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를 나서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수세에 몰린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불과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최대 6월까지 연기할 수 있다고 공식석상에서 최초로 언급했다. 다만 협상파트너인 EU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명확한 목적 없는 시간벌기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메이 내각은 아무런 협상없이 EU를 탈퇴하는 이른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시 영국의 경제성장률이 최대 9% 감소하고 세관검사 행정비용만 130억파운드(약 19조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26일(현지시간) 하원에 출석해 EU와의 브렉시트 재협상 진행상황과 향후 계획을 보고하면서 "오는 3월14일까지 브렉시트 협상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리스본조약 50조 연장을 위한 투표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이 총리가 공개적으로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른 EU탈퇴 시점을 연기할 수 있다는 방침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당초 예정대로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라 3월 29일 23시(그리니치표준시ㆍGMT) EU를 떠날 것이라고 강조해 온 그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은 브렉시트 합의안의 의회 통과가 불확실한 가운데 제1야당인 노동당이 제2 국민투표 지지의사를 밝히고 내각에서도 브렉시트 연기 주장이 이어지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영국 하원은 3월12일 승인표결에서 브렉시트 수정 합의안이 부결될 경우 다음 날인 13일 노 딜에 대해 논의하고, 또 다시 부결될 경우 14일에 브렉시트 연기에 대한 표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시점을 미루더라도 "거의 확실히...단 한번(almost certainly...a one-off)"만 가능하다면서 연기 기간 역시 단기간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5월 말 유럽의회 선거 일정을 감안해 6월 말 이후로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울 것(extremely difficult)"라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이날 메이 총리가 아일랜드 국경에서의 안전장치(backstop)를 다른 협정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우선순위에 두고 EU와 논의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설명했다"면서도 "미래 무역협정과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밝히며 안전장치를 대체할 준비가 제때 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이날 메이 내각은 노 딜 브렉시트에 따른 준비상황과 영향을 평가한 보고서 요약본(Implications for Business and Trade of a No Deal Exit on 29 March 2019)도 공개했다.
15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 따르면 노 딜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세관, 국경 등에서 혼선이 빚어지며 교역물동량이 몇달간 매우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경제성장률 역시 장기적으로 6.3~9%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다. 보고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브렉시트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영국 무역과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거시적 영향은 더 클 것"이라고 불확실성을 경고했다.
영국 내 약 24만개의 기업들이 EU와의 교역에서 새로운 세관절차를 처음으로 적용받게 되면서 국세청(HMRC)는 관련 행정적 부담만 13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아울러 과일, 채소 등 일부 식료품가격은 30% 인상될 수 있으며, 대다수 식품공급업체들이 2월 현재까지도 노 딜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로 확인됐다.
브렉시트를 앞두고 계획된 40개 국제 무역협정 가운데 체결된 협정도 6개에 불과했다. EU, 일본 등은 물론 주요 교역상대국인 한국 역시 아직이다. 보고서는 "새 관세가 기업에 미칠 영향을 추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북아일랜드 등을 중심으로 일부 기업의 파산가능성도 언급했다. 이 같은 여파는 아일랜드 국경지역에서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다.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같은 날 "브렉시트의 특별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노 딜 시 부정적 여파를 막기 위해 유동성 확보 등 신중한 예방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U는 브렉시트 연기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한 고위당국자는 "공식요청이 있을 경우 우호적으로 검토될 것"이라며 "영국이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EU회원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은 7월1일로 생각된다"고 가디언에 밝혔다. 또 다른 당국자 역시 "아직 이 같은 요구는 없지만 2~3개월 상당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절차가) 복잡하지 않다"고 주요 외신에 인터뷰했다.
다만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부 장관은 "명확한 연기 목적이 없을 경우 필요성을 찾기 어렵다"며 무작정 시간을 벌기위한 브렉시트 연기 결정을 경계했다. 그는 "이를 설명하는 책임은 영국 정부에 있다"고도 덧붙였다. 앞서 가디언은 EU 내부에서는 브렉시트 시점을 3개월 미루는 것으로는 또 다시 영국 의회 절차에 가로막히는 등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들어 21개월 전환기간 후인 2021년까지 브렉시트가 늦춰질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날 런던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는 1.3254달러로 작년 10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유로화 대비로도 약 2년래 최고 수준으로 가치가 뛰었다. 메이 총리의 발언이 공개된 후 노 딜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완화된 여파다.
라보뱅크의 외환전략가인 제인 포레이는 "파운드화는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줄어들면 랠리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향후 파운드화가 1.34달러수준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브렉시트 연기 기간, 제2 국민투표 가능성 등 불확실성은 여전해 파운드화를 둘러싼 긍정적 분위기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FT는 또 다른 기사에서 "제2 국민투표가 현 혼란사태를 수습할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가장 현실적 방안으로 평가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