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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세월호 침몰원인은 여전히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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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한 엄마는 벚꽃이 피는 4월을 저주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전 다 함께 모여 벚꽃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2014년 4월 16일에도 벚꽃이 한창이어서다.

세월호는 침몰한 지 3년 만인 2017년 3월 23일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인양작업을 시작한 지 83시간 만인 3월 25일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배는 뭍에 올라왔지만, 세월호는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런 답도 내놓지 못했다.

왜 침몰했는가. 왜 구조하지 못했는가. 세월호 유가족과 배의 침몰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국민들은 5년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다.

침몰 당시 CCTV 조작 가능성 제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3월 28일 주요 증거물인 폐쇄회로TV 영상녹화장치(CCTV DVR)가 해군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해군이 당초 알려진 인양시점보다 훨씬 빠른 시점에 CCTV DVR을 수거했고, 장치에 녹화된 영상을 누군가 먼저 본 뒤 일부를 삭제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현재 보존돼 있는 CCTV DVR은 참사 발생 3분 전까지만 녹화돼 있어 참사 순간의 선내 상황은 미궁으로 남아있었다. 특조위는 CCTV DVR 영상이 기록된 마지막 시점인 오전 8시46분부터 선체가 기울어진 오전 8시48분까지 ‘공백의 3분’을 누군가 고의로 훼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특조위의 발표 내용이다.

“관련자 진술 및 수중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2014년 6월 22일 오후 11시40분쯤 안내데스크에서 DVR을 확인하고, 케이블 커넥터의 나사를 푸는 방식으로 케이블과 분리한 본체를 수거했다는 취지의 해군 관계자의 주장을 사실로 보기 어려운 정황과 자료를 확보했다.”

특조위는 판단의 근거로 해군이 수거하는 과정에서 찍은 영상(2014년 6월 22일 오후 11시40분) 속 DVR이 추후 검찰이 송치받은 DVR과 외형 및 상태가 다른 점, 해군이 제출한 ‘DVR 수거작업이 담긴 수중영상’ 속에는 정작 해당 DVR이 보이지 않는 점 등을 들었다. 물론 이 역시 확정적 사실은 아니다. 정황증거는 있으나 직접적 증언이나 증거는 없는 발표이기 때문이다.

특조위의 발표는 또다시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을 침울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왜 침몰했는지’에 대한 답이 아닌, ‘왜 침몰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결론에 가까운 발표이기 때문이었다.

경향신문

육지로 인양된 세월호 선체 내부가 2017년 6월 21일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3년간 바닷속에 잠겨 있었던 세월호 내부는 침몰 당시 상황을 보여주듯 처참했다. /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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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해양안전심판원 특별조사부는 2014년 12월 19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세월호는 출항 당시 선박 평형수는 적게 실은 반면, 화물은 과다하게 적재하였다. 세월호는 인천항 출항 당시 선박 복원성 일부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였고 이후 연료유, 청수(맑은물) 등의 사용으로 사고 당시에는 선박 복원성이 더욱 악화된 상태였다. 세월호 사고 당시 당직 조타수는 타각(배에서 키를 돌리는 각도)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돌렸거나, 타각을 장시간 유지함으로써 선회하는 각의 속도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선수(뱃머리)가 급격하게 돌았다. 선체가 급격하게 돌아 세월호는 좌현(왼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세월호는 인천항 출항 당시 차량 및 화물 고박(단단하게 묶음) 배치도에 따른 고박기준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세월호가 초기 기울어짐이 있을 때 마찰 정지력이 적은 화물이나 차량들, 또는 고박장치가 불량한 화물들이 옆으로 밀리거나 전도되기 시작했다. 세월호가 더 기울어지면서 화물 고박장치가 파손된 대부분의 차량이나 화물이 좌현으로 쏠리거나 전도됐다. 선회에 따른 배의 기울어짐과 화물의 이동에 의한 무게중심의 횡방향 이동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세월호는 복원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체는 더 기울어지고, 세월호 배 가장자리의 열리는 부분 틈을 통해 바닷물이 화물창, 기관실 및 객실 등 선내로 유입되었다. 이로 인해 선체는 더 침하되면서 계속 기울어져 배의 좌현으로 전복되었으며, 그 후 부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침몰하였다.”

이는 앞서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에 대한 재판을 맡았던 광주지법 1심 판결에서 정리한 사고 원인과 동일한 결론이다. 즉 배의 균형을 유지하게끔 하는 ‘평형수’ 부족과 화물 과다 적재, 무리한 배 증축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상태에서 선체 내에 있던 화물차량 및 철근들의 라싱(Lashing·고박)이 느슨해진 게 배의 복원력을 약화시켜 결국 침몰하게 됐다는 것이다.

기존의 결론을 뒤집는 각종 보고서

그러나 그 이후 발표된 각종 보고서에는 기존의 전제조건을 모두 허무는 증거들이 등장했다.

