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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최나연 “골프장이 두려웠다, 그러나 행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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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샷 공포증, 한동안 대회 불참

1년 만의 복귀전서 공동 27위

중앙일보

드라이버 입스로 고생하다 1년 만에 복귀한 최나연이 힘차게 티샷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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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연(32)은 지난 해 4월 휴젤-JTBC LA오픈 개막을 앞두고 기권한 뒤 가방을 쌌다. 티잉그라운드가 두려웠다. 최나연은 “연습장에서는 괜찮은데 티박스에 올라 드라이버를 치면 옆 홀을 지나 그 옆 홀까지 갈 정도로 심각했다. 공포증은 파 3홀까지 번졌다. 페어웨이에선 상관없는데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아이언으로도 공을 치지 못했다. 내 차례가 돼서 셋업을 하러 걸어가는 짧은 발걸음이 엄청 고통스러웠다. 많이 울고 클럽도 많이 부러뜨렸다”고 했다.

유럽 여행을 떠났다. 골프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떠난, 생전 처음으로 골프와 관련되지 않은 여행이었다. 최나연은 “인적 없는 오스트리아 강가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소리를 지르면서 자전거를 탔다. 나도 몰래 웃음이 났다. 그렇게 행복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최나연은 “여행 중 높은 곳에 올라 바라 본 풍경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했다.

프로 골프 선수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끼고 산다. 좋은 골프장은 대개 풍광이 좋은 곳에 짓기 때문이다. 최나연은 “선수생활을 할 때는 골프 밖에 몰라 경치를 보고도 아름다운지 몰랐다”며 웃었다.

최나연은 경쟁심이 무척 강하다.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최나연의 올랜도 집 신발장에는 운동화와 골프화만 있었다. 전성기에 가공할 폭발력을 보여줬던 청야니에 가장 치열하게 대항한 선수가 최나연이었다. 최나연은 완벽주의자고, 그걸 인정받아야 했다. 최나연은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슬럼프가 없었는데 뒤늦게 슬럼프가 오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열심히 해도 효과가 없어 화가 났다”고 말했다.

LPGA 대 선배인 카리 웹이 그를 불러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선배들은 “공이 오른쪽으로 가도 창피해 하지 않아야 한다. 숨기려 하면 고칠 수 없다. 내가 이런 병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다로 나가서 최나연은 파도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치지 않고, 세상일도 꼭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최나연은 11개월 만에 대회에 나왔다. 25일 끝난 LGP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이다. 경기 전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함께 일을 하기로 한 캐디가 나타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탔다는 메시지가 왔는데 이후 연락이 끊겼다. 다행히 캐디는 무사했지만 최나연은 마음을 졸여야 했고 다른 캐디를 찾아야 했다. 최나연은 “하늘이 나를 이렇게도 시험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최나연은 첫날 7언더파를 치면서 2위가 됐다. 입스로 고생했고 1년을 쉰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었다. 최나연은 최종합계 12언더파 공동 27위로 대회를 마쳤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최나연은 “오늘 티샷 두 개가 페널티 구역에 들어갔다. 불안해 지기도 하더라.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풀렸다. 화를 내는 것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도 선택이다. 좋은 선택을 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른바 내려놓기다. 그러나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최나연은 “주위에서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동계훈련을 충실히 했다. 최선을 다하지만 스스로 압박감을 주면서 괴롭히지 않는 것이 진정한 내려놓기”라고 말했다.

최나연은 “매 대회 예선 통과를 목표로 경기할 것이다. 주말에도 경기할 수 있다면 아주 행복할 것이고 주말에 경기하다 보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나연은 골퍼에게 가장 무섭다는 입스를 만나면서 오히려 행복해지는 법을 배웠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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