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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버닝썬 사태

[오래 전 ‘이날’]2월14일 왕갈비통닭, 버닝썬, 그리고 백색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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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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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압수된 필로폰(히로뽕) 제조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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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14일 “백색 공포, 위험수위에 도달”

천만 영화 <극한직업>과 서울 강남의 유명클럽 ‘버닝썬’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요?

마약반 형사들이 마약조직 검거를 위해 위장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영화 <극한직업>은 재미있는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열연, 대진운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영화를 직접 본 형사들은 “실제로 치킨집을 차리는 것까지는 불가능하지만, 배달원이나 퀵서비스기사 등으로 위장하는 경우는 많다”며 잠복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하죠.

클럽 '버닝썬'은 폭행 의혹으로 논란이 된 후 대마초는 물론 성범죄에 사용되는 ‘물뽕’(GBH·감마 하이드록시낙산) 등 마약류가 유통되는 온상으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물론 클럽만 위험한 것은 아니겠죠. SNS를 통해서도 마약이 퍼지는 시대니까요. 다음 달에는 여성 대상 약물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서울 대학로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한국이 ‘마약 청정지대’라고 생각하셨던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제 보니 20년 전에도 마약사범의 증가세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았습니다. 대검찰청에는 ‘마약과’가 신설됐고, ‘도전과 극복-사회과제’ 시리즈로는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뤘으며, 필로폰 상습투약 적발 기사도 같은 날 사회면에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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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14일자 4면 기사. 검사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으신가요? 서울지검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법복을 벗은, 옛기와 수집에 앞장서 ‘기와검사’로 불리던 그분 맞습니다.


“최근 전국적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마약사범은 국민 전체가 피해자라는 특성을 갖는 사회병리현상으로 이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절실히 요구되어 왔습니다”

전날 대검찰청 형사1부에 신설된 마약과장 유창종 검사는 “당시 범죄집단이나 일부 유흥업종사자 등 특정 소수가 상습투약해온 것으로 알려진 마약이 주부와 학생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돼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검찰은 당시까지 보건사회부 마약감시원 77명을 흡수해 전국 15개 지검·지청의 마약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수사체계를 일원화하기로 했습니다.

흔히 ‘히로뽕’이라고 부르던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은 대만 등 동남아에서 수입돼 한국에서 제조, 일본으로 수출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단속이 심해지자 한국으로 역류되면서 마약사범이 급격히 늘어났다고 합니다. 유 과장은 “마약제보전화 ‘127번’을 전국 검찰에 확대 설치하고 5000원에 불과한 제보보상금을 현실화하는 문제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마약사범 숫자는 1986년 961명, 87년 1309명, 88년 3769명으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고, 검찰은 마약과 신설과 함께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약사범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검찰에 적발된 마약사범의 숫자는 지난 2012~2014년에는 9000명대였지만, 2015년에는 1만명을 넘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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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오늘 경향신문은 ‘도전과 극복-사회과제’ 시리즈 중 하나로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기사는 “우리나라 마약 문제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청소년층으로의 급속한 확산”이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마약예비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마약을 접한 청소년들이 성년이 됐을 때 ‘범죄의 화약고’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네요.

본드나 신나 흡입이나 환각제 복용이 본격적 마약 복용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되며, 본드 등 휘발성용제는 뇌세포를 파괴하고 과도한 양을 복용하면 호흡정지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담겼습니다. 또 일부 연예인들의 사용에 따른 모방심리로 대마초 흡연도 늘고 있는 상황도 우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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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14일 10면 기사


당시 보사부 마약과 집계에 따르면 청소년 마약사범은 87년의 경우 전체 마약사범 1309명의 4.2%인 62명이었지만, 88년에는 전체 1735명의 6.3%인 109명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불과 1년 사이에 1.5배 정도 늘어난 셈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청소년 마약사범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요?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에서 2017년 6월까지 5년반 동안 적발된 마약사범은 총 3만7093명이며, 그 중 10대는 370명으로 1% 정도에 해당합니다. 청소년 사범도 많이 늘었지만, 마약사범 자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다 보니 비율은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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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산지검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체 필로폰 사범 중에는 10대가 약 16.4%, 20대가 59.8%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인천과 함께 ‘마약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곳이다 보니 10대들이 마약을 접하는 일도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마약 복용이 위험한 이유로 교우관계를 통한 전파력이 엄청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부산에서 검거된 한 10대는 “전자오락실에서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필로폰을 3번 맞았다”고 밝혔고 “(약을 맞으니)정신이 맑아지고 공부 걱정·부모 걱정이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적발될 때까지 소매치기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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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14일 11면 기사


이날 사회면에는 상습적 마약 투약으로 구속된 백화점 직원에 대한 단신도 실렸습니다. 그는 미군기지촌에서 성냥갑 1갑 분량의 필로폰을 100만원에 구입해, 서울 시내 여관방에서 매달 2차례씩 상습 투약을 하다 붙잡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필로폰을 소개한 건 고교 선배였습니다. ‘위험한’ 친구나 선배 따라 ‘강남’ 가는 일도, 친구나 선배에게 ‘위험한 즐거움’을 소개하는 일도 없어야할 텐데 말입니다.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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