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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13년간 한번도 안 찾은 가족···울산 양로원 사건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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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70대 노인 흉기로 다른 노인 4명 다치게 한 뒤 극단적 선택

전문가들 "가족과 떨어져, 단체 생활 적응 못한 마음의 병 원인"

중앙일보

사건이 발생한 울산의 한 양로원 사진.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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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울산시 울주군의 한 양로원에서 70대 노인이 다른 노인 4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뒤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고령화 시대 그늘이 빚어낸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령 인구가 늘면서 양로원이나 요양시설을 많이 찾지만, 노인들이 이곳에서도 제대로 적응을 못 해 유사 사건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찾아오는 사람은 없죠. 병에 걸려 몸은 아프죠. 거기다 함께 있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죠. 결국 그런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이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 찾은 울산시 울주군 한 양로원은 적막강산이었다. 울주군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이곳은 산에 둘러싸여 주변에 다른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인근에 사는 주민(69·여)은 “거기는 평소에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고 밤이 되면 주변에 다른 건물도 거의 없어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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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나갔던 노인들이 양로원으로 돌아오고 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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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가해자 오씨(77)가 양로원에 들어온 건 2006년이다. 경찰은 목수일을 했던 그가 스스로 양로원행을 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입소 후에도 양로원 측과 상담 과정에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13년간 그를 찾아온 가족이나 지인은 없었던 것으로 경찰과 양로원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자녀가 몇 명 있는데 입소 때 딸이 함께 온 뒤 그 뒤 찾아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여러 가지 복잡한 가족사가 있어 그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씨는 입소 당시 약간의 치매 증상과 고혈압, 청각장애 등을 갖고 있었지만 혼자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특히 최근까지도 폭력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는 것이 양로원 측의 설명이다. 오히려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혼자서 한자를 쓰는 등 혼자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로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차츰 오씨는 다른 사람과 잦은 말다툼을 하게 된다. 무릎 등이 아파 자주 파스를 붙여 주변에서 “파스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소리가 나오면 그게 언쟁의 발단이 됐다. 청각 장애로 귀가 잘 들리지 않다 보니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말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다른 노인과 조금씩 거리가 멀어졌다.

경찰은 오씨가 다른 사람과 다툼이 잦게 된 시점을 2014년 전후로 보고 있다. 당시 오씨가 다른 사람과 심하게 말다툼을 한 뒤 양로원 측에 각서를 쓰기도 했다. 오씨는 이 각서에서 “3번의 다툼이 있었던 것을 시인한다. 앞으로 조심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후에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이런 식의 사소한 다툼이 있었지만, 양로원 측에서도 큰 문제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양로원 원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사건 하루 전날에도 아침 식사 시간에 다툼이 있었다고 해 오씨에게 무슨 일이었냐고 묻자 오씨가 ‘아이고 죄송합니다’며 머리를 몇번이나 숙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평소에도 사소한 말다툼 외에는 오씨가 다른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늘 조용한 성격이어서 (이런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오씨가 나머지 피해자 4명을 살해까지 할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에서 흉기를 미리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흉기가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 날이 무딘 것이었다”며 “특히 무방비 상태로 자는 상황에서 당했는데 천만다행으로 모두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것은 살해 의도도 크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현재 피해자 4명 중 2명은 수술을 받은 뒤 치료 중이고, 2명은 당일 치료 후 양로원으로 돌아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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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직후 양로원 관계자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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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양로원 같은 시설이 신체적 관리나 의료 서비스에 치중돼 있다 보니 우울증이나 치매 같은 정신적 돌봄엔 소홀하다고 한다.

윤현숙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로원 노인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하는 노인보다 건강 문제가 심각하진 않지만 오랜 기간 가족과 단절되거나 집단 내에서 불화를 겪으면서 정신적인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양로원 등은 신체적인 관리 등에 치중하다 보니 이른바 마음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정적 감정들이 극단적 행동으로 표출되기 전에 문제 해결 시스템이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위성욱·김정석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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