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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명품거리 폐점 급증...임대료·최저임금 급등, 온라인쇼핑 확산이 원인

조선비즈 뉴욕=유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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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명품거리 폐점 급증...임대료·최저임금 급등, 온라인쇼핑 확산이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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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현지시각) 오후 2시 뉴욕 맨해튼 5번가(Fifth Avenue) 이스트 57 스트리트. 루이비통을 마주한 2층짜리 클럽모나코 매장은 통째로 비어있었다. 바로 옆 명품 가구·소품 업체 매킨지 차일드와 메트로폴리탄 주얼리 매장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매장 안에는 오래 전 배포하다 남은 할인판매 전단지가 흐트러져 있었다. 바로 옆 크라운빌딩은 불가리, 피아제, 미키모토 매장 사이 두 곳이 공실(空室)로 남겨져 있었다.

맨해튼 5번가 명품거리. 비어있는 매장 쇼윈도에는 임대를 알리는 부동산 회사들의 광고문구가 붙어있다./유윤정 기자

맨해튼 5번가 명품거리. 비어있는 매장 쇼윈도에는 임대를 알리는 부동산 회사들의 광고문구가 붙어있다./유윤정 기자



인근 53스트리트 3층짜리 폴로랄프로렌 플래그십스토어엔 임대를 알리는 부동산 회사 립코(RIPCPO)의 광고문구가 붙어있었다. 이 곳은 세인트 토마스 교회를 마주하고 있는 핵심 상권이다. 옆 매장 직원은 "이곳이 10개월째 비어있어 우리 매장도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문을 닫은 54스트리트 갭(GAP) 플래그십스토어도 임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을씨년스럽게 붙어있었다. 인근 베르사체도 매장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샤넬·루이비통·구찌·티파니·프라다 등 유명 명품 매장과 최고급 백화점이 밀집한 뉴욕 맨해튼 명품거리가 폐점 공포에 떨고 있다. 폭등하는 임대료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인터넷 쇼핑 확산으로 전통적인 매장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맨해튼 5번가 57스트리트. 클럽모나코 등을 비롯해 인근에 있는 매장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한채 모두 비어있다./유윤정 기자

맨해튼 5번가 57스트리트. 클럽모나코 등을 비롯해 인근에 있는 매장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한채 모두 비어있다./유윤정 기자



5번가 뿐만 아니었다. 매디슨애비뉴, 브로드웨이, 7번가 등 맨해튼 유명 거리 곳곳엔 비어있는 상점이 수두룩했다. 매디슨애비뉴 53스트리트에는 임차인을 찾는 문구와 함께 부동산 중개업체 연락처가 적힌 표지판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매디슨애비뉴 중심에 위치한 캘빈클라인도 상반기내 매장을 없앨 계획이다. 브로드웨이 49스트리트 ‘시카고’ 뮤지컬 극장 맞은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폐점한 상태였다. 뮤지컬 고객이 많아 늘 붐볐던 상권이었다. 음식점 문이 굳게 닫힌채 입구에 쓰레기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바로 옆 100여평 규모의 브라질리언 스테이크하우스에는 저녁인데도 식사하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맨해튼 5번가 매장 年임대료 170억원...아마존 공격에 수익성은 악화

센트럴파크에서 성패트릭성당까지 이어지는 맨해튼 5번가 49~60스트리트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싸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업체 쿠시먼웨이크필드가 전세계 446곳의 상업지역을 비교한 결과(작년 6월 기준) 맨해튼 5번가의 연간 임대료는 평방피트당 2250달러(약 252만원)다. 폴로랄프로렌 매장은 층당 약 6700평방피트(약 180평)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층당 임대료로 연간 169억원씩 내온 셈이다.


맨해튼 5번가 임대료는 2017년말 3000달러였으나 공실이 늘면서 25%가량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1407달러)와 이탈리아 밀라노 비아 몬테나플레온(1433달러)의 1.5배 수준이다.

그래픽=박길우

그래픽=박길우



임대료는 부담스러운 반면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전자상거래를 통해 물건을 싸게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록펠러센터 1층 바나나리퍼블릭, 제이크루 매장엔 손님을 찾기 어려웠다. 텅빈 고가 브랜드 매장 대신 가격이 싼 SPA(제조유통일괄화의류) 브랜드인 H&M, 자라 매장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아마존이 전세계 유통시장을 잠식하면서 미국 최대 소매기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주요 소매점들이 파산하거나 점포 수를 줄이고 있다. 전국 오프라인 유통 매장 중 작년 한 해만 6400여개가 폐점했고 127년 전통의 미국 최초 백화점 시어스(SEARS)도 파산을 선언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매장은 입지가 좋은 곳에 직원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아마존처럼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매장은 기존 소매점에 비해 고객들에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팔 수 있다.

뉴욕시는 빌딩 점포가 계속 비어있으면 주변이 황폐화할 것을 우려해 상가가 빈 건물주에게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가가 비어있는 것이 건물주들의 임대료 상승 욕심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뉴욕 최저임금 2년간 36% 올려...레스토랑 75% "직원 구조조정 계획"

게다가 뉴욕시가 작년말 최저임금을 시간당 13달러에서 15달러로 약 15% 올리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뉴욕의 최저임금은 2016년 11달러에서 2년만에 36% 가량 인상됐다.


맨해튼 5번가 57스트리트 인근에 매장 임대를 알리는 부동산 문구가 붙어있다./유윤정 기자

맨해튼 5번가 57스트리트 인근에 매장 임대를 알리는 부동산 문구가 붙어있다./유윤정 기자



미국의 최저임금 15달러는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1만원’처럼 상징적인 수치로 통한다. 음식점 노동자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이 활발히 진행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타격은 주로 맥도널드, KFC 등 패스트푸드점과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는 식당 주인들이 받지만, 오프라인 매장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명품업체도 최저임금이 오르면 직원들의 인건비를 덩달아 올려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급격한 임금 인상이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측면에서 공화당 진영과 업계의 반대가 거세게 불고 있다. 뉴욕에서 6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블루스틴씨는 "현재 50~11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수익성이 악화돼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줄일 수 밖에 없다"며 "더이상 직원을 뽑지 않을 것이며 메뉴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한인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도 "최저임금 인상과 임대료 부담으로 이전보다 수익이 많이 줄었다"며 "홀서빙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뉴욕서비스업연맹이 최근 574곳의 뉴욕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75%가 임금 인상 부담으로 올해 직원을 줄일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87%는 올해 음식 가격을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맨해튼 매디슨애비뉴 인근 53스트리트에도 임대인을 찾는 ‘For information regarding this space’ 문구가 붙었다./유윤정 기자

맨해튼 매디슨애비뉴 인근 53스트리트에도 임대인을 찾는 ‘For information regarding this space’ 문구가 붙었다./유윤정 기자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매장들이 살인적인 임대료·인건비 부담에도 살아남기 위해선 이를 상쇄할 만큼 소비자에 ‘경험’이나 ‘가치’를 주는 매장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폐점을 통한 구조조정과 온라인 강화 등 발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동섭 딜로이트 부동산인프라자문그룹 전무는 "강화되는 아마존의 승자독식 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라이프스타일의 패러다임 변화에 순응해 오프라인 매장도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고 했다.

뉴욕=유윤정 기자(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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