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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김현기의 축구수첩'

[김현기의 축구수첩]축구 넘어 산업으로…K리그 동남아쿼터, 도입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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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안천 콩푸엉이 K리그 대구전에 뛰는 가운데 베트남 사람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1. 2007년 동남아 4개국에서 공동으로 열린 아시안컵 때였다. 당시 한국이 조별리그를 치른 인도네시아엔 밤방 파뭉카스라는 공격수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인도네시아가 경기한 자카르타의 붕카르노 경기장 앞엔 그가 슛을 하는 모습을 담은 유명 스포츠 용품회사의 대형 광고가 세워질 정도였다. 그가 중동의 복병 바레인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려 승리의 주역이 됐을 땐 10만 관중이 떠나갈 듯한 소리를 질렀다. ‘맨유가 박지성 마케팅을 한 것처럼 K리그가 밤방 같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면…’이란 아이디어가 취재진 사이에서 꽤 돌아다녔다. 밤방은 한국전을 앞두고 “K리그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2008년 일본 J리그에 아시아쿼터가 도입됐고 K리그도 1년 뒤 채택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아시아쿼터는 도입 취지와 비교해 상당히 변질됐던 게 사실이다. 중동이나 호주 여권을 취득한 남미 선수들이 수입됐고 급기야 위조 여권 사태까지 불렀다. 각 구단과 지도자에겐 경기력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이런 기조 아래 편법이 난무했다.

#2. J리그는 2014년부터 동남아시아(ASEAN) 국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는 쿼터를 1~3부에 신설했다. 베트남 유망주들이 2부리그 위주로 영입됐으나 실력이 기대에 미치지 않아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불거졌다. 그러나 지난해 결실을 맺었다. 태국의 160㎝의 단신 미드필더 차나팁 송크라신이 1부 삿포로에서 뛰며 31경기에서 9골을 터트린 것이다. 연간 베스트11 미드필더 부문까지 거머쥐면서 J리그에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시즌엔 삿포로 외에도 FC도쿄와 요코하마, 오이타가 태국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도쿄 같은 경우는 3부리그에 참가하는 U-23팀에서 태국 선수를 키우고 있다. J리그는 태국 미디어그룹 ‘트루’에 중계권까지 팔았다.

#3. 지난 1월 응우옌 콩푸엉의 인천 입단식은 K리그 구단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당시 본지가 영상팀을 대동하고 그의 입단식을 촬영한 뒤 유튜브에 올렸는데 하루 만에 10만회가 넘는 조회를 기록한 것이다(K리그에서 이런 수치가 나오기는 어렵다). 한국이 아닌 베트남에 있는 축구팬들이 영상을 돌려보며 큰 관심을 드러냈다. 얼마 전엔 그의 연습 경기 득점 장면을 베트남 업체가 한국에서 찍어 큰 화제를 일으켰다. 미디어 변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추세를 K리그도 따라갈 수 있다면 지역(Local)과 세계(Global)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인천 경기의 베트남 내 해적 방송이 증가하자 한 포털사이트가 이달 초부터 인천 경기를 베트남에 온라인으로 공급하고 있다.

K리그는 축구와 산업, 두 측면을 함께 안고 가야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동남아’하면 ‘경기력 타령’이 자동적으로 불거져 긍정적인 효과를 가로 막았다. 이제는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우선 베트남과 태국이 지난 1월 아시안컵에서 각각 8강과 16강에 올라 실력이 적지 않게 향상됐다는 점을 입증했다. 차나팁의 J리그 베스트11 수상도 동남아 축구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는 배경이 되고 있다. 산업과 공유의 측면에서도 동남아는 K리그가 언젠가 안고 가야 할 자산이다. ‘박항서 매직’으로 한국 축구가 베트남은 물론 축구에 열광하는 동남아 전역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K리그 흥행의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단과 지도자의 선택에 따라 동남아 선수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K리그에 관련 쿼터를 신설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이미 J리그가 5년간 이 제도를 시행하며 연착륙에 성공했고 K리그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한국 축구의 노하우를 이들 지역과 공유한다는 개념에서도 긍정적이다. 인천처럼 베트남 대표팀 주전인 콩푸엉을 지금 존재하는 아시아쿼터로 확보하는 구단도 있다. 하지만 동남아 시장을 장기적으로 볼 수도 있다. 반면 U-23 대표급의 선수를 데려와 (FC도쿄처럼)1~2년 보고 키우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동남아 쿼터가 신설된다면 각 구단의 이들 지역 선수 활용폭이 넓어지고 부담이 줄어들지 않을까. 말레이시아의 아프리카 귀화 공격수 등이 있지만 이런 부작용은 규정으로 방지할 수 있다. 이제 우리도 ‘꼰대’ 같은 마인드는 버리고 동남아 쿼터를 긍정적으로 고려할 때가 됐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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