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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버닝썬 사태

사라진 아이들이 모여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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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가출청소년 스카우트해서 ‘물뽕’ ‘성매매’ 시키는 강남 클럽을

<메이드 인 강남>의 주원규 작가가 말하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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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필자가 서울 강남 클럽을 잠입 취재하던 때 정준영씨 불법 동영상 촬영 사건이 터졌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여자친구와 벌인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면서 동영상 유출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때 필자가 들은 클럽 관계자들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들만의 은어인 ‘곰’, , 경찰이 이제는 자신들의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성폭력, 마약 그리고 성매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움트기 시작한 3년 전 상황과 비교해 지금 클럽 ‘버닝썬’ ‘아레나’로 연결되는 양상은 한층 더 악화한 모습이다. 만약 지금 같은 여론이 3년 전 그때로 되돌아가 본격적인 진상 조사로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당시 본격화하려 했던 미성년 성매매의 검은 유혹이 적어도 확산되거나 일상화되는 위험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많은 가출청소년에게 ‘강남’은 동경과 선망,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기회의 플랫폼이다. 하지만 그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성착취와 쾌락 충족의 대상자로 전락시키는 이들의 포악함은 가출청소년들의 영혼을 극한의 황폐함으로 몰아가고 있다.


윤지 당시(17·가명)를 알게 된 건 2015년 여름이었다. 서울 신도림역 근처에 있는 가출청소년쉼터에서 만난 윤지는 가출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나름 잘 알려진 친구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 표현 그대로 ‘연식이 오래된’ 탓이다. 11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폭행에 못 이겨 집을 나온 윤지는 신도림과 영등포 일대를 떠돌며 쉼터와 ‘가출팸’(가출청소년들끼리 집단생활)을 오가며 생활했다.

걸그룹 꿈꾸던 ‘가출 6년차’

이런 상황만 보면 윤지가 삶에 아무 의욕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출 6년차가 된 윤지를 봤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윤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강하게 긍정했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믿음도 상당했다.

“어떻게든 뭉개고 버티다보면 나도 남들처럼 취직하고 공부도 하고 남친도 사귀고 코도 고치고, 대충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

윤지는 누가 봐도 예쁜 외모였다. 적당히 타고난 끼도 있었다. 윤지는 여럿이 같이 지내는 쉼터의 비좁은 거실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엠넷(Mnet) 음악방송만 나오면 아이돌의 칼군무나 걸그룹의 춤을 따라 추곤 했다. 제대로 강습받은 적은 없지만 윤지는 나름 프로 같은 재능을 보여주었다. 무슨 춤이냐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던 쉼터의 다른 친구들도 윤지의 실력을 한번 보고 나면 얘기가 달라졌다.

그래서일까. 윤지의 꿈은 걸그룹 가수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그래서 구구단 외우기도 힘겨워 보이는 윤지의 꿈은 강한 의지만큼은 좋아 보였지만 조금은 위태로운 느낌이 스며들었다. 가출을 경험한 친구들끼리 나누는 정보란 대부분 음성적이거나 ‘무법지대’ 이야기다. 그 실행 과정에서 크고 작은 범법 행위가 속출했다. 윤지가 걸그룹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힌 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을 때, 난 앞서 말했던 위법적인 정보를 믿지 말고 검정고시 준비를 병행하면서 검증된 기획사를 찾아가 오디션을 받자고 제안했다.

윤지는 내 말을 자기 진로를 실현할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제법 대견하게 기다렸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검증된 기획사에서 오디션 받는 길을. 난 그런 윤지에게 검정고시 준비를 위한 책들을 사다 주었다. 그렇게 2015년 겨울이 지나갔다.

해가 바뀐 2016년 1월, 윤지가 사라졌다. 쉼터에서 같이 지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윤지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뿐이었다. 휴대전화를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기계음만 되돌아왔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초조해졌다.

