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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인터뷰①] ‘SKY캐슬’ 김서형 “처음 대본 보고 ‘이건 못한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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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형은 ‘SKY캐슬’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을 열연, 인생 캐릭터를 갈아치웠다. 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처음 대본 받고 이건 못 한다 했어요.”

지난달 29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 ‘SKY캐슬’ 마지막회를 앞두고 만난 배우 김서형(47)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처럼 소회를 밝혔다. 누가 봐도 피투성이가 될 만큼 처절한 싸움이었는데, 지쳐 보이진 않았다. 대승리를 거둔 직후여서일까. 풀어헤친 단발머리가 조금 낯설긴 했지만 화장기 없는 민낯인데도, 그의 얼굴엔 꽃이 활짝 핀 것 같았다.

인터뷰 현장을 수다 한판, 웃음 도가니로 만든 그는 그 어떤 배우보다 솔직하고 털털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침 없는” 매력 화수분이었다.

지난 몇 달간 ‘김주영’으로 살았던 김서형은 “외롭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을 연기한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차가운 카리스마와 몰입도 높은 연기로 시청자를 들었다놨다 했다. 1%대로 시작한 드라마는 지난 19회 방송에서 23.2%까지 치솟으며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김서형은 신드롬급 인기에 대해 “캐릭터를 그렇게 잡고 올백하고 나오니 좀 특색 있게 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큰 반응은 생각 못했다”고 했다.

“대본, 연출, 배우… 그러니까 3박자 4박자 5박자가 다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심지어 음악까지도요. 저도 음악 나올 때까지 기다렸거든요. 어떻게 저 장면에 이렇게 어울릴 수 있을까 싶었죠. 분위기를 잘 만나서 다 챙겨가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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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형은 ‘쓰앵님’의 신드롬급 인기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그런데,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고 “‘못한다’ 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안한다가 아니라 못한다였어요. 내가 너무 아프니까요. 카리스마 부리는 역할들은 임팩트는 있지만 스토리가 있는 배역이 아니잖아요. 사무실에서 촉이 온다고 믿어보라길래 '나한테 왜 이래' 하면서 통곡했죠.(웃음) 감독님이 없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존경스러워요. ‘김주영’은 물론 스토리가 있었고 후에 나왔지만, 나만 알고 연기해야 하는 게 너무 아파요. 캐릭터가 힘들다기 보다 김주영의 서사가 어렵고... 스토리가 나올 듯 같으면서도 안 나오는 답답함. 얘기를 안 듣고 쌓아온 게 마지막에 터뜨릴 때 도움은 된 것 같아요.”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역할, ‘김주영’이 되기로 한 이상 그때부턴 처절했다. 대사에 독기를 불어 넣기 위해 머리카락 한 올의 흐트러짐도 용납할 수 없었다. ‘김주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올백 헤어스타일’은 두통을 달고 살만큼 고통과 짜증이었으나, 연기를 위한 그의 선택이었다. ‘올백 올림머리’를 콘셉트로 잡고 블랙 정장에 목을 감추는 상의를 고집한 이유는, 과거를 숨기고 김주영의 그늘을 보여주기 위한 그의 아이디어였다.

“예쁜 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예쁘게 나와야 한단 강박관념도 없었고요. 짧은 머리에 핀을 많이 꽂으니까 묶는 순간부터 화가 많이 났죠. 초반엔 짜증과 화를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시청률이 나와주니까 ‘으샤으샤’ 할 수 있었던 거죠. 끝나는 날까지 머리 언제 풀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김주영’은 데뷔 이후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힘들었단다. “제 머리 꼭대기에 있는 여자이기도 했고 또 모든 전개가 대본이 나와야 알 수 있었다”며 “오죽하면 감독님께 ‘김주영이 미국에서 살인을 했어요?’ 물었지만 끝까지 알려주시지 않더라. 제 서사를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로만 풀어내는 지점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촬영 중간이 지나면서는 정신과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겠단 생각까지 했다”고 하니 그 고통은 짐작할 만하다. 그는 “그 당시의 난 김서형이 아닌 ‘김주영’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김주영의 어둡고, 외롭고, 고립된 마음들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괴롭혔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가 이번 드라마에 기울인 노력은 연기만이 아니었다. 대본을 받으면 감정선에 맞는 옷을 고르느라 4~5시간씩 피팅에 할애했다.

“시청자는 모를 수 있지만, 현장에서 우리끼리는 알아요. 그날그날 신에 따라 가죽을 입을지, 새틴을 입을지, 실크를 입을지를 결정했으니까요.”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어머니”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머니” 같은 대사는 히트하며 수많은 패러디로 이어졌지만, 그 대사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겐 난감한 숙제였다.

“이건 뭐지? 지금껏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듣보잡, 독특한 대사인 거예요. 잘못하면 사극톤으로 될 것 같고 또 목소리를 깔면 이상할테고. 현대물인데 고민이 많았죠. 최대한 그 톤을 살리기보다 그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어요. 근데 이렇게 재밌게 받아들이실 줄 몰랐죠. 페러디 영상들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연기했나’ 따라하기도 한다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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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올백 헤어스타일’은 두통을 수반했으나, 연기를 위한 김서형의 선택이었다. 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초반 두 달 넘게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며 “한달 반은 링거 맞으면서 했다”고 밝혔다. “‘혜나를 들이십시오’ 할 때까지만 해도 코맹맹이 소리였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가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과거 연기의 답습이었다고 한다. 일련의 작품들에서 주로 쿨하거나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왔지만, 이번 캐릭터는 또 달라야만 했다. “이전 작품 속 캐릭터를 떨쳐내는 게” 스스로의 과제였다.

“‘SKY 캐슬’을 하면서 (아내의 유혹) ‘신애리2’는 만들고 싶지 않았죠. 그 신애리가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기도 했지만 트라우마도 갖게 했어요. 김서형의 습관이 묻어나올까봐 가장 경계했어요.”

‘SKY 캐슬’을 누군 인생작이라고 하고, 누군 김서형의 드라마라고 했다. 그는 이 뜨거운 반응과 극찬들에 초연했다. ‘김주영’다운 내공이었다.

“늘 보여줘야 되는 거고, 늘 매진해야 하는 게 맞는 거고. 하나라도 허투로 하면 안되죠. 캐슬을 만난 게, 김주영을 제게 주신 것이 인생작인 거지. 캐슬이 있어서 김주영이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난 그냥 엄마 아빠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 서울대 의대에 간 거예요.(웃음) 아시잖아요, 다 거품이에요. 1년간 작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해요. 김서형이라면 이런 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뭘 줘도 잘 하는 배우란 말만 남아도 좋을 것 같아요. 그거라도 됐다면 저는 족해요.”

happ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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