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오클라호마대 야구부의 일원으로 지난 시즌 타율 0.296, 10홈런, 47타점, 10도루를 기록했다. 그의 포지션은 중견수로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를 가지고 있다. 기록상으로는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그는 미국 대학야구 최고의 야구선수 중 한 명이다.

2018년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머리를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지명했다. 만약 머리가 이번 2019 NFL 드래프트에서도 1라운드에 지명된다면, 미국 프로스포츠 사상 NFL과 MLB에서 모두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최초의 선수가 된다. 이번 NFL 드래프트에 미국 스포츠 팬들 큰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다.

지난해 드래프트 직후, 오클랜드와 400만달러가 넘는 사이닝 보너스가 포함된 계약을 한 바 있는 머리는 현재, NFL 진출로 마음이 바뀐 상태이다. NFL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드래프트 참가라는 요식행위만 남겨둔 상태이다. 국내 스포츠팬들 입장에서 보면 조금 의아할 수 있지만, 머리의 선택은 미국에서 NFL의 인기와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예의 정도를 감안하면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다.

NFL이든, MLB든 머리가 과연 아마추어 때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할 일이고, 회의적인 시전도 일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활약 여부와 관계없이 머리가 매우 탁월한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 종목에서 잘하기도 힘든데, 두 종목에서, 그것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종목 모두에서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역사적인 일이다.

물론, 머리 이전에 NFL과 MLB 모두에서 드래프트로 지명되고, 심지어 선수생활까지 병행한 탁월한 스포츠맨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출전 경기수를 기준으로 두 무대를 모두 밟아본 선수들은 60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1950년대 이전 선수들이다. 1980년 이후 두 무대를 모두 경험한 선수들 중 두 종목 모두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선수는 보 잭슨과 디온 샌더스 그리고 브라이언 조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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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잭슨은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운동능력을 지닌 스포츠맨으로 꼽힌다. NFL 신인 드래프트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뽑혔던 잭슨은 러닝백과 외야수로 활약하며, MLB와 NFL에서 모두 올스타(프로볼)에 출전한 최초의 선수였다. 탁월한 운동 능력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짧게 선수 생활을 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디온 샌더스는 미식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NFL의 전설이다. 1989년부터 무려 7년간 NFL과 MLB에서 동시에 뛰었다. 시즌이 겹치는 시기인 9~10월에는 경기 종료 후, 당일치기로 두 종목의 각각의 팀을 이동하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거로서는 조금 평범(?)했지만, 박찬호와 맞대결을 펼치기도 해 한국 MLB 팬들에게 익숙한 선수이기도 하다.

브라이언 조던은 잭슨과 샌더스와 비교했을 때, 동시에 두 종목을 소화한 것은 아니다. NFL에서 3년간 활약하고, 공식적으로 은퇴한 후에 메이저리그 선수로 본격적으로 활약했다. MLB에서 1400경기 이상 뛰었고, 보 잭슨과 마찬가지로 MLB와 NFL에서 모두 올스타전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들 3명의 선수가 활약한 뒤로는 10년 넘게 NFL과 MLB 무대를 모두 뛰는 선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사실 프로레벨에서 두 종목을 모두 뛴다는 것은 효율 측면에서 볼 때,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게 사실이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시즌에 두 종목을 모두 참가한다는 것은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며 부상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얼마 전 연봉 3500만달러를 기록해 NFL 역대 최고 연봉기록을 갈아치운 러셀 윌슨은 아직 메이저리거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밝힌 바 있으며, 언젠가는 MLB 무대에 서고 싶다고 얘기했다. NFL 최고 선수 중 한 명의 도전이기에 추후 윌슨의 도전은 주목할 만하다.

다시, 머리에 대한 얘기로 돌아와 보자. 머리는 일단 NFL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 최근 트렌드로 봤을 때 그가 추후에 MLB에 도전한다 하더라도 두 종목을 동시에 병행할 것 같지는 않다. 매우 유력하긴 하지만 과연 최초의 MLB, NFL 드래프트 1라운더가 될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머리와 같은 '사기캐릭터'의 탄생과 활약은 많은 스포츠 팬들의 영원한 로망이기도 하다. 머리가 10년 넘게 맥이 끊긴 팬들의 오래된 로망과 대리만족을 과연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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