가출청소년들이 쉼터에서 이른바 ‘잠수’(자취를 감추는 것) 타는 일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 이틀이면 돌아오는 게 그들만의 어떤 규칙이었다. 그런데 윤지의 자발적 실종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때부터 난 윤지에게 벌어질 법한 일이 낯선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두려움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윤지를 본격적으로 찾아나섰다. 쉼터 네트워크만으로는 윤지를 찾는 데 한계가 있어, 윤지가 쉼터에 오기 전 같이 생활하던 가출팸 아이들을 만났다. 그렇게 수소문한 지 이틀 만에 한 친구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윤지, 강남으로 떴어요.” “강남 어디?”

“클럽이요. 클럽!” “클럽?”

“거기 가서 연예인으로 데뷔도 하고 돈도 대박(많이) 만지고. ‘룸빵’(룸살롱)이나 ‘단란’(주점) 나가는 것보단 훨씬 ‘가오’(체면) 서니까 요즘 애들, 거기로 많이 스카우트돼서 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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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떠난 아이들이 돈을 번다는 의미

‘강남’ 그리고 ‘클럽’이란 두 용어가 머릿속에 입력되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이어지듯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윤지처럼 갑자기 연락을 끊으며 자발적 실종을 감행한 쉼터 아이들이 있었다. 또한 연락을 아예 끊지는 않아도 아르바이트하는 곳이 강남, 그중에서도 연예인을 비롯해 이른바 잘나간다는 ‘로열’들이 모인 클럽이란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클럽은 남녀가 파티를 즐기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돈을 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가출청소년, 그중에서도 여자아이는 대부분 단란주점이나 룸살롱, 2차 성매매를 알선해주는 안마방 등 퇴폐 유흥업소에서 ‘콜걸’(전화 호출에 응해 성매매하는 여성)이나 접대부로 일하며 돈을 버는 게 일종의 탈선 유형이었다. 그런데 클럽에 있으면서 돈을 번다? 그게 어떤 구조로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윤지를 찾는 일이었다. 윤지는 쉼터에서도 ‘맏언니’ ‘엄마’ 소릴 듣던 친구였다. 윤지의 남다른 책임감을 믿고 싶었다. 다시 이전처럼, 잠시 잠수 탔다가 훌훌 털고 돌아올 거라 믿었다.

처음엔 무작정 강남 클럽을 돌아다녔다. 클럽을 기웃거린다 해서 윤지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출입도 비교적 엄격했다. 단골이거나 어느 정도 클럽 생리를 잘 아는 이들이 그곳 주인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허탕하기를 다시 일주일, 더욱 초조해졌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19살 현태(가명)에게 연락하는 일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권투를 배운 현태는 가출팸들 사이에서도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 결국 싸움 기술을 무기로 강남 클럽 등지에서 고액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현태가 하는 일은 그들만의 은어로 ‘가드’였다. 클럽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를 정리해주는, 일종의 뒤처리 전담반 같은 일이었다.

나는 현태에게 강남 클럽의 밑바닥을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내 부탁을 들은 현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쌤(선생님)은 하루도 못 버틸 텐데.”

어떤 오기가 생겨 나는 끝까지 현태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철저히 현태의 신변 안전을 보장해줄 것을 약속했다. 결국 내 설득에 넘어간 현태는 선배 가드에게 날 소개했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콜카’(콜걸과 여성 접대부를 이동시키는 운전기사) 일을 하게 됐다.

두 달 이틀 만에 ‘콜카’에서 마주쳤지만

말이 좋아 운전기사지, 술에 취한 남성과 여성을 뒷좌석에 태우고 강남 일대 호텔에 데려다주고 잡심부름을 하는 등 온갖 뒤치다꺼리를 했다. 처음 한 달은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클럽에서 눈이 맞아 즉석만남에 성공한 남녀를 클럽과 연결된 호텔이나 모텔로 옮겨다주는 일을 했다. ‘이사’나 ‘상무’ 등 기분 내키는 대로 자신의 직함을 결정하는 클럽 관계자는 내가 운전대를 잡기 전에 내 휴대전화를 빼앗았고 일이 끝나는 시간에 돌려줬다. 나는 내 의도를 들킬까봐 숨죽여 일했다. 그렇게 강남 클럽 전역을 돌며 운전기사 일을 했지만 윤지는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이 더해만 갔다.

