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페이스북에 올라온 성폭력 2차 가해 경고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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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영상 속 연예인 등장’
근거 없는 소문 SNS 퍼져
포털서도 연관 검색어로
일부 언론, 여과 없이 보도
시민단체 “억측 난무” 비판
가수 정준영씨(30)의 불법촬영·유포 파문이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지고 있다. 정씨가 찍은 불법영상에 유명 연예인이 등장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졌다.
포털사이트에는 검색어 ‘정준영’과 함께 ‘동영상 리스트’ ‘걸그룹’ 등이 자동완성된다.
정씨의 혐의가 드러난 이후 일부 SNS에 퍼진 사설정보지에는 이번 사건이 ‘역대 최고·최대 여자 연예인 섹스 스캔들’로 비화할 수 있다며 ‘정준영이 몰래 찍은 영상의 여자들 대부분이 현역 걸그룹 멤버나 배우들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피해자가 일반인이든 연예인이든 범죄의 심각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데도 연예인 피해자를 부각한 내용의 이야기들을 퍼뜨린 것이다.
일부 언론은 소문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피해 여성 중 걸그룹 멤버’(동아일보)가 포함돼 있다거나 ‘연예인 피해자…일파만파’(세계일보)라는 식의 피해자를 부각하는 제목을 달았다. 소문이 확산되자 언론과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이름이 언급된 여성 연예인의 소속사 다수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해명을 내놨다.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2014년 발표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 따르면 언론은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피해자가 특정된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자를 부각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높다.
올 초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성폭행당한 사건도 초기 ‘심석희 사건’으로 불리다 이 같은 여론에 다수 언론이 ‘조재범 성폭행 사건’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는 성명 발표와 캠페인으로 2차 가해를 비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정씨가 입건된 이후 영상 속 피해 여성이 누구인지 억측이 난무하고, 심지어 문제의 영상을 구할 수 있느냐는 요구까지 오간다고 한다”며 “이런 피해자 신상털기와 억측, 이를 조장하는 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태도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발생시킨다”고 했다.
여성주의 단체 나쁜페미니스트는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사진·동영상 유포는 2차 가해’라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가해자를 밝혀야 할 상황에서 피해자가 누구라는 식의 보도와 관심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지방경찰청도 이날 ‘불법촬영 및 유포,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 행위’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경찰은 “최근 유명 연예인과 관련된 불법촬영물 속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어 관련자들의 2차 피해가 심각히 우려되고 있다”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정보를 재전송하는 경우에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에 따르면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을 누설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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