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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연재] 매일경제 '쇼미 더 스포츠'

덕 노비츠키, `41, 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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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덕 노비츠키가 9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에서 열린 피닉스 선스와의 2018-2019 NBA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가 끝난 후 코트를 떠나며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노비츠키가 경기 후 은퇴를 발표해 이날은 그의 NBA 마지막 홈경기가 됐다. /사진=댈러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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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더 스포츠-160] 4월 10일(한국시간)은 덕 노비츠키가 선수로서 코트를 누비는 AAC센터에서의 마지막 무대였다. 경기 전 코트 위에는 41, 21, 1이라는 숫자가 화려한 조명으로 비춰졌고, 곧이어 전광판을 통해 그 숫자들의 의미를 설명하는, 오직 한 선수만을 위한 헌정 영상이 상영되었다. 덕 노비츠키, 그의 마지막 홈경기가 그렇게 흘러갔다.

등번호 41번, 농구의 등번호로는 흔하지 않은 숫자이다. NBA에 건너오기 전 그가 달던 백넘버는 여느 빅맨들이나 선호하던 14번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댈러스에는 로버트 팩이 14번을 이미 달고 있었다. 노비츠키는 14번을 거꾸로 한 숫자 41번을 선택했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41번 댈러스 유니폼을 한 명의 선수가 21년간 달고 뛸 수 있었을지를, 그리고 그 41번이 영구결번이 가능한 숫자가 되었을지를.

노비츠키는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정규시즌 MVP, 파이널 MVP, NBA 우승 반지와 통산 3만 득점,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낸 선수는 노비츠키를 포함해 NBA 역사상 단 5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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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유럽 국적 선수로서 최초로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노비츠키 이전에 미국 국적이 아닌 선수가 MVP를 수상한 것은 하킴 올라주원(나이지리아)과 스티브 내시(캐나다)가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모두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NCAA리그를 경험했다. 역대 NBA파이널 MVP를 수상한 비미국인 선수 또한 노비츠키와 토니 파커(프랑스)와 단 둘뿐이다.

노비츠키의 통산 득점은 3만1560점이다. NBA 전체 역사로 볼 때 그의 순위는 6위이다. 그보다 많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는 압둘 자바, 칼 멀론,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그리고 마이클 조던이다. 그는 'NBA의 전설 중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윌트 체임벌린보다 많은 득점을 넣었다. 이뿐만 아니다. 노비츠키는 3만 득점, 1만 리바운드, 1000블록, 1000개의 3점슛을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선수이다.

사실, 노비츠키의 시작이 처음부터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드래프트 때만 해도 그가 NBA를 대표하는 최고 선수가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노비츠키는 독일 최고 농구 유망주였지만, NBA 무대에서 볼 때는 그저 큰 키의 낯선 유럽 선수였을 뿐이었다. 데뷔 시즌 또한 평균득점 8.2점의 그저 그런 성적을 기록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 성적을 내는 NBA 유망주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노비츠키는 놀라운 성장을 시작한다. 그는 3년차부터 12년간 평균 20점 이상의 득점력을 보여주며, 리그 최고의 스코어러 중 하나이자, 댈러스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특히 2005-06시즌에는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고, 이듬해인 2006-07에는 첫 파이널에 진출했으며, 4년 뒤인 2010-11시즌에는 NBA우승과 파이널 MVP라는 빛나는 업적을 거둔다. 이 모든 것이 다 21년간 오직 댈러스의 유니폼만을 입고 일구어 낸 것이다.

특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NBA 우승은 너무나 극적이었다. 일단, 4년 전 첫 파이널에서 완패한 상대인 마이애미 히트를 만난 것 자체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그 이상의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2010-11시즌의 마이애미'는 당대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젊은 르브론 제임스'가 이적하며,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시와 함께 '슈퍼팀'의 원조가 되었던 첫해였다. 모두가 마이애미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고, 이들은 자신감을 넘어 거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노비츠키와 댈러스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독감 및 부상으로 최악의 컨디션이었던 노비츠키는 시리즈에서 평균 26점을 기록하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댈러스의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시리즈 내내 46개의 자유투를 얻어 이 중 45개를 성공시키며 자유투 성공률 97.8%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고, 6경기 동안 그의 4쿼터 평균 득점은 10.3점이었다. 그가 얼마나 이 시리즈에 초집중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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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에서 댈러스 매버릭스와 피닉스 선스 간 2018-2019 미국프로농구(NBA) 정규리그 경기 전에 한 팬이 매버릭스 소속 덕 노비츠키의 얼굴 장식으로 가득 찬 관중석에 앉아 있다. 이날 경기는 노비츠키의 NBA 은퇴 전 마지막 홈 경기였다. /사진=댈러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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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츠키는 가장 뛰어난 NBA 선수 중 하나였지만,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2005-06 시즌에는 첫 MVP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시즌 전체 순위 1위였던 댈러스는 플레이오프 첫판에서 탈락한다. 덕분에 그는 아주 약식의 MVP 수상 세리머니를 하게 된다. 첫 파이널 우승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종 우승을 확정지은 장소는 원정인 마이애미에서였다. 노비츠키는 이날 경기 막판이었던 4쿼터, 마이애미의 추격을 뿌리치는 결정적 득점을 여러 번 성공시키며, 팀의 리드를 굳건히 지켰다. 그리고, 사실상 승리가 확정된 경기종료 수초 전 다른 선수들과 달리 그는 경기가 채 끝나기 전에 원정 라커룸을 향해 걸어간다. 그의 얼굴에는 드디어 해냈다는 표정과 함께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난 11일 댈러스의 정규시즌 최종전이었던 샌안토니오 원정 경기에서 그는 자신을 위해 준비한 스퍼스의 영상과 아나운서의 강렬한 소개 콜을 들으며, 또다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랫동안 해오던 무언가를 마무리할 때의 느낌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노비츠키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날도 코트를 누볐다. 그리고 경기 종료를 1분여 남기고, 멋진 미들 슛을 성공시키며 경기 20점을 기록했다. 1978년생, 41살의 선수의 마지막 무대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41'번의 노비츠키는 '21'년간 댈러스라는 '하나'의 팀에서만 뛰었다. 약관 스무 살의 귀걸이를 했던 신세대 청년은 어느덧 초로의 중년이 되었다. 그가 역대 최고의 미국 국적이 아닌 외국인 선수라는 데 이견을 가진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그의 가치는 21년을 댈러스라는 한 팀에서만 뛰었다는 사실이다. NBA에서 그 누구도 그보다 많이 한 팀에서 뛴 선수는 없다. 댈러스는 그와 함께 우승했고, 그로 인해 행복했다. 먼 훗날 노비츠키에게 댈러스는 추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댈러스의 수많은 팬들에게서 노비츠키는 이미, 추억 그 자체이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깊이 각인될 수 있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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