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서울의 한 사립 대학에서 전공 과목과는 무관한 조교들이 학생들의 시험지를 대리 채점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교들은 이래도 되나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폭로했지만, 해당 교수는 시킨 적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홍성욱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해 성신여대에서 학사 조교로 근무했던 A 씨.
학생들의 시험이 끝날 때마다 교수에게서 황당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해당 전공 출신자도 아닌데 서술형 시험지 채점을 해야 했던 겁니다.
계약직 신분이라 지시에 따르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전 학사 조교 A 씨 : 양심에도 찔리고 이걸 내가 이렇게 하고 있어도 맞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1년 같은 교수실에 근무했던 다른 비전공 조교도 대리 채점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심지어 영어 해석에 자신이 없었는데, 영어 서술 답안지까지 채점했다고 말합니다.
[2011년 조교 B 씨 : 핵심 되는 문장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부분을 더 점수를 많이 줘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고 반 정도 썼으면 반점을 주고 이런 정도로 했으니까, 제대로 했는지는 사실 자신은 없어요.]
대학 커뮤니티 앱 익명 게시판에도 대리 채점 사실이 올라오면서 이젠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 됐습니다.
[성신여대 학생 : 채점을 다른 분한테 맡긴다는 게 일단 이해가 안 가고요. 교수의 자질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대리 채점을 시켰다는 폭로가 나온 교수는 현재 해당 전공 학과장.
지난 2011년 교수로 임용된 직후부터 일부 과목에서 대리 채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해당 교수는 조교와 같이 채점한 적은 있어도 점수 매기는 걸 모두 맡긴 적은 없다며 폭로 내용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YTN 홍성욱[hsw0504@ytn.co.kr입니다.
[앵커]
대리 채점을 지시했던 교수는 조교에게 과일을 종류별로 정확하게 몇 쪽씩 깎아 놓으라고 요구하는 등 상식 밖에 갑질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학 측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눈을 감고 있다가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어서 차정윤 기자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교수님 오시는 날.
담당 조교는 신선한 과일을 준비합니다.
수업 1시간 전.
연구실 책상 위에 껍질 벗긴 오렌지 반쪽, 사과 1/3 쪽, 배 1/4 쪽을 올려 둡니다.
우유는 반드시 저지방, 특정 제품이어야 합니다.
겨울에는 뜨겁게, 여름에는 차갑게 교탁 위에는 고가의 수입 홍차를 준비해 놓습니다.
[성신여대 전 학사 조교 : 따뜻한 차를 우린 텀블러를 수업 전에 교수님 수업하시는 교탁에 다른 수업 준비 물품과 함께 갖다놓고, (교수님이) 수업이 끝난 뒤에는 그 자리에 모든 물건을 놔두세요. 그러면 그걸 저는 다시 챙겨서 나와야 해요.]
이런 업무 지침은 A4 용지 9장짜리 문서로 정리됐습니다.
강의용 기자재 관리 같은 일반적인 조교 업무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먹고 마시는 지극히 사적인 일을 시중드는 것들입니다.
전 조교들은 이 매뉴얼대로 되지 않으면 폭언을 듣기도 했고, 교수 사적인 일을 챙겨주느라 점심을 거르거나 수업에 빠지기까지 했다고 증언합니다.
[성신여대 전 학사 조교 : 밖에서 (조교들과) 같이 점심 먹고 있을 때도 (교수가) 올 때 밥 사 오라고 하시니깐, 밥을 급하게 먹고 저희도 쉬는 시간인데 밥을 사 가지고 가야 하고 그랬죠.]
[성신여대 전 학사 조교 : 학과사무실에 계속 전화가 울리는 거에요. 하도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교수가) 물 좀 떠 다 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연구실 문을 열면 바로 앞에 정수기가 있거든요.]
전 조교 중 한 명은 이 같은 교수의 '갑질'을 지난해 말 학교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무시했고, 관련 내용이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오르고 나서야 자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해당 교수는 메뉴얼 자체를 본 적이 없고, 과일 준비 같은 허드렛일도 시키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성신여대 측은 내부 감사를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를 검토할 계획입니다.
YTN 차정윤[jycha@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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