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 방해’ 책임 떠넘기는 박근혜 정부 인사들
이병기 전 비서실장, 당시 정황 담긴 문건들에 “기억 안 난다”
세월호 탓에 박 전 대통령과 사이 나빠졌다며 ‘면피성 발언’
16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특조위 방해 사건 재판엔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안종범 전 경제수석, 해수부 김영석 전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도 법정에 나왔다.
세월호 참사 5주기인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업무방해 사건’ 공판에 출석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오른쪽)이 재판이 정회된 뒤 남편인 박성엽 변호사와 청사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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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실장은 피고인이지만 이날은 증인으로 신문을 받았다. 그는 2015년 10월30일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 조사가 특조위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하도록 해수부가 적극 대응하라고 질책한 인물이다. 검찰은 이 전 실장이 독립성을 보장받아 할 특조위에 개입을 지시해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본다. 윗선 지시가 일사천리로 아래로 하달되고, 공무원들은 청와대 손발이 돼 움직인 정황이 재판 기록 분석(경향신문 2019년 4월15일자 5면, 16일자 4면 보도)에서 확인됐다.
이 전 실장은 이날 증언에 앞서 “오늘은 4월16일”이라며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에 대해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도 위로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증언들은 모두 ‘면피성’이었다. 실수비 발언은 원론적인 당부였고, 자신은 세월호 인양을 박 전 대통령에게 관철시킨 장본인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특조위 방해를 할 의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실장은 “저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 말씀자료에 세월호 인양 검토 관련 지시사항을 넣으려고 싸울 정도였다”고 했다. 핵심 증거인 ‘실수비 회의결과’ 문건은 가치가 없다고 폄하하면서 문건 작성자인 홍남기 당시 정책조정실 기획비서관(현 부총리)가 마음대로 썼다고 했다. 이 전 실장은 “실수비 자료는 회의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문건은 강한 표현이 들어가는데 홍남기가 대통령에게 계속 ‘대응’이라는 단어를 쓰기 좀 뭣하니까 다른 (자극적인 ‘제어’, ‘차단’ 등) 단어를 쓴 것 같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5주기인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업무방해 사건’ 공판에 출석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재판이 정회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하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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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때문에 박 전 대통령과 사이가 나빠졌다고도 했다. 참사 1주기 전날인 2015년 4월15일 박 전 대통령이 콜롬비아 출국 일정을 잡아서 자신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논쟁을 했다는 것이다. 이 전 실장은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말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국가간 약속인데 어떻게 하나요’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조위 관련 사안은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을 배제하고 수석들로부터 직접 보고받았을 가능성을 넌지시 제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특조위 방해를 지시했는지 여부는 밝혀내지 못했다. 이때문에 피고인들의 화살이 기소되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을 향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해수부가 특조위 대응방안을 마련한 정황이 빼곡히 담긴 강용석 당시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업무수첩도 마찬가지다. 이 전 실장은 “강용석 수첩이 이 사건의 바이블처럼 여겨지는데 수첩 쓰는 사람들 다 알지만 20~30%는 주관적인 것을 적는 것 아니겠느냐”며 “수첩에 쓰여있다고 다 그렇게 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이 전 실장은 문건이나 수첩에 적힌 특조위 관련 부분은 “기억이 안 난다”고 일관하면서도,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행적 조사를 특조위가 의결하자 “당당하게 나가라”고 지시한 사실은 기억이 난다며 상세히 설명했다. 이 전 실장은 “소위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등 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에게 물어봤는데 참사 당일에 (대통령이) 관저에 계셨다고 했다”며 “그래서 당당하게 하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실장은 이어 “저는 날씨가 추워지니까 광화문에서 떨고있는 유가족들을 따뜻하게 해 줄 방법이 없겠느냐고도 했었다”며 “옆에서 폭식하는 못된 사람들(온라인 커뮤니티 일베가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 투쟁을 조롱하며 음식을 시켜먹은 사건)을 아주 싫어했었다”고도 했다.
세월호 참사 5주기인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업무방해 사건’ 공판에 출석한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이 재판이 정회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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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실장 등 5명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결국 법원이 내리게 된다. 재난이 발생했는데도 정치적 득실만 따진 고위공무원들을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첫 사법적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유죄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법조계에선 쉽게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적용된 직권남용죄에 대한 하급심 법원의 판단이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조금씩 엇갈려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재판장 김연학 부장판사)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논란이 됐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위법한 지시를 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직권남용이 있었는지를 다시 따져야 한다면서 우 전 수석의 부당한 지시 상당 부분을 면책해줬다. 재판은 조만간 마무리된다. 참사의 진상규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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