첫째, 평형수는 부족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청해진해운 측에 따르면 출항 당시 세월호에 든 평형수는 760톤이다. 이는 검찰 조사와 동일하다. <대해선박설계>의 2017년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가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평형수는 370톤이다. 수치대로라면 세월호는 기준보다 더 많은 평형수를 가지고 출항한 셈이 된다.

둘째, 화물은 과다 적재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세월호가 실을 수 있는 화물 적재량은 987~1077톤으로 알려져 있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세월호에는 2215톤의 화물이 실려 있었다. 당연히 과적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해선박설계>의 보고서는 세월호가 실을 수 있는 최대무게를 2272톤으로 봤다. 이 보고서대로라면 과적이 아니라 오히려 적게 실은 것이 된다.

셋째, 무리한 증·개축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실제 세월호는 증·개축 후 무게중심이 51㎝ 상승했다. 이는 화물을 싣지 않은 빈 배의 상태에서 무게중심이 51㎝ 상승했다는 의미다. 실제 무게중심 상승은 복원성 약화의 원인은 될 수 있으나 무게중심은 화물을 실제 싣는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광주지법 역시 불법 또는 무리한 증·개축을 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30여년간 선박 운항 등을 해온 해운업계 현직 관계자는 <주간경향>과의 전화통화에서 “배의 증·개축은 전문 설계자에게 의뢰를 맡겨 도면을 그리고 나서 한국선급(KR)에 기술적 검토를 받은 뒤 승인이 떨어져야만 가능하다”면서 “증축을 하고 나서도 KR로부터 권고를 받는다. 예를 들어 ‘경사시험을 해서 효력이 인정돼야 운항을 할 수 있다’ 등이다. 그만큼 철저한 검토를 거쳐 이뤄진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2014년 검찰 및 법원, 대법원이 인용한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보고서, 해양안전심판원 등에서 내렸던 결론은 전제가 되는 조건에서부터 무너져버린다. 해답을 찾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세월호는 길이 145m, 무게 8000톤급의 중급 규모 선박에 해당한다. 2017년 3월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규모가 20만톤급인 점과 비교하면 세월호는 상대적으로 작은 배로 볼 수 있다. 한 선박업체 강모 전무는 “이 정도 규모의 선박이 왜 침몰했는지 5년이 되도록 그 원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통상 선박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가장 먼저 밟는 절차는 선장과 일등항해사, 당직선원을 상대로 한 인터뷰다. 평소 운항과정에서 이상이 있었는지 여부를 묻는 절차가 가장 먼저 이뤄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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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국장이 3월 28일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세월호 CCTV DVR 관련 조사내용 중간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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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침묵하는 선장과 선원들

강 전무는 “선박에 실리는 화물에 대한 정보는 일등항해사가 가장 잘 안다”며 “라싱상태에 대한 점검도 일항사가 한다. 라싱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악천후 시 배가 좌우로 기울다 화물이 묶여 있는 상태가 느슨해질 수 있다. 그러다 화물이 한 번 쏠리기 시작하면 복원력과 관계없이 배가 그대로 기울어 회복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역시 2014년 5월 1일 고박상태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없었다는 진술이 나온 바 있었다.

그렇다면 평형수도 넉넉하고, 증·개축을 했으나 복원성(배가 기울었다가 돌아오는 성질)에 이상이 없었고, 화물이 과다 적재되지 않았더라도 배가 기울어져 그대로 바다로 침몰할 수 있을까. 해상전문가들은 “가능하다”고 했다.

“선박 및 해상 상태가 좋으면 센 파도를 만나더라도 배의 각도가 20~30도 정도까지도 기울었다가 서서히 평형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바다의 상태는 선장조차 확신할 수 없다. 기상상태가 좋지 않으면 모든 조건이 최상이라도 아주 작은 결함(고박이 어려운 형태의 화물)에도 배는 그대로 침몰할 수 있다. 그래서 베테랑 선원조차도 항상 출항을 앞두고 두려움을 갖는다.”(해상관리감독업계 관계자)

배를 가장 잘 아는, 평소 세월호를 정기적으로 운항했던 선장 및 선원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광주기독교협의회 대표인 장헌권 서정교회 목사는 2014년 10월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세월호 선원들에게 침몰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편지를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이준석 선장 등 수감된 선원 5명은 수취인 거부를 했다. 조타수, 조기장 등 일부 선원이 답신을 했으나 명확한 사고 원인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침몰 원인의 단서가 될 수 있었던 선체 내 CCTV DVR은 배가 기울기 시작한 시점보다 3분 앞서 꺼졌다. 그들이 침묵하는 한 세월호는 인양됐어도 진실은 인양될 수 없다.

청해진해운이 2017년 8월 발간한 <세월호, 침몰원인의 진실규명이 필요합니다>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고, 세월호 또한 인양됐지만 아직도 사고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그 진정한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해서 사고가 났을 것이다’ 하여 사고를 역으로 추정하는 것뿐이고, 정확하게 검증되지도 않은 그저 가설일 뿐입니다.”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여전히 ‘가설’ 속에서 침몰 원인을 찾고 있다. 언제쯤 304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세월호 침몰의 명확한 원인을 밝힐 수 있을까.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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