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
한국기원이 2차 가해 논란을 빚었던 ‘바둑계 미투’ 재작성 보고서 전문을 공개하고 피해자인 헝가리인 코세기 디아나 기사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국기원은 “1차 조사의 내용과 과정 대다수가 문제였다”며 “‘바둑계 미투 운동’ 사태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한 점을 사과한다”고 밝혔다.
바둑계 미투는 코세기 기사가 2009년 6월 김성룡 전 9단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지난해 4월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한국기원은 20일 공개한 재작성 보고서에서 “미투 1차 조사를 맡은 윤리위원회 구성과 선발, 1차 조사 과정과 내용, 질의서, 종합의견 등 대부분이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기원은 지난해 코세기 기사의 폭로 이후 윤리위를 구성해 미투 사건에 대해 1차 조사와 그에 따른 보고서를 내놨다. 그러나 윤리위는 김 전 9단을 두둔하고 코세기 기사를 추궁하며 사건 본질에 어긋나는 조사를 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이에 한국기원은 한국성폭력위기센터 박윤숙 소장 등 성폭력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기원 미투사건 재작성 위원회’를 꾸려 지난해 12월28일부터 올해 1월18일까지 보고서를 새로 작성했다. 한국기원 정기이사회는 12일 표결에서 찬성 19표, 반대 3표, 기권 2표로 재작성 보고서 채택을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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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은 재작성 보고서에서 윤리위 구성과 관련해 “윤리위가 피해자 보호를 우선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미투 조사 목적의식이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또 “성범죄 전문가의 도움 없이 위원장과 남자 프로기사로만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전문성과 젠더 감수성 등 문제를 노출할 우려를 가지고 시작했다”고 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보호조치 및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충분한 조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증거 채택에 대해서도 “코세기 기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서류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며 수긍할 수 없다고 봤다.
질의서에 대해서도 “질의서만 보내고 답변을 받는 형식만으로 조사한 것이 잘못이며, 준강간에 집중된 질문이 아니라 사건 전후의 간접적인 사실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고 판단했다.
“코세기 기사가 김 전 9단과 같이 바닷가에 갔는지 여부 등은 준강간이 있었는지를 추측케 하는 간접사실일 뿐인데 준강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코세기 기사가 제출한 증거서류들의 채택은 배제한 채 이러한 간접사실들에 대한 질문들로 일관된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기원은 “질의서 내용 또한 여성 피해자의 성 감수성을 전혀 도외시한 채 2차 가해성 질문을 했고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이미 진술한 사실들에 대해 기억을 해내라는 식의 강요성 질문이 많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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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당사자의 진술에 대한 판단에서도 “김 전 9단의 진술은 그가 증인으로 지목한 증인조차 동의하지 않는다”며 “노래방 이야기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으나 지나치게 과장해 코세기 기사와 평소 호감이 있었다는 듯이 기술했다”고 지적했다.
윤리위원들의 종합의견과 관련해서는 “코세기 기사가 준강간에 대한 여러 증거 서류를 제출한 반면 김 전 9단은 자신의 주장만을 진술할 뿐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는데 어떤 근거로 김 전 9단의 진술이 코세기 기사 진술보다 일관성과 신빙성이 조금 높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코세기 기사의 진술이 자신이 제출한 준강간에 대한 여러 증거 서류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반면 김 전 9단의 진술은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코세기 기사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기원은 결론으로 “(결론)종합의견 부분은 잘못된 증거 채택과 조사로 인한 명백히 잘못된 부분이므로 시정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준강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단정할 수는 없으나 종합의견 부분은 ‘김 전 9단이 준강간 사실을 부인하나 준강간을 당했다는 코세기 기사의 일관된 진술과 코세기 기사가 제출한 여러 증거들에 의해 준강간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높다’는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기원은 1차 보고서에서 “김성룡이 디아나를 집으로 불러 같이 술을 마시고 자다가 성관계를 시도한 것은 분명하나 성관계를 했는지, 준강간이 성립되는지는 미확인됐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한국기원은 이날 발표한 사과문에서 “바둑계 미투 운동 과정에서 밝혀진 불미한 사태에 대해 한국기원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대처하지 못했음을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아울러 바둑 보급 활동 중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을 겪은 ㄱ기사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한국기원은 “미투 관련 제보를 받아 김 전 9단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지난해 7월 이사회에서 김 전 9단의 제명을 최종 확정했다”며 “사회적 파장이 워낙 큰 사안이었기 때문에 전후관계를 신중하게 살펴 처리할 수밖에 없었으나 사태 발생 후 즉각적이고도 명쾌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코세기 기사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고 바둑팬들의 우려를 초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안전한 시스템 구축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며 “바둑계 내부의 적폐를 해소하고 주변을 꼼꼼히 살펴 바둑계 환경을 정화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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