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딜' 또는 '장기연기' 갈림길…장기연기 시 英, 유럽의회 선거 참가해야
영국 브렉시트 대안 표결 (PG) |
(서울·런던=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박대한 특파원 = 영국 하원이 지난 1일(현지시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대안을 찾는 데 또다시 실패하면서 '노 딜'(no deal) 브렉시트 현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영국 BBC 등에 따르면 테리사 메이 총리가 유럽연합(EU)과 합의한 EU 탈퇴협정을 세 차례나 부결시킨 영국 하원은 전날 여러 브렉시트 대안을 놓고 두 번째 '의향투표'(indicative vote)에 나섰지만 이번에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 같은 교착상태가 계속되면서 영국은 '노 딜' 브렉시트와 브렉시트 '장기 연기' 방안을 놓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앞서 EU는 영국 하원이 EU 탈퇴협정을 승인할 경우 브렉시트 시한을 당초 예정된 3월 29일에서 5월 22일로 연기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만약 승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4월 12일 '노 딜' 브렉시트를 하는 방안과 5월 23일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장기 연기'를 하는 방안을 선택지로 제시했다.
만약 영국 하원이 지금처럼 계속해서 아무런 방안도 찾지 못할 경우 영국은 오는 12일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한 채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를 맞게 된다.
영국 하원 대다수가 '노 딜' 브렉시트에는 반대하고 있는 만큼 그동안 이 같은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영국 정치권이 계속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서 이제 EU 내에서는 '4월 12일 노 딜 브렉시트'를 유력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기 베르호프스타트 유럽의회 브렉시트 수석 협상가는 이날 영국 하원 표결 뒤 트위터에 이제 '노 딜' 브렉시트는 "거의 불가피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어온 미셸 바르니에 EU 측 수석대표는 이날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정책센터' 연설에서 "지난 며칠간 '노 딜' (브렉시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엄청난 혼란이 촉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관심은 이날 열리는 특별내각회의에서 영국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쏠린다.
우선 메이 총리가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을 이번주 내 제3 승인투표(meaningful vote)에 부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메이 총리는 '노 딜' 브렉시트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원이 자신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지지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하원이 이미 세 차례나 부결시킨 방안이어서 또다시 표결에 부친다고 해도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으면 제3 승인투표는 불허하겠다고 밝힌 존 버커우 하원의장의 입장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만약 하원이 메이 총리의 EU 탈퇴협정을 가결한다면 영국은 브렉시트 시기를 5월 22일까지 연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정부 불신임안과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함께 묶어 표결을 실시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제1야당인 노동당에서 요구해 온 조기 총선 개최를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와 같은 정치 지형 하에서는 어떤 브렉시트 계획도 과반 지지를 얻기 쉽지 않은 만큼 아예 조기 총선을 통해 새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메이 총리가 조기 총선에서 보수당을 이끌 경우 노동당에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보수당 내에서는 조기 총선에 필요한 선거자금 역시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27일 열린 영국 하원의 첫 번째 의향투표 모습 [AFP=연합뉴스] |
일단 현재 남은 최선의 방안은 영국 하원이 오는 3일 예정된 추가 의향투표에서 과반 지지를 얻는 브렉시트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지난 1일 열린 추가 의향투표에서 EU 관세동맹 잔류안이 찬성 273표, 반대 276표로 불과 3표차 부결했다.
노르웨이 모델, 제2 국민투표 개최 등도 표차가 10∼20표에 불과했다.
만약 추가 의향투표에서 관세동맹이나 노르웨이 모델과 같은 '소프트 브렉시트'안이 과반을 확보하면 EU는 수일 내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이를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그동안 법적 구속력이 있는 EU 탈퇴협정은 재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도 '미래관계 정치선언'에는 유연한 입장을 보여왔다.
'미래관계 정치선언' 수정에 성공하면 이후 영국 하원이 EU 탈퇴협정과 함께 이를 승인하고 정식 비준동의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바르니에 수석 대표는 이날 "우리는 아직 이를('노 딜' 브렉시트) 피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서 EU는 영국이 EU의 관세동맹에 잔류하거나 EU와 노르웨이 간 관계와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실패할 경우 메이 총리는 EU 정상회의가 예정된 이달 10일 이전에 브렉시트 '장기 연기'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를 더 늦추는 '장기 연기' 방안의 경우 영국이 5월 23일 시작되는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앞서 영국이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EU는 오는 10일 임시 정상회의를 열어 장기 연기 방안의 조건이 충족됐는지 여부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바르니에 대표는 영국의 장기 연기를 받아들일 경우 EU에 심각한 리스크를 노출할 수 있다며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강력한 이유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밖에 영국이 브렉시트를 아예 취소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제2의 국민투표 주장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의회와 내각이 브렉시트 방안을 놓고 극도로 분열된 상황에서 교착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은 결국 다시 한번 국민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뿐이라는 주장이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의 정치 부편집장은 이날 트위터에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이 2일 내각에 국민투표를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해먼드 장관은 메이 정부가 타협안을 내거나 아니면 의회가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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