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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우린 항상 선하고 옳다`는 정부 만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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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우린 항상 선하고 옳다`는 정부 만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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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 왼쪽)가 지난 2월 26일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자유한국당의 검찰총장실 농성과 관련,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 왼쪽)가 지난 2월 26일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자유한국당의 검찰총장실 농성과 관련,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전에서 만능주의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나 관점’이라 정의돼 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의 기저에는 ‘무엇이든 다 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만능주의’란 말을 꺼낸 이유는 요새 우리 정부가 이른바 ‘정부 만능주의’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혹시 문재인정부 스스로 자신들은 선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해도 괜찮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닐까.

적폐 청산이라는 것도 이런 사고를 기저에 깔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과거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이런 사고를 가질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이와 관련한 최근 사례로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발언을 들 수 있다. 설훈 최고위원은 2월 21일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20대 남성층에서 여성층보다 더 낮은 이유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 “젠더 갈등 충돌도 작용했을 수 있고 기본적으로 교육의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분(20대)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을 때가 10년 전부터의 집권 세력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이었다.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면 보다 건강한 판단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젊은 세대를 겨냥해 발언한 게 아니다. 교육이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규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원인의 한 측면에서 교육·환경의 영향과 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모든 책임은 열악한 교육환경을 만든 나를 포함해 여야 정치권과 기성세대에 있는 것”이라 덧붙였다.

교육의 중요성이야 강조할 만하다. 문제는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가 하는 판단 기준이 현 정부 지지 여부와 연관된다는 데 있다. 현 정부를 지지하면 교육을 잘 받은 것이고 반대하면 잘못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발언을 한 당사자의 사고 기저에는 ‘우리는 언제나 옳고, 상대는 모두 틀렸다’는 생각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나 경제는 국민 스스로가 ‘느끼는’ 존재다. 정부 여당은 아마도 정치를 ‘계몽을 통해 깨우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다. 걱정되는 부분은 정치적 판단 기준을 교육이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이다. 교육은 판단 기준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정권 주체들이 이런 착각을 하다 보면 교육정책이 왜곡되고 교육에서도 정부 만능주의가 드러날 수 있다. 결국 자신은 항상 선하다는 오만함과 운동권적 사고의 특징인 계몽주의가 뒤섞여 정부 만능주의가 발생하는 셈이다.


요새 주목을 받는 사안 중 하나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다. 해당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이후 환경부 산하 단체장에 대한 이른바 표적 감사가 이뤄졌고, 이를 근거로 사직을 강요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된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과거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이번 환경부 사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자신들 행위가 “관리감독 차원으로 작성된 각종 문서는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된 체크리스트”라는 논리를 편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신임 장관이 산하기관 임원에 대한 평가와 관리감독을 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는 적법한 인사와 관련된 감독권 행사다. 결론적으로 환경부 문건은 블랙리스트가 아니고 합법적 체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규정한 블랙리스트의 특성은 크게 네 가지다.

하나는 리스트 작성 목적이 ‘지원을 배제하기 위함’이고 둘째,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며 셋째, 이런 목적과 이행을 위한 계획 아래 정부 조직을 동원하고 넷째, 이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환경부를 둘러싼 의혹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 논리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환경부 리스트의 경우 ‘지원을 배제함’이 목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표적 감사를 통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생업에 불이익을 줬다는 차원에서는 지원 배제와 마찬가지로 특정인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준 것은 맞다. 이게 왜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인지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권 당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지시해 문체부 공무원들이 부당하게 사직서를 제출하게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과거 국회에 나와 블랙리스트를 규정한 바 있는데, 이때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특정인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적은 문서가 블랙리스트”라고 했다. 현 정권에서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 기준으로 봐도 청와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검찰이 확보한 ‘산하기관 임원 조치사항’ 문건에는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감사’ ‘거부 시 고발 조치 예정’ ‘관련 부서 직원에게도 책임 추궁 가능’ 등의 내용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청와대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하면 괜찮고 적법한 것’이며 전(前) 정권 행위는 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나쁜 일’이 되는 셈이다.

이런 식의 정부 만능주의적 사고는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서도 드러난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월 12일 성평등을 위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만들면서 ‘획일적인 바람직한 외모의 기준이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합시다’라고 ‘친절히 안내’한 데 있다. 도대체 정부가 방송 출연자 외모의 유사성까지 왜 신경을 써야 하나. 또 ‘비슷한’ 외모는 무엇이고, ‘과도한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어떻게 이런 권위주의적 안내서를 만들 용기를 냈는지 미스터리다. 21세기에, 20세기 중반의 권위주의적 정부가 행했던 ‘장발 단속’이나 ‘미니스커트 단속’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이것도 ‘우리는 선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은 괜찮다는 정부 만능주의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행위가 또 있다. ‘https’ 차단 문제다. 정부가 불법 성인 사이트를 차단하겠다고 나서면서 이른바 검열 논란이 불붙었다. 물론 정부가 나선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리벤지 포르노나 아동 성인물 같은 범죄행위를 막겠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봐도 되는 사이트와 보면 안 되는 사이트를 정부가 정해주는 것 자체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 차단 대상을 정부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결정하는 것도 문제다. 불법 여부를 법원이 아닌 행정기구가 판단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식의 결정 과정이 적절하고 적법한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이렇게 가다 보면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가 불법 사항을 규정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언제라도 사상 통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런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믿어달라”고만 반복한다. 청와대는 “https 차단 정책은 결코 검열이 아니며, 해외 불법 사이트 차단 같은 꼭 필요한 조치만 하겠다”고 강조한다. 이것 역시 전형적인 정부 만능주의의 사례다. 과거 가짜뉴스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정부가 나서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가려주겠다고 나선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당시에도 정부는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했는데, 지금 역시 불법에 대한 판단 여부를 행정부가 하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은 곤란하다. 사법적 판결도 여당이 나서 부정하고 비판하는 마당에 불법 여부도 행정부가 판단하겠다면, 가히 ‘문재인정부 만능주의’를 넘어 ‘정부 전지전능주의’로 변하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마저 생긴다. 민주주의를 하겠다면 법치를 먼저 생각해야지, 자신들 입장에서의 ‘주관적 선’을 진리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부 만능주의 사고는 독선을 낳고, 독선이 지나치면 독재적 행동이 나오게 마련이다. 자신들은 ‘나쁜 DNA가 없다’는 주장만 반복하지 말고 법치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들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인간임을 먼저 생각해줬으면

싶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8호 (2019.03.06~2019.03.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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