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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김효주의 무기 선글라스 “엄마에게도 안 빌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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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10언더파 몰아치기

강한 인상과 집중력 위해 착용

시즌 톱10 세 번째 … “목표 2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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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는 김효주에게 경기를 위한 집중 모드에 들어가는 스위치 같은 것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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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시절 다른 선수들은 김효주의 선글라스를 무서워했다. 평소 발랄하고 재미있는 김효주가 선글라스를 쓰면 달라진다고 여겼다. 친구들은 “색안경 쓴 효주는 터미네이터 같다. 선글라스 속 효주는 위기에서 잘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기억했다.

김효주는 “90% 동의한다”고 했다. “눈이 큰 편이어서 안 끼면 멍해 보이기도 하고 운동선수 느낌이 덜 했다. 눈동자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김효주는 짙은 색의 스포츠 선글라스를 쓴다.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에 잠시 세계랭킹 1위를 했던 데이비드 듀발(미국)도 짙은 선글라스로 유명하다. 듀발은 “나에게는 두 개의 인생이 있었다. 골프선수로서의 화려한 나와, 골프장 밖에서의 외로운 인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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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듀발.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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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듀발은 부모가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형에게 의지하면서 자랐는데 그 형이 암에 걸렸다. 듀발이 골수 이식까지 해줬지만, 형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듀발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골프에서 위안을 찾았다. 선글라스는 그가 세상과 친 짙은 장막이었다.

선글라스 착용하는 순간 전투모드

김효주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선글라스는 김효주에게는 중요한 의식이다. 김효주는 "평소 덜렁대는데 공 칠 때만은 집중하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글라스가 신호다. 경기를 위해 집중 모드로 들어가는 스위치 같은 것이다. 선글라스를 끼면 전투 모드 스위치를 켜는 것이고 벗으면 끄는 것이다.

표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는 선수는 흔하다. 시력 보호 혹은 패션을 위해 선글라스를 쓰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 선수들은 퍼트할 때는 그린 경사를 잘 읽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벗는 경우가 많다. 김효주는 웬만하지 않고선 그러지 않는다.

2014년 김효주가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메이저 최소타인 61타를 기록하면서 우승할 때 일이다. 당시 김효주는 경기를 앞두고 아킬레스건이 부어올라 거의 걷지도 못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도 차를 불러야 했다.

그러나 선글라스를 끼면 이겨낼 수 있었다. 굴곡이 많은 알프스 산악코스인 에비앙을 성큼성큼 걸으면서 클럽을 휘둘렀다.

김효주는 당시 최종 라운드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여자 백상어 카리 웹(호주)을 제압했다. 승리를 확정한 뒤 웹과 인사할 때야 비로소 김효주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래서인지 김효주는 선글라스를 매우 아낀다. 김효주는 “다른 골프용품은 자선행사 등에 내놓기도 하지만 선글라스는 절대 내놓지 않는다. 아버지도, 엄마도, 언니도 하나만 달라고 해도 절대 주지 않았다”고 했다. 김효주는 선글라스가 20개가 넘는다. 김효주는 “처음엔 옷과 색깔을 맞췄다가, 튀는 걸 썼다가, 요즘은 그날 눈에 확 띄는 걸 낀다”고 했다.

김효주는 LPGA 투어에 진출한 후 시행착오를 겪었다. 거리를 늘리려다 스윙이 꼬였고, 정신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2017년엔 상금랭킹이 38등까지 밀렸다. 그러나 이제 적응해 나가고 있다. 그는 “하루에 1시간 반~2시간 정도 체력 훈련을 했다. 안 하면 몸이 무거울 정도다”라고 했다.

김효주는 올 시즌 4차례 대회에 출전해 톱10에 세 번 입상했다. 1일 기아클래식에선 10언더파를 몰아쳤다. 또 올 시즌 오버파가 한 번도 없다. 김효주는 “자신감을 찾았으니 이번 주 열리는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이 기대되고 올해 2승을 노린다”고 말했다. 김효주가 우승한 뒤 선글라스를 벗고 커다란 눈과 미소를 보여줄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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