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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그린 위 보이지 않는 반칙 ‘백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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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LPGA서 마크 안했다가 논란

동반자 샷 앞서 마크하는 게 원칙

중앙일보

22일 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 2라운드 경기 도중 백스토핑 덕분에 버디를 잡아낸 에이미 올슨(왼쪽)과 동반자 아리야 주타누간. 올슨은 비난을 받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변명했다. [미국 골프채널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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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태국에서 벌어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 타일랜드 2라운드. 18번 홀에서 에이미 올슨(미국)이 칩샷을 했다. 속도로 봐서 공이 홀을 지나 한참 굴러갈 것 같았지만 홀 주변에 놓여있던 아리야 주타누간(태국)의 공을 맞고 멈춰 섰다. 올슨은 이 덕분에 짧은 퍼트를 넣어 버디를 했고, 주타누간도 공을 원위치해 버디를 잡았다. 두 선수는 주먹을 맞부딪히며 좋아했다. 경쟁자 사이의 우정을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장면이 골프팬 사이에선 논란이 됐다. 이른바 ‘백스토핑(back stopping)’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스톱이란 야구 등에서 홈플레이트 뒤에 세워놓은 네트를 말한다. 공이 뒤로 굴러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골프에서도 홀 주변에 있는 공을 마크하지 않고 남겨두면 동반자의 백스톱이 될 수 있다. 샷한 공이 그린 위에 있는 공을 맞고 멈춰서는 방패막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공을 맞힐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작은 백스톱이라도 있어서 나쁠 건 없다. 백스톱 역할을 하는 공은 골프규칙에 따라 원래 자리로 옮겨 놓으면 되기 때문에 손해 볼 건 없다.

윈-윈 상황인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처럼 누군가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면, 나머지 정직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원칙적으로 백스톱이 되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시간관계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고의로 만들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

골프규칙 15.3a/1에 따르면 원조가 되는 공을 고의로 치우지 않았다면 2벌타다. KPGA 김용준 경기위원은 “예를 들어 A선수가 백스토핑으로 쓰기 위해 다른 선수에게 공을 그냥 그린 위에 두라고 요청했고, B가 이 말에 따라 마크하지 않고 공을 그대로 뒀다면 A가 공을 치는 순간 두 선수는 2벌타를 받아야 한다. 공이 실제로 백스톱에 도움이 됐는지 아닌지, 규칙을 알았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만약 규칙에 어긋난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로 합의했다면 골프 룰 1-3b항 ‘합의에 의한 반칙’으로 실격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백스토핑에 대한 규칙을 잘 모르는 선수가 많았다. 선수들은 칩샷을 할 때 동반자의 공이 홀을 가리면 마크를 해달라고 하고, 필요하면 마크까지도 치워달라고 한다. 그러나 홀을 지난 자리에 놓여있다면 치워달라고 하지 않는다. 최대한 룰을 활용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안병훈이 지난해 6월 재미교포인 존 허의 공을 홀 바로 뒤에 둔 상태로 칩샷을 하는 동영상이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안병훈과 존 허는 서로 합의를 했다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 대신 2016년 PGA 챔피언십 우승자인 지미 워커(미국)가 집중포화를 맞았다. 워커는 “그게 무슨 문제인가. 나는 친한 선수면 도움을 주기 위해 그냥 공을 두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선수라면 마크를 한다”고 했다. 특정 선수가 친소에 따라 동료를 유리하게, 불리하게 해도 되는가. 메이저 챔피언이 규칙도 모른다고 비난을 받았다.

올 초에도 다시 백스토핑 사건이 이슈가 나왔다. 일종의 집중 단속 기간이다. 동영상을 보면 주타누간은 마크를 하러 가려다 올슨이 샷을 준비하자 멈춰 서서 기다렸다.

주타누간은 죄가 없다. 문제는 두 선수가 주먹을 맞대며 기뻐한 장면이다. 만약 백스토핑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대놓고 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 절약을 위한 행동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백스토핑이 돼서 겸연쩍다는 표정을 짓는 게 맞다. 주타누간과 올슨은 벌타를 받지 않았다. 이는 적절한 판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가 골프 룰과 백스토핑, 요즘 골프계 이슈를 몰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민망한 장면이기도 하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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