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신공항·부산신항 확장 추진 탄력받나
3일 정부가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개편방안’은 김대중 정부가 1999년 도입한 예타 제도의 골격을 바꿨다는 평가를 듣는다. 대형 국책사업 추진의 첫관문 역할을 한 예타는 500억원 이상 총사업비가 투입되면서 정부 재정이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국책사업의 경제성 등을 사전에 평가하는 제도다. 예타를 통과해야만 사업 추진 부처에서 실시하는 타당성 조사를 받을 수 있다.
이번 개편안은 경제성 평가 중심이었던 예타에 균형발전 등 사회적 가치 비중을 높이는 방향이다. 경제성이 낮더라도 균형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예타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번 개편안에 대해 ‘DJ정부가 도입한 재정규율을 진보성향인 문재인 정부가 무력화시켰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제기획원, 재무부, 기획예산처 등에서 근무한 전직 경제관료들의 모임인 재경회가 2011년 발간한 ‘한국의 재정 60년’에서는 예타 제도 도입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타가 도입되기 전에는 각 부처가 자기 소관 사업에 대해 타당성조사를 실시하거나 외부용역을 의뢰했다. 대상사업 선정 및 조사결과의 객관성과 신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될 수 밖에 없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 방향 등을 밝혔다. /기재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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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가 도입되기 전인 1994~1998년 당시 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 철도청 등에서 실시한 타당성조사 33건 중 32건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 지방 유령공항의 대명사가 된 양양공항, 울진비행장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탈락한 1건은 울릉도 공항이다.
예타를 도입하자 각 부처는 사업 주도권이 예산당국에 빼앗기게 돼 반발했다. 이를 뚫고 도입된 예타는 도입 첫해인 1999년에만 19건의 사업 중 7건을 보류시켰다. 이후 20년 동안 849개 사업(사업비 386조원) 중 300개(154조원)를 걸러내는 거름망 역할을 했다.
예타가 대형 국책사업 중 35% 가량을 보류시킬 수 있었던 것은 경제성 평가 때문이다. 현재 예타는 ‘경제성’에 35~50%, ‘정책성’에 25~40%, ‘지역균형’에 25~35%로 점수가 배정돼있다. 경제성 평가를 좌우하는 비용편익비율(BC) 분석 값이 1을 넘지 못하면 예타를 통과할 수 없는 구조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는 BC 값 1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BC값 1.0’은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 1월 28일 발표한 24조원 규모의 지역균형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이 사업에 예타를 면제시킨 이유도 해당 사업이 대부분 BC 분석값 1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편된 예타 적용지침이 적용될 경우 비수도권 지역에서 BC값이 1을 넘지 않는 사업들이 예타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개편안에서 비수도권의 경우 경제성의 비중을 ‘30~45%’로 낮추고, 대신 지역균형의 비중을 30~40%로 5%포인트(p) 높였기 때문이다. 비수도권의 경우 균형 발전이란 정성 평가 비중을 40% 정도 반영해서 경제성 저하로 인한 감점 요인을 보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예타 조사 전권을 쥐고 있는 방식을 바꿔 기획재정부 산하 ‘재정사업평가위원회’가 예타 통과를 결정하는 종합평가 실시하고, 종합평가에 ‘사회적 가치’ 비중을 높인 것도 비수도권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된다. 정부의 정책의지가 예타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넓혔기 때문이다.
예타 제도를 관장하는 기획재정부는 이번 제도 개편을 통해 "대구, 대전, 부산, 광주 등 지방 광역시가 거점지역 역할을 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방 광역시는 비수도권 지역이지만 농어촌 지역에 비해 낙후도 평가에서 감점을 받았기 때문에 예타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앞으로는 낙후도 평가를 가점 요인으로만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불이익 소지를 제거했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이런 기준을 적용할 경우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 밀고 있는 부산·경남 관련 사업들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가덕도 신공항과 부산 신항 3단계 확장 사업 등이 혜택을 받을 사업으로 거론된다. 부산 신항 확장 사업은 예타 면제 신청 사업이지만 최종 선정되지 못했다. 이 사업들은 모두 BC값이 1 미만이라 경제성이 떨어지지만, 정치권에서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지금까지는 덜 낙후한 대도시 인근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정치권 요구를 회피했었지만, 제도 개편으로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워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편안으로 ‘재정건전성 지킴이’ 역할을 했던 예타 제도의 근본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반응도 내놓고 있다. 정치권의 무분별한 지역개발 사업 요구를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예타 제도의 순기능이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지금까지는 ‘BC값이 나오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재정당국이 정치권 요구에 맞섰지만, 앞으로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정권의 성향에 따라 기준이 바뀌기 쉬운 균형발전 등 사회적 가치를 평가항목으로 집어넣게 되면 예타 평가가 자의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어 진다"면서 "이로인한 정치적 분란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세종=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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