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항 부두 세월호 선체…"기억과 안전의 공간 돼야"
"'그날'의 복기는 안전사회 첫걸음"…광화문·팽목항·안산에 '안전관' 설립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김기훈 기자 = 세월호는 침몰 3년이 지나서야 맹골수도 깊은 바다에서 육지로 끌어올려졌다.
옆으로 누운 모습 그대로 인양된 선체는 약 1년간의 직립(直立) 작업을 거쳐 목포신항 부두에 거치됐다.
5년 전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을 싣고 제주 바다로 향했던 세월호는 자신이 있어야 할 바다가 아닌 항구 부두에 어색하게 서서 추모객을 맞고 있다.
◇ '세월호 참사 그 자체인 선체'…정치적 고려로 한때 수장 논의도
목포신항을 찾는 추모객들은 붉게 녹슨 거대한 선체를 보며 예외 없이 희생자와 희생자 가족을 떠올리며 이들의 아픔에 공감한다고 한다.
아울러 다시는 이런 사고로 아픔을 겪는 이웃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고 한다.
눈앞에 보이는 세월호가 그 자체로 추모, 공감, 그리고 계몽의 기능을 하는 셈이다.
세월호 선체는 300명 넘는 희생자를 낸 참사의 증거물이자, '그 날'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로 의미가 크다.
이 때문에 세월호 인양은 한때 정치적 고려 대상이었다.
기무사, 세월호 수장 제안 의혹(CG) |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는 세월호 정국을 조기에 전환하려 인양을 포기하고 수장시키는 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의혹으로 치부됐던 '인양 고의 지연설'은 작년 11월 군 특별수사단 수사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 올라 국민 눈에 보이면 당시 정권에 불리한 여론이 조성될 것이라는 판단이 고려된 것이었다.
기무사는 당시 6·4 지방선거 등 주요 정치일정을 앞두고 이른바 '세월호 정국'이 박근혜 정권에 불리하게 전개되자 정국 조기 전환 출구 마련과 박 전 대통령 지지율 확보 등을 위해 세월호 TF를 구성해 운영했다고 발표했다.
◇ 2기 특조위로 넘어간 선체 처리…"사고 조사가 먼저"
상징성이 큰 세월호 선체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인양 이후에도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2017년 여야 합의로 제정된 특별법에 의해 출범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는 선체 인양·육상 거치 감독, 미수습자 수습, 침몰 원인 확인 등 임무와 함께 선체 활용 방안 결정권도 부여받았다.
그러나 선조위는 작년 8월 활동을 종료하면서 선체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작년 6월 '세월호 선체 보존·처리 계획안'을 발표하고 국민공청회를 열어 의견 수렴도 했지만, 위원 간 이견 등으로 최종안 도출에는 실패한 것이다.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
당시 선조위는 세월호 선체를 손상된 그대로 보존해 전시하자는 데는 공감대를 이뤘다. 아울러 별도의 복합관을 건립해 기억·교육·추모·치유 등 통합기능을 하는 공간을 마련하자는데도 합의했다.
세월호 거치 후보지로는 목포, 안산 대부도, 진도 등 3곳을 제시했다.
당시 구체적인 세월호 거치 장소와 예산까지 산출됐지만,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성급한 결정보다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공청회에서는 세월호 선체 처리와 관련해 의미 있는 발언이 나왔다.
"참사의 현장인 선체를 보존하는 것은 참사를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선체를 두고 배가 전복돼 침몰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고통스럽게 복기하는 것은 세월호로부터 안전사회로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무관심 속에 세월호 트라우마가 잠잠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국가와 정부 관료, 전문가 집단에 의해 세월호가 독점되어선 안 되며 시민사회의 참여와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9·11 메모리얼에는 희생자 2천983명 한명 한명의 생전 사진과 글, 업적, 영상 등으로 한 생명의 삶이 촘촘히 기록돼 있고, 사고 당시를 생생히 증언하는 구조물이 전시돼 있다. 선체 보존과 함께 희생된 생명에 대한 기억이 필요하다."
노란 물결 이는 팽목항 |
◇ "2022년 이후 선체 처리안 결정될 듯"…팽목항·안산에도 '안전관' 설립
세월호 선체 처리 방안은 이같은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친 뒤 확정될 전망이다.
선조위 활동을 넘겨받아 작년 3월 출범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2기 특조위) 역시 당초 세월호 선체 처리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단 세월호 선체 조사에 집중한 뒤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유가족들도 세월호 선체가 기억과 안전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큰 원칙에는 공감한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의 장훈 위원장은 "2기 특조위의 조사 기간이 2년이라 일단은 진상규명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세월호 선체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하며 안전에 대한 국민의식을 고취하는 안전교육의 장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도 비슷한 입장이다.
선체 처리 관련 예산을 신청할 수 있는 해수부는 세월호 선체가 낡아 붕괴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에 다음달 안전진단을 하고 필요하면 선체를 보강할 계획이다.
2기 특조위가 세월호 선체 조사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특조위 활동이 끝나는 2020년 말 이후 희생자 가족과 국민 여론이 충분히 모아지면 필요한 예산을 신청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런 계획대로라면 2022년 설계에 착수해 2023년 착공한 뒤 3∼5년 공사를 거쳐 세월호 선체 보존과 기념관 건립이 가능할 전망이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식은 선체·기념관 건립 같은 방법 말고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분향소와 천막이 철거됐지만, 천막이 떠난 자리에는 80㎡ 규모의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조성됐다.
서울시는 전담직원을 지정해 전시공간을 직접 운영하면서 유가족, 자원봉사자와 협력해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공간' 투시도 |
팽목항 인근에는 2021년 3월까지 국민해양안전관이 건립된다. 오는 6월 첫 삽을 뜨는 국민해양안전관은 국비 270억원을 들여 안전 체험 명소로 조성한다.
국민해양안전관에는 해양안전체험시설, 150∼200여명을 수용하는 유스호스텔, 세월호 희생자 추모공원인 해양안전정원, 추모 조형물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안전관에는 선박 재난 발생 시 선체가 0∼60도가량 기울어진 상황에서 탈출 훈련을 할 수 있는 안전체험시설도 들어선다.
세월호 희생자가 집중됐던 경기도 안산시에는 세월호 추모시설인 '4·16 생명안전공원'이 건립된다.
오는 6월까지 건립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내년 중 디자인 공모·설계를 거쳐 2021년 1월 착공 예정이다.
세월호를 다룬 상업영화 '생일'을 비롯해 독립영화 '봄이 가도', '눈꺼풀' 등을 통해서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dkkim@yna.co.kr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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