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형은 ‘SKY캐슬’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을 열연, 인생 캐릭터를 갈아치웠다. 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처음 대본 받고 이건 못 한다 했어요.”
지난달 29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 ‘SKY캐슬’ 마지막회를 앞두고 만난 배우 김서형(47)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처럼 소회를 밝혔다. 누가 봐도 피투성이가 될 만큼 처절한 싸움이었는데, 지쳐 보이진 않았다. 대승리를 거둔 직후여서일까. 풀어헤친 단발머리가 조금 낯설긴 했지만 화장기 없는 민낯인데도, 그의 얼굴엔 꽃이 활짝 핀 것 같았다.
인터뷰 현장을 수다 한판, 웃음 도가니로 만든 그는 그 어떤 배우보다 솔직하고 털털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침 없는” 매력 화수분이었다.
지난 몇 달간 ‘김주영’으로 살았던 김서형은 “외롭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을 연기한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차가운 카리스마와 몰입도 높은 연기로 시청자를 들었다놨다 했다. 1%대로 시작한 드라마는 지난 19회 방송에서 23.2%까지 치솟으며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김서형은 신드롬급 인기에 대해 “캐릭터를 그렇게 잡고 올백하고 나오니 좀 특색 있게 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큰 반응은 생각 못했다”고 했다.
“대본, 연출, 배우… 그러니까 3박자 4박자 5박자가 다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심지어 음악까지도요. 저도 음악 나올 때까지 기다렸거든요. 어떻게 저 장면에 이렇게 어울릴 수 있을까 싶었죠. 분위기를 잘 만나서 다 챙겨가고 있는 것 같아요.”
김서형은 ‘쓰앵님’의 신드롬급 인기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
그런데,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고 “‘못한다’ 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안한다가 아니라 못한다였어요. 내가 너무 아프니까요. 카리스마 부리는 역할들은 임팩트는 있지만 스토리가 있는 배역이 아니잖아요. 사무실에서 촉이 온다고 믿어보라길래 '나한테 왜 이래' 하면서 통곡했죠.(웃음) 감독님이 없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존경스러워요. ‘김주영’은 물론 스토리가 있었고 후에 나왔지만, 나만 알고 연기해야 하는 게 너무 아파요. 캐릭터가 힘들다기 보다 김주영의 서사가 어렵고... 스토리가 나올 듯 같으면서도 안 나오는 답답함. 얘기를 안 듣고 쌓아온 게 마지막에 터뜨릴 때 도움은 된 것 같아요.”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역할, ‘김주영’이 되기로 한 이상 그때부턴 처절했다. 대사에 독기를 불어 넣기 위해 머리카락 한 올의 흐트러짐도 용납할 수 없었다. ‘김주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올백 헤어스타일’은 두통을 달고 살만큼 고통과 짜증이었으나, 연기를 위한 그의 선택이었다. ‘올백 올림머리’를 콘셉트로 잡고 블랙 정장에 목을 감추는 상의를 고집한 이유는, 과거를 숨기고 김주영의 그늘을 보여주기 위한 그의 아이디어였다.
“예쁜 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예쁘게 나와야 한단 강박관념도 없었고요. 짧은 머리에 핀을 많이 꽂으니까 묶는 순간부터 화가 많이 났죠. 초반엔 짜증과 화를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시청률이 나와주니까 ‘으샤으샤’ 할 수 있었던 거죠. 끝나는 날까지 머리 언제 풀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김주영’은 데뷔 이후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힘들었단다. “제 머리 꼭대기에 있는 여자이기도 했고 또 모든 전개가 대본이 나와야 알 수 있었다”며 “오죽하면 감독님께 ‘김주영이 미국에서 살인을 했어요?’ 물었지만 끝까지 알려주시지 않더라. 제 서사를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로만 풀어내는 지점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촬영 중간이 지나면서는 정신과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겠단 생각까지 했다”고 하니 그 고통은 짐작할 만하다. 그는 “그 당시의 난 김서형이 아닌 ‘김주영’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김주영의 어둡고, 외롭고, 고립된 마음들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괴롭혔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가 이번 드라마에 기울인 노력은 연기만이 아니었다. 대본을 받으면 감정선에 맞는 옷을 고르느라 4~5시간씩 피팅에 할애했다.
“시청자는 모를 수 있지만, 현장에서 우리끼리는 알아요. 그날그날 신에 따라 가죽을 입을지, 새틴을 입을지, 실크를 입을지를 결정했으니까요.”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어머니”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머니” 같은 대사는 히트하며 수많은 패러디로 이어졌지만, 그 대사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겐 난감한 숙제였다.
“이건 뭐지? 지금껏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듣보잡, 독특한 대사인 거예요. 잘못하면 사극톤으로 될 것 같고 또 목소리를 깔면 이상할테고. 현대물인데 고민이 많았죠. 최대한 그 톤을 살리기보다 그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어요. 근데 이렇게 재밌게 받아들이실 줄 몰랐죠. 페러디 영상들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연기했나’ 따라하기도 한다니까요.(웃음)”
‘김주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올백 헤어스타일’은 두통을 수반했으나, 연기를 위한 김서형의 선택이었다. 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초반 두 달 넘게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며 “한달 반은 링거 맞으면서 했다”고 밝혔다. “‘혜나를 들이십시오’ 할 때까지만 해도 코맹맹이 소리였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가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과거 연기의 답습이었다고 한다. 일련의 작품들에서 주로 쿨하거나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왔지만, 이번 캐릭터는 또 달라야만 했다. “이전 작품 속 캐릭터를 떨쳐내는 게” 스스로의 과제였다.
“‘SKY 캐슬’을 하면서 (아내의 유혹) ‘신애리2’는 만들고 싶지 않았죠. 그 신애리가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기도 했지만 트라우마도 갖게 했어요. 김서형의 습관이 묻어나올까봐 가장 경계했어요.”
‘SKY 캐슬’을 누군 인생작이라고 하고, 누군 김서형의 드라마라고 했다. 그는 이 뜨거운 반응과 극찬들에 초연했다. ‘김주영’다운 내공이었다.
“늘 보여줘야 되는 거고, 늘 매진해야 하는 게 맞는 거고. 하나라도 허투로 하면 안되죠. 캐슬을 만난 게, 김주영을 제게 주신 것이 인생작인 거지. 캐슬이 있어서 김주영이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난 그냥 엄마 아빠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 서울대 의대에 간 거예요.(웃음) 아시잖아요, 다 거품이에요. 1년간 작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해요. 김서형이라면 이런 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뭘 줘도 잘 하는 배우란 말만 남아도 좋을 것 같아요. 그거라도 됐다면 저는 족해요.”
happ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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