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 덤터기·불법 호객행위 있어도 경찰 신경조차 쓰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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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경찰서 현직 경찰관 2명이 신림동 유흥주점 업주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입건된 사실이 <한겨레> 취재 결과 확인되면서, 신림동 유흥업계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관악경찰서 경찰과 유흥업소 간의 유착 의혹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관련 기사 : [단독] 경찰-유흥업소 짬짜미 ‘관악구 버전 버닝썬’ 의혹)
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에 수뢰 혐의로 입건된 관악경찰서 소속 강아무개 경위는 술자리 접대 등을 받은 ㅂ유흥주점 외에 다른 유흥업소에서도 접대 등을 받으면서 업주와 유착한 의혹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림동에서 20년 동안 호객을 해왔다는 오아무개(50)씨는 <한겨레>와 만나 강 경위가 신림동에 있는 ㄷ노래주점 업주 강아무개(57)씨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2017년 겨울 새벽 5시께 강 경위와 ㄷ노래주점 업주 강씨가 술을 마시는 자리에 참석했었다”며 “장소는 업주가 운영하는 ㄷ노래주점이었고, 이미 양주 3병 정도를 비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여성 접대부 없이 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며 “강 경위가 ‘우리는 같은 강씨이고, 족보로 보면 아재지간이다’ 등과 같은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오씨는 아침 6시께 강 경위의 차에 함께 타고 대리운전을 불러준 뒤 귀가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신림동 일대에서 호객을 하는 김아무개(50)씨도 “(강 경위와 ㄷ노래주점 업주 강씨가) 서로 친하다는 이야기가 동네 업계에 파다하게 퍼져있다”며 “(ㄷ노래주점 직원으로부터) 주점 아래 있는 홍어집에서 둘이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같이 다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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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착 관계 때문일까. ㄷ노래주점에선 불법으로 의심되는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경찰은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ㄷ노래주점에서 촬영된 영상 40개를 보면, 강씨가 만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성들에게 “그러면 사장님, 발렌타인 추가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등과 같은 말을 하며 양주 구매를 유도해 술값을 덤터기 씌우는 것으로 의심되는 장면들이 찍혀 있다. 게다가 영상에는 강씨가 만취한 손님들에게 “선생님, 술값 200만원이고요. 내일 항의하시거나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거나 “다음날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술 깨고 비싸다는 얘기하지 마세요” 등의 말을 확인받는 장면도 담겨 있다. 술값 덤터기 피해자들이 정신을 차린 뒤 경찰에 신고하면 출동한 경찰들에게 술값 덤터기가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시킨 것이라는 걸 입증할 ‘조작된 증거’를 남기는 장면이다.
<한겨레>가 만난 복수의 호객꾼과 업주, 경찰 관계자 등은 입을 모아 “신림동 유흥업소에는 술값 덤터기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지만 경찰이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술값 덤터기 메커니즘은 이렇다. 일명 ‘삐끼’로 불리는 호객꾼들이 혼자 있는 남성을 노려 ‘15만∼20만원이면 여성 종업원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유혹한다. 남성들이 술집에 오면, 먼저 업주가 얼굴을 보고 경제력을 가늠해본다. 이들은 이를 “구찌를 잡는다”고 부른다. 여성 종업원들은 손님들에게 ‘만원짜리로 종이학을 접어주겠다’며 손님의 지갑을 열어 현금과 카드 소지 여부를 확인한다. 이렇게 ‘밑그림’이 그려지면, 다시 업주가 등장해 ‘현금으로 계산하면 술값을 싸게 해주겠다. 카드를 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현금서비스를 받아오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작업’이 끝나면 여성 종업원들은 남성들에게 양주를 지속적으로 권해 취하게 하고, 손님이 만취하면 계속 양주를 권해 술을 더 구입하게 하거나 빈 양주병을 술상 위에 올려놓는 방식 등으로 수백만원까지 술값 덤터기를 씌우는 것이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손님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돈을 빼돌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삐끼와 업주, 여성 종업원 등이 미리 짜인 계획대로 움직여 술값 덤터기를 씌운다는 점에서 이런 영업은 범죄로 볼 여지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강제로 항거불능 상태로 만든 뒤 현금 인출을 하는 등의 행동은 범죄로 볼 수 있다”며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전모의와 역할분담이 있다는 점에서 절도 혹은 특수강도까지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리 ‘조작된 증거’ 영상을 찍은 것도 “업소에선 ‘손님이 동의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범행을 위한 사전 계획이 있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며 “당연히 수사를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ㄷ노래주점에서 가짜양주를 사용했다는 진술도 있다. ㄷ노래주점에서 일했던 한 업소 관계자는 <한겨레>와 만나 “과거에는 이 업소에서 ‘캡틴큐’ 같은 술을 사용해 가짜양주를 만들었다”며 “요즘은 캡틴큐가 단종되면서 먹다 남은 술을 양주에 섞는 방식으로 가짜양주를 제조한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식품위생법과 상표법 위반 등에 해당하는 범죄이지만, ㄷ노래주점은 그동안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손님이 밖으로 나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등 경찰에 신고할 낌새를 보이면 유흥업소 쪽에서 사건을 배정받은 형사 당직팀을 파악해 “기술에 들어간다”는 증언도 나왔다. 신림동에서 20년간 호객을 해온 이아무개(49)씨는 “업주들이 자랑처럼 경찰과의 관계를 말하고 다닌다”며 “상식적으로 유착 관계없이 이런 영업이 가능했겠느냐”라고 말했다.
조용훈(가명)씨도 최근 신림동에서 술값 덤터기 피해를 봤다. 지난달 30일 새벽 만취 상태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신림동 ㅅ노래주점에서 여러 개의 카드를 꺼내 계속해서 계산을 시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이미 카드로 술값 70만원을 결제하고, 현금서비스도 30만원을 받은 뒤였다.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쓴 건지 기억하지 못하는 조씨에게 이 노래 주점 업주는 “당신이 양주 3병을 마시고 여성 종업원도 불렀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조씨가 경찰에 신고했으나 출동한 관악경찰서 경찰은 “이런 사건은 민사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뒤 그냥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조씨는 인터넷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던 중 자신이 당한 일이 범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늦게 관악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청문감사관실에 문의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조씨처럼 “술을 잘 마시는 편인데 어느 순간 갑자기 기억을 잃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신림동 유흥업소에서 ‘버닝썬’ 등 클럽과 마찬가지로 ‘물뽕’이나 수면제 같은 약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실제 비슷한 수법을 사용하는 업소에서 수면제 등 약물을 사용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해 12월7일 대전지법 제11형사부는 절도 등의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들이 호객행위로 유인한 손님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인 뒤 인출 또는 계좌이체 등으로 수천만원을 가로챘다고 봤다. 당시 여성 종업원들은 “카운터 아래쪽에서 수면제를 가루로 빻는 모습을 봤다”거나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손님에게 먹이도록 지시했다”는 진술들을 내놨다. 이 업소는 신림동 유흥업소들과 거의 비슷한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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