그렇게 한 달여 지났을 때, 현태가 나에게 특별한 차키를 쥐여주며 이제부터는 이 차를 운전하라고 했다. 하얀색 신형 벤츠였다.

흰색 벤츠로 옮겨간 운전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듯 여겨졌다. 클럽에서 직접 운영하는 차량으로 추정되는 벤츠에는 지난 한 달 동안 본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 그들 말로 ‘멤버십’ ‘네트워크’로 통하는 남자들이 뒷좌석에 앉았다. 그 옆에 앉는 여성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어려 보였다. 클럽 관계자가 이동하라고 지시한 주소들 역시 수십 곳인데 대부분 단기임대 오피스텔이었다. 그렇게 클럽에서 운영하는 벤츠를 몰기 시작하면서 내 눈에 비치는 룸미러(차량 뒤편을 볼 수 있도록 장착한 거울) 너머 사람들은 일반 고객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 그들이 주고받는 말,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 전형적인 성매매로 보였고, 그 성매매의 피해 대상이 된 여성들은 거듭 말하지만 어려 보였다.

‘어려 보인다’는 말이 불길한 예감이 되어 되돌아왔다. 새벽 콜카 운전을 시작한 지 두 달째 되던 어느 평일 새벽, 윤지를 만났다. 룸미러를 통해 우린 서로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서로를 몰라봤다. 나를 먼저 알아본 건 윤지였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나를 처음엔 긴가민가하며 쳐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를 알아보는 표정이었다. 그때 나도 윤지를 알아봤다. 성형한 코와 쌍꺼풀 수술 흔적, 짙은 화장 그리고 너무나 지친 표정, 그렇게 윤지를 발견했다. 두 달 하고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윤지를 데려올 수 없었다. 윤지를 강남 클럽의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온갖 음성적인 구조에서 구출해내지 못한 것이다. 일명 ‘VVIP 고객’으로 구성된 그들만의 리그에서 착취당하는 성매매 이벤트의 희생양이 되도록 조련한 속칭 ‘스카우터’와 악질적인 관리자, 그들에게 거액의 이벤트 비용을 내고 극단적 쾌락을 즐기는 특별관리 고객들. 이 악취 나는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서 신음하는 건, 윤지를 비롯해 거리에서 스카우트돼 강남 클럽 어딘가를 헤매는 가출청소년들이었음이 분명했다. 윤지는 그곳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어떤 찬란함과 감언이설이 윤지의 숨통을 자발적으로 조이게 했을까. 위조 주민등록증으로 성인처럼 나이를 속이고 클럽 일대를 부초처럼 떠돌며 남성 고객에게 원치 않는 변태적 성관계를 강요당하고, GHB(무색무취의 신종 마약으로 물이나 술 등에 타서 마셔 ‘물 같은 히로뽕’이란 뜻의 ‘물뽕’이라 함)에 수시로 노출되면서 몸과 영혼이 급속히 파괴되면서도 윤지는 이렇게 말하며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강남 아니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3년이 지난 지금도 윤지의 그 말이 가슴 아프게 파고든다.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과연 윤지 같은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혼란의 지속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오늘 우리의 시선이 부와 권력, 명예를 쥐고 벌이는 이른바 ‘가진 자’들의 승리의 축제를 증오하면서도 동경한다는 사실, 그 축제의 하부구조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썩 대면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 쓰라린 현실을 발견할 뿐이다.

주원규 <메이드 인 강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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