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여당은 예비타당성(예타) 면제 방식을 동원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격렬히 성토했다. 그때 야당이었던 현 정권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사업에 대해 예타 면제를 추진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환경부의 4대강 조사·평가단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려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발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홍 교수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4대강 사업은 사업 자체의 타당성도 문제였지만, 절차 자체가 위법적이었다는 점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한다”면서 “이를 비판했던 현 정부에서 천문학적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의 절차적 정당성과 사회적 합리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비타당성조사를 건너뛰어 사업을 추진한다니 망연자실하다”고 밝혔다.
대표적 4대강 사업 비판론자였던 홍 교수는 2012년 부산고등법원에서 낙동강 보 설치를 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누락해 위법 판결을 받은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당시 500억원 이상의 사업비와 300억원 이상의 국가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에 대해 예타 면제를 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지적을 했는데 실제로 법원에서도 정부가 비용편익분석에 기초한 예비타당성조사를 수행하지 않은 것이 불법이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예타 면제 대상이 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인 도로, 철도, 항만, 공항에 대해 예타를 생략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들은 연구와 분석 노하우를 많이 쌓아서 매뉴얼도 갖춰져 있고, 전문가들도 많다”면서 “열악한 지역 사업은 경제성이 없어서 영원히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예타에는 경제성 평가 외에도 정책적 분석을 통해 지역 낙후도, 지역균형발전 등 다양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동안에도 경제성은 부족하지만 지역 상황과 여건을 감안해 사업을 추진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재 4대강 보처리 방안을 비용편익분석에 기반해 경제성을 따져서 처리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경제성분석과 예비타당성을 무시하려는 것도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경제성 분석은 단순히 사업 추진 여부 판단만이 아니라 사업에 비용이 많이 들면 어떤 식으로 바꿀 지, 다른 대안은 없을지 찾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혈세를 줄이도록 해준다”면서 “1, 2년 늦더라도 제대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시급성을 구실로 사업을 강행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4대강 조사평가단 민간위원장에서 물러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홍 교수는 29일 경향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정부가 휴지통에 던져 버린 평가방법을 사용해 국민들께 4대강의 미래를 설명하고 설득한다는 것이 모순적이라 마음이 괴로워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서도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29일 환경단체 연대모임인 한국환경회의도 정부 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대강 보 처리방안이 경제적 타당성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상황에서 경제성 부족이 뻔한 지역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적”이라며 “환경파괴와 예산 낭비를 부추기는 예타 면제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도 이날 성명을 통해 “기존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들은 경제성만이 아니라 지역균형발전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도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들”이라면서 “임기가 끝난 뒤 피해는 수십 년간 국민들이 떠안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는 토건정책을 비판하더니 집권 이후 ‘토건 정부’를 자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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