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스크린에서 만나는 세월호 가족의 일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영화 <생일>의 한 장면 / NEW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울어진 선체의 모습 대신 평범해 보이는 한 집안의 풍경이 보인다. 고장난 현관등은 마치 외출한 식구가 돌아온듯 반짝이지만 이내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텅 빈 공간만을 비출 뿐이다. 흔한 일상의 장면이 반복되지만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아니라는 점은 관객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뉴스를 통해 세월호를 만난 관객 대부분의 뇌리에 남은 2014년 4월 16일 기울어지던 세월호의 모습, 진도 팽목항과 경기 안산시, 서울 광화문 등 곳곳을 덮은 노란 리본의 이미지를 다시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보통의 가족으로 묘사된 희생자 가정에서도 참사 이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또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읽힐 뿐이다.

세월호 참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생일>이 개봉된 4월 3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만난 관객 서정민씨(45)는 붉어진 눈이 민망한듯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스크린 안팎에서 재연되는 갈등

“(영화가) 보는 사람한테 ‘울어라, 울어’라고 요구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하는데도 몇 장면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걸 못막겠더라”는 그는 “이제 5년쯤 지나니 그때(5년 전) 세월호와 유가족들을 바라보던 내 자신을 돌이켜보는 기회도 됐다”고 말했다. 서씨가 당시를 돌이키며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세월호가 큰 충격을 주긴 했지만 직접 겪은 참사가 아니라 다시 일상을 지속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던 반면, 영화 속 가족의 일상은 회복되는듯 보이지만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절절히 느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그때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우리 집엔 저런 비극이 안 일어났다는 데 안도했던 것 같다”는 게 서씨가 느낀 부끄러움의 이유였다.

지난 3월 20일 개봉한 <악질경찰>에 이어 <생일>까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상업영화가 잇따라 개봉했다. <악질경찰>에서는 자신의 비리를 덮으려 또 다른 비리를 저지르던 경찰관이 주인공으로 나와 세월호로 암시되는 대형 참사 피해자를 만난 뒤 달라지는 모습을 녹여냈다. <생일>은 참사 이후 여러 해가 지난 시점에서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가족의 일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세월호를 다뤘다. 지난 5년 사이 개봉한 <업사이드 다운> <그날, 바다> <나쁜 나라> 등의 영화가 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의혹과 정부의 무책임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던 데 비해 상업영화로 관객들을 찾는 영화까지 나오며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찬찬히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스크린 안팎에서 재연되고 있는 갈등의 모습은 특정한 의도에서 세월호가 이용되고 있다는 논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관객들의 기대와 평가가 올라오는 영화 사이트마다 <생일>에 대해서는 ‘감성팔이’나 ‘상처를 후벼판다’는 식의 비판이, <악질경찰>에 대해선 ‘상업영화 소재로 세월호를 이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러한 논란을 예견한 듯 <생일>에서는 울음소리가 지겹다는 옆집 사람의 모습과 보상금을 이미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투자를 권유하는 친척이 등장한다. 2014년 9월 사고 발생과 대처과정에서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유가족들이 단식투쟁을 이어가던 광화문광장에서 극우성향 시민들이 ‘폭식농성’을 벌인 일을 감안하면 공간이 광장에서 네트워크 속으로 옮겨졌을 뿐 여론의 갈등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는 셈이다.

‘동시대 한국영화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논문을 쓴 영화연구자 최은 박사(영화예술학)는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처럼 ‘가라앉는 배’의 메타포가 절박하게 와닿는 곳이 또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고 다시 환기시키는 행위가 그 자체로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쪽과 기억을 내팽개쳐버리는 쪽이 공존하며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위기를 맞을수록 그에 걸맞은 예술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최 박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되고 출몰하는 기억의 투쟁은 역설적으로 이 시대가 기억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영화 ‘악질경찰’ 공식포스터/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의 언어를 통해 ‘기억투쟁’

기억과 망각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모습은 특히 유가족들에게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유가족들은 참사 발생 직후부터 최우선과제가 구조에서 진실규명, 그리고 일상의 회복이 가능한 안전사회 확립으로 옮겨가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때문에 희생자 가족 주변의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미시적인 차원의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4·16연대 배서영 사무처장은 <악질경찰>을 본 뒤 “세월호를 말하지 않는데 세월호 이야기이고, 세월호 이야기이지만 세월호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라며 “‘기억은 곧 투쟁이다’라는 이 과격한 표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자식과 이웃이 죽은 뒤 재빨리 잊어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문화예술의 언어를 통해서도 ‘기억투쟁’을 이어가는 이유라는 것이다.

이미 두 차례의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린 데 이어 4월 5일부터 세 번째 작품인 <장기자랑>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당사자들이 직접 기억투쟁으로 한국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였던 단원고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구성한 ‘노란리본’은 이번 작품에서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2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무대 위 단원고 교복을 입은 엄마 배우들의 모습은 웃음이 넘친다. 작품을 쓴 변효진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희미해져가는 아이들에게 숨을 불어넣고 싶었다”며 “2014년 당시 안산에 살던 청소년들의 삶을 극화해 수학여행을 준비하는 다섯 명의 학생들을 그렸다”고 밝혔다.

결국 눈물과 절규, 고함이 이어지던 광장에서부터 웃음과 치유의 싹이 트기 시작하는 스크린과 무대에 이르기까지 5년간 유가족들이 지나온 시간과 공간들은 세월호 이후 유가족들만이 아닌 한국 사회가 겪은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생일>의 제목처럼 세상을 떠난 가족들의 생일을 기리는 모임에 처음 참석하며 주인공인 어머니 순남은 비로소 엷은 미소를 띤다.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치유공간 이웃’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해 그들의 곁을 지키면서 보고 들은 일상을 필름에 옮긴 <생일>의 이종언 감독이 언급하는 대목도 비슷하다. “참사를 당한 유가족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도 담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에게 다가온 그 참사가 우리 일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담고 싶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