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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몰카 등 불법 유통 차단” vs “인터넷 자유 침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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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불법 사이트 차단, 인터넷 검열 논란으로 확산

동아일보

16일 서울역 광장에서 유튜버 박찬우 씨(앞줄 가운데)가 주최한 정부의 해외 불법 사이트 차단 정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약 100명이 모였다. 이들은 집회에서 “야동(야한 동영상) 검열을 명분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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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인터넷 환경을 위한 조치 vs 인터넷 검열의 시초.’

최근 한국 사회는 이 논란으로 들끓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요청으로 KT 등 국내 인터넷망사업자(ISP)가 이달 11일부터 해외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기 위해 새롭게 접속 차단 기술을 도입한 것이 발단이 됐다. ‘서버네임인디케이션(SNI) 필드 차단’ 방식이다.

SNI 필드 차단 기술은 ‘https 차단’으로도 불린다. 사용자가 인터넷 서버에 접속할 때는 ‘http’와 ‘https’의 두 가지 통신규약을 따른다. 보안이 강화된 ‘https’를 쓰는 게 글로벌 추세인데, 그간 이 방식을 쓰는 해외 불법 사이트는 차단하기가 어려웠다. https 방식을 쓰는 해외 불법 사이트까지 차단하겠다는 게 이번 방통위의 조치다.

방통위에 따르면 이 기술로 △도박(776개) △음란(96개) △저작권(11개) △불법 식·의약품(8개) △기타(4개) 등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해외 불법 사이트로 심의·의결한 895개 사이트에 대한 접속이 막혔다.

몰래카메라나 리벤지 포르노(보복성 음란물) 등 불법 콘텐츠의 유통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이 기술이 어쩌다 ‘인터넷 검열 논란’에 휘말리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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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란 제목의 국민청원에 25만 명 이상이 동의하자 21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의 공감을 먼저 구했어야 한다”는 내용의 답변 영상을 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한발 늦고, ‘눈높이 설명’ 없었다

11일 청와대의 국민청원 게시판에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 올라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서 ‘해외 DNS 서버로 우회했는데 해외 (불법) 사이트 접속이 되지 않는다’며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후 ‘중국처럼 검열 국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댓글이 쏟아졌다.

온라인에 온갖 의혹이 넘치자 12일 방통위가 새로운 차단 방식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KT가 SNI 필드 차단 방식을 적용하고, 방통위가 인정한 그 하루의 시간. 이미 의혹은 퍼질 대로 퍼졌다. 한 정보기술(IT) 커뮤니티 회원 김모 씨(32)는 “방통위가 뒤늦게 새로운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을 발표하자 기술적인 사실관계를 떠나 우려가 확신으로 변하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라고 말했다.

논란은 더 확산됐다. 급기야 온라인을 중심으로 감청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방통위는 14일 해명 자료를 배포했다. 1차 발표 자료 때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SNI 필드 차단이 무엇인지 그제야 친절하게 풀이한 자료를 내놓은 것이다.

방통위는 이번 일이 있기 전에도 SNI 필드 차단 방식을 도입할 계획을 밝히긴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해당 기술을 자세히 설명한 적은 없었다. 이번 해명 자료에는 SNI 필드 차단은 기술적으로 감청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상세히 기술돼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곳곳에 퍼진 ‘음모론’을 주워 담기엔 늦었다.

결국 청와대 국민청원에 25만 명이 넘는 동의자가 나오자 21일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국민의 공감을 먼저 구하고 정책을 집행했어야 했다. 기술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책이 어떻게 이뤄지고 실제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알리지 못해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위원장은 이번 조치의 취지가 성인의 합법적인 콘텐츠 소비를 막으려던 것은 절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IT 관련 정책 이슈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신기술을 국민이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는 (쉽게 설명하지 않은) ‘브리핑 자료’를 내놨다가 오해가 생겨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 다시 설명 자료를 내놓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논란이 커지면 이를 잠재우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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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열 논란 휘말린 SNI 필드 차단은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SNI 필드 차단 기술도 결국 ‘시한부’ 정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DNS 차단 방식을 ISP에 도입했다. DNS는 사용자가 사이트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 사이트의 인터넷주소(IP주소·숫자 형식)를 알려주는 일종의 전화번호부다. 즉, DNS 차단 방식은 사용자가 불법 사이트에 들어가려고 할 경우 ISP가 그 전화번호부에서 원래 IP주소를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경고문이 적힌 다른 사이트 IP주소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허점은 해외 DNS를 이용하는 등의 우회 방식으로 바뀐 ‘IP주소’가 아닌 원래 주소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우회하는 방식으로 불법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용자마저 가려낼 수 있는 더 강력한 기술이 필요했다. 그런데 해외 불법 사이트가 다음 단계의 차단 방식을 피하기 위해 보안접속(https)을 주로 활용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여기서 https는 정보를 암호화하지 않고 평문으로 주고받던 이전 http의 보안성을 한층 강화한 통신 규약이다. 뒤에 붙은 ‘s’는 보안(secure)의 첫 글자. https는 사용자와 사이트, 둘 만이 알 수 있는 암호화된 통신 방법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기술이다. https는 정보가 적힌 편지지를 수령자의 주소가 적힌 편지 봉투에 담아 배달원에게 배달시키는 셈인데, ISP에 해당하는 배달원은 당연히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방통위에 따르면 편지 봉투에 적힌 주소는 수령자가 처음으로 편지를 받을 때 딱 한 번 공개된다. 이번에 적용된 SNI 필드 차단 방식은 그렇게 잠깐 공개되는 주소를 배달원(ISP)이 확인해 불법일 경우 배달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검열 의혹이 나온 것은 이 부분 때문이다. 배달원인 ISP가 편지를 보낸 이(사용자)와 주소(불법 사이트)를 일일이 체크해 보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말 그대로 서버의 이름이 불법 사이트와 일치하면 기계적으로 접속을 차단하는 것이라 검열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상사설망(VPN)을 쓰면 우회가 가능하다는 약점이 있다. 또한 수신자가 처음 편지를 받을 때 단 한 번 공개되는 그 편지 봉투의 주소마저 가려 버릴 수 있는 새로운 기술(ESNI)이 확산하고 있다. 얼마 못 가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권헌영 한국인터넷윤리학회장은 “이런 불법 사이트 차단 문제 등은 정부가 완전한 근절을 목표로 하면 그 정책이 실패할 확률이 높다. 기술적 차단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사전 검열 요소가 있는 규제만 계속 늘려갈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와 소통하며 보다 더 자율적으로 자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인터넷 자유 vs 피해자의 구제

성폭력 반대 단체는 방통위의 이번 조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서랑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불법 촬영물 피해자에게는 불법 콘텐츠를 차단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곧 생존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DNS 차단, SNI 필드 차단 기술이 없었을 땐 우리가 신고한 해외 불법 사이트 중 실제 접속이 차단된 것은 10%도 안 됐다. 다른 우회 방법이 생겨도 이번 조치로 많은 (불법 촬영)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았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최근 정부의 해외 불법 사이트 차단 발표 이후 서울역 광장 집회 시위를 주최한 유튜버 박찬우 씨(31)는 “문제는 성인이 자유롭게 야동(야한 동영상)을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이번 조치 속에는 감시 사회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해외 불법 사이트 차단 문제는 여러 논란을 거듭하며 공론화가 된 상태다. 그래서 이참에 정부가 시민사회와 머리를 맞대고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점검을 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교수는 “미국의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지난해 자료를 보면 한국은 인터넷 콘텐츠 제한 항목에서 35점 만점(낮을수록 자유도 높음)에 13점을 받았다. 중국(31점)과 일본(8점) 사이”라며 “앞으로 일본 수준으로 그 점수를 낮출 것인지 아니면 보다 합리적인 수준으로 그 점수를 높여 나갈 것인지, 방식과 정도를 놓고 시민사회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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