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기록전서 증언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증언하는 베트남 피해자 |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베트남전 과정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이 3일 광주를 찾아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증언했다.
5·18기념재단은 3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광주나비·한베평화재단과 공동으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을 기록한 '고경태 기록전 <한마을 이야기-퐁니·퐁넛>'을 열었다.
베트남 퐁니 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59)은 이 자리에서 "어머니가 장사를 위해 시장으로 간 사이 한국군이 마을로 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형제들과 함께 집 앞에 있던 방공호로 숨었지만 한국군은 수류탄을 들이대며 나오라고 윽박질렀다"고 증언했다.
이어 "15살이었던 오빠와 11살이었던 언니가 차례로 방공호에서 나가 집 쪽으로 도망치다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았고, 8살이던 나와 5살 남동생도 총에 맞아 쓰러졌다"며 "너무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않고 죽은 척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군이 다른 마을로 사라진 뒤 어머니를 찾아 헤맨 마을은 처참했다"며 "마을 사람들 74명이 죽었는데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 민간인이었다"고 울먹였다.
그는 "그때 본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며 "한국정부는 (민간인학살에 대해) 진상을 조사하고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기록전 찾은 피해자 |
한국군에 의한 또 다른 민간인학살 사건이 있었던 베트남 하미 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61·동명이인)씨는 마을에 있는 피해자들의 위령비가 대리석으로 감춰지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그는 "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뒤편에는 한국군이 우리 마을에서 저질렀던 모든 범죄 사실이 샅샅이 기록돼 있다"며 "한국정부는 대사관을 통해 위령비에 적은 내용을 지우라고 마을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마을 사람들은 지울 수 없다고 긴 시간 투쟁했지만 베트남 정부가 위령비를 대리석으로 덮어버렸다"며 "많은 사람이 그 비문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광주에 오면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다"며 "베트남에서 학살했던 군인들이 광주에서 또다시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분노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시민들이 5·18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보고 마을의 위령비를 꼭 열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강조했다.
전시를 기획한 서해성씨는 "우리는 베트남의 기억과 아픔을 기억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평화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며 "기억하는 인간만이 진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오는 30일까지 계속되는 기록전은 2000년 기밀이 해제돼 세상에 알려진 미 해병 제3 상륙전부대소속 본(J.Vaughn) 상병의 사진과 2000년 이후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을 찾아가 만난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사진으로 구성됐다.
한편 행사가 시작되기 전 대한민국월남전참전회 광주광역시지부 회원 20여명은 행사장을 찾아 "목숨을 걸고 파병을 다녀온 사람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소란을 부리기도 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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