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이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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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60)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이 금의환향했다. 베트남을 아시안컵 8강에 올려놓으며 또 한 번의 ‘매직’을 연출한 그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박 감독은 29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가족들과 설 연휴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베트남에서도 9일간의 설 연휴를 보내는 점을 감안해 국내에서 고향 경남 산청에 계시는 노모를 비롯한 가족들과 가슴 따뜻한 설날을 보내기로 했다.
취재진 앞에 선 박 감독의 화두는 자연스럽게 29일 새벽에 끝난 아시안컵 4강 일본-이란전으로 흘렀다. 일본이 이란에 3-0으로 완승을 거두며 결승에 오른 것에 대해 박 감독은 “귀국 비행기에 오르기 전 공항 라운지에서 2-0까지 보고 왔다”면서 “축구는 역시나 상대성이 강한 종목이다. 일본이 (베트남과 할 땐) 잘 못하는 것 같더니, 이란에겐 또 잘 하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짓궂은 질문을 받고 활짝 웃는 박항서 감독.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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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아시안컵 8강에서 일본과 90분 내내 접전을 펼친 끝에 0-로 패했다. 4강 문턱에서 아쉽게 좌절했지만 ‘한 수 위’로 여긴 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자신감과 경험을 키웠다. 응우옌 꽝 하이, 응우옌 꽁 푸엉 등 베트남이 전략적으로 육성한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일본을 상대로 기죽지 않고 활발하게 뛴 것도 소득이었다.
박 감독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한 골 차로 진 것에 대해 “아쉽진 않다”면서 “망신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경험이 많고 개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조직력과 능력치가 경기를 거듭하면서 점점 나아지는 느낌”이라 분석했다.
지난해 23세 이하 아시아챔피언십 준우승,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에 이어 올해 초 아시안컵 8강까지 승승장구하는 배경에 대해 박 감독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스즈키컵에 모든 것을 던졌기에 아시안컵에서는 동기부여가 잘 안 됐다. 목표의식도 다소 떨어진 게 사실”이라 설명한 그는 “이라크와 이란에게 연속으로 진 뒤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지만, 예멘에 승리하고 16강에 오르면서 팀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감독인 나에겐 준비 기간이 부족했고, 선수들에겐 체력적ㆍ정신적으로 피곤한 대회였는데 목표 달성(16강 이상)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덧붙였다.
아시안컵 일정을 마친 박항서 감독이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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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 받던 한국이 8강의 벽을 넘지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한국 경기를 이영진 수석코치와 함께 현장에서 지켜본 그는 “우리 선수들이 잘 뛰었는데, 상대 중거리 슈팅 한 번에...”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그래서 축구가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도권을 잡고도 상대 골문을 열지 못하는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웠다. 벤치에 있는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오죽했겠나”라며 파울루 벤투(50ㆍ포르투갈) 축구대표팀 감독에 대해 연민의 정도 드러냈다.
오는 3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벤투호와 A매치 평가전을 치르는 것에 대해 박 감독은 “베트남은 한국이나 일본, 이란 같은 강팀들과 경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 아시아권의 강호들과 경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된다”면서 “이긴다는 생각보다는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주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했다. ‘8강전을 지켜보며 한국전을 미리 대비한 것 아니냐’는 짓궂은 질문에는 “손흥민이가 우리 경기에 오겠나. 해외파는 안 올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박 감독은 A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을 함께 맡는 현재의 시스템에 변화를 줄 생각이다. 업무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A대표팀 또는 23세 이하 대표팀 중 한쪽만 전담하는 방안을 놓고 베트남축구협회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23세 이하 팀과 A팀을 한꺼번에 맡다보니 일이 과중하고 준비해야 할 대회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불편이 있다”고 설명한 그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영진 수석코치는 계속 함께 하겠지만, 코칭스태프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팀 또는 23세 이하 팀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박 감독은 "일단 도쿄올림픽 본선을 치르기 전에 베트남축구협회와 계약이 끝난다"면서 "눈 앞으로 다가온 3월 올림픽 예선을 통과하는 게 먼저다. 그 이후에는 카타르 월드컵 예선이 있고, 동남아시아 지역대회(시게임)가 또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도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베트남축구협회가 박 감독이 두 대표팀을 기존처럼 계속 함께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어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일본과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박항서 감독.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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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월드컵 본선행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에게 박 감독은 “우리 베트남은 아직 그렇게까진...”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베트남 현지 언론으로부터도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소개한 그는 “그럴 때마다 내가 ‘당신은 월드컵에 나설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묻는다”고 했다.
박 감독은 “스즈키컵 우승이나 아시안컵 8강에 오른 것만으로 월드컵 본선행을 노릴 만한 수준에 올라섰다고 생각지 않는다”면서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면서 10살에서 15살까지 어린 선수들에게 집중투자를 해야한다.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부분”이라 설